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지 못할 거면 처음부터 돕지 말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불꺼진 등불처럼 차가운 저 한마디에 나는 그에게 물었다. '어떤 책임을 말하는 건가요?' 그는 "그 사람의 인생을 끝까지 함께 해 줄 수 없다면 결국 그 사람에게는 상처만 남게 될거다."라고 말했다. 즉. 누군가에게 기대와 희망을 갖도록 하는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실망과 상처를 받게 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체념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으로,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보이는 관심은 어떤면에서는 이기적인 행위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의 말은 그럴싸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개인적으로 무관심은 보이지 않는 가장 잔인한 폭력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물리적 폭력보다 예의 바를 뿐 무관심도 폭력은 폭력이라고 생각해왔다.
"사람들은 의미있는 삶을 실현하기 위한 책임있는 행동이 이 세상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풍요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p32
하지만 최근 자존감을 논하고 삶의 지혜를 담았다고 하는 베스트셀러들 역시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에 귀를 기울여라,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그것이 옳은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런 내게 눈에 띈 책이 있었다. 그 책은 바로『무관심의 시대 』였다. 저자는 자신을 먼저 보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결국 '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에 무관심하게 만들고,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삶으로 이끌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며 질문을 던진다. '무관심은 정당한가?'
<책 내용 살피기>
"사회는 풍요롭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침반을 잃어버렸다. 삶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태도에 대한 통찰력을 상실했으며, 이상과 희망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다. … 사람들은 절망하지 않기 위해 기대할 것이 없는 세상, 예전에는 많은 것을 기대했던 그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린다. 아이러니하게도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안정된 곳에서 이런 실존적 황폐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리는 지금 풍요의 한가운데있다. 그런데 지난 수십년에 걸쳐 이뤄진 연구들에 따르면, 빅터 프랭클이 말한 '실존적 공허'가 오늘날 전 세계로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고 한다."p21
빅터 프랭클린이 말한 '실존적 공허'란 쉽게 말해 삶의 의미나 목적을 잃아버린 상태, 즉 내적 공허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충분히 풍요로운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다. 왜 일까? 개인적으로 사회적 불균형과 여전한 부패가 '실존적 공허'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으나 저자 알렉산더 버트야니는 삶의 행복과 충만함은 삶의 깊이를 외면하고 높은 곳만 쳐다보고 있을 때는 생겨 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실존적 공허가 생기는 것이라 말한다. 또한 실존적 공허에 대하여 '시람들의 삶에서 사명이 결여되어있고, 개인의 기여가 얼마나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가치 있는 일들이 우리의 관심을 기다리는지를 못 보거나 보지 않으려 하는 무관심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가 내적 공허를 느끼는 이유는 무언가를 전혀 얻지 못하거나 부족하게 얻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무언가를 발산하고 방출하는 것을 등한시하고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삶은 기본적으로 책임과 참여, 관심과 반응을 통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세상이 궁핍해지는 이유는 구체적인 가치와 사명이 뿌리를 찾지 못해서다. 사명의 실현은 우리의 책임이지만 정작 우리가 그것을 지나쳐버리는 것이다. 정말로 슬픈일이다. 이런 태도가 만성화 되면 세상에는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난다. 실존적 고향인 세상이 점점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소외되는 것이다." p53
사명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맡겨진 임무' 다. 저자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태어나서 첫번째로 맞이하는 장은 사랑의 장'이라고 말한다. 즉 사랑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우리의 삶에 주어지는 최초의 메시지이자 핵심이고 우리의 본성이라는 말이 된다. 동시에 사랑은 무관심, 이기주의에 반대된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더라고 사람들이 본성에 충실했을때는 자신의 결정과 행동을 통해 이 세상과 후대가 바라는 '선(善)을 사명으로 이해했고, 그것이 실현가능하다는 사실 또한 입증했다. 하지만 이기주의는 오로지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생각하며 '우리가 왜 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귀를 닫게 만든다.
물론 실제로 사명이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또한 우리 눈에 보인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포착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명을 그냥 지나쳐 버린다면 삶을 소흘히 한다는 감정과 공허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그로인해 삶의 현장에서 뒤로 물러나게 되면, 세상은 그만큼 더 궁핍해지고, 이 세상만 궁핍해 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도 궁핍해 질거라고 저자는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