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사적인 시차

[도서] 사적인 시차

룬아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도서『사적인 시차』는 저자 룬아의 에세이 집으로 공식적인 데뷔작이다. 룬아는 어린 시절을 남미에서 보냈고, 다양한 경험을 한 활동적인 사람으로 독자인 나와 유형이 다른 사람이다. 단 한가지 공통 분모가 있다면 나도 저자 룬아처럼 눈물이 많다는 것이다. 생긴 것 답지않게 툭 건들면 와르르 눈물을 쏟아내곤 한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보이지 않은 외로움이 깊게 자리잡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사적인 시차』에는 저자 룬아가 찍은 사진들과 그녀의 생각들이 스며들어있다. 사진은 감성적이고도 따듯하며 때론 일상적이다. 그녀의 글은  꽤나 감각적이고, 차분하면서도 따듯하다. 그 온기가 공감을 자아내기도하며, 여운은 남기기도 한다. 그래서 빠르게 넘어가다가도 어느 페이지에서는 손을 한동안 멈추고 있는다.

 

"뒤끝이 없는 사람은 연연하지 않는 만큼 배려가 부족하고, 배려가 넘치는 사람은 세심한 만큼 쉽게 서운해 한다. 이 또한 절대적이지 않아서 같은 사람도 누군가에겐 무심한 사람이 누군가에겐 예민한 사람이 된다. 이 사실을 서로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조금 너그러워 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p242

 

사람들은 때로 무례함을 솔직함으로 둔갑시키고 너와 내가 다름을 틀린것이라고 한다. 그것에 멈추지 않고 누군가의 지극히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사연들을 가벼운 수다거리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턴가 말을 많이 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 수록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처럼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말할 타이밍을 놓쳐서 일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할 말이 없었다.그리고 그렇게 앉아있다보면 보이는게 있다. 먼저 험담을 꺼내는 사람, 맞장구를 치는 사람, 그리고 그 험담의 대상을 보호해주려고 하는 사람, 그리고 침묵하는 사람. 그런데 이 자리에서 험담을 보호해주던 사람이 마냥 좋은 사람은 아니다. 이 아이도 또 다른 누군가를 험담한다. 그럼 나처럼, 누군가처럼 험담에 침묵하는 사람을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것도 아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침묵도 암묵적 동의 일 수 있으니까. 침묵은 때론 비겁한 면죄부가 될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험담의 내용은 대부분 별것도 아니다. 그냥 그저 험담의 대상을 싫어할 뿐인 것을, 구태여 별것도 아닌 단점을 만들어낸다. 욕할 이유가 있어서 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욕을 하기 위해 이유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시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언젠가 부터 말의 힘이 참 미묘하고도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비겁하다고 해도 그게 누군가에겐 암묵적 동의라고 해도 침묵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 침묵이 때론 앞서 말한 이들보다 더 큰 질타를 받기도 한다.

 

같은 행동 같은 말을 해도 똑같은 잘못임에도 누군가는 용서받는 특권을 누리고 누군가는 용서받지 못한다. 또한 누군가에겐 충고를 서슴없이 하면서 누군가에겐 언제 그랬냐는듯 위로를 전하고 조언을 하고, 말없이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들도 있다. 왜 이런 관계의 차이가 생기느냐는 사실 간단하게 정의 내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난 쟤가 싫어" 혹은 "난 걔가 좋더라" 라고   

 

독설로 될 사람이 있고 안될 사람이 있다. 충언과 독설은 다르다. 독설은 자신의 견해를 앞세워 상대를 모독하는 행위다. 또한 은혜라는 것도 그렇다. 친절한 사람에게는 갚지 않는다. 갚는다 해도 입으로 갚는다. 그런데 두려운 사람한테는 은혜를 몸으로 갚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인간관계에 서투르고 무섭다.

 

이처럼 인간관계에 서툰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저자 룬아는『사적인 시차』를 통해 담담하고도 차분하게 어루만져주는 따스함을 전한다. 나와 유형이 다른 사람이라는 이질감이 간혹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이질감을 넘어설 만큼의 잔잔한 위로와 공감이 참 마음에 든 책이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