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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거짓말

[도서] 뉴스와 거짓말

정철운 저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도서 『뉴스와 거짓말』은 한국 언론의 오보를 기록한 도서다. '오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오보를 기록'했다고 말하는 저자 정철운은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2010년부터 미디어분야를 취재하고 있는 『미디어 오늘』기자다.

 

도서는 프롤로그를 통해 이 책이 가고있는 방향에 대하여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 책의 방향은 아래와 같다.

제 1장 '팩트 체크는 없었다.' 에선 사실 확인해 소홀하고 기자의 의심이 부족했던 오보를 모았다. 제 2장 '야마가 팩트를 앞서면 진실을 놓친다.' 에선 기사를 쓰는 의도가 너무 강해 사실 확인을 놓쳤거나 왜곡한 사례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제3장 '쉽게 쓰면 쉽게 무너진다.'에선 단독, 속보 경쟁에 받아쓰기 보도로 인한 문제적 사례를 모았다. 제4장 '뉴스인가, 조작인가?'에선 오보를 넘어 조작 보도라는 비판이 가능한 사례를 꼽아보았다. 제5장 '오보를 기억하라'는 일종의 총론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그런데, 프롤로그를 읽다보면 '기레기' 라는 단어의 언급과 그 단어를 설명하는 도 중 '... 더욱이 오늘날 한국 사회는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극우의 가짜뉴스로 혐오와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이 문장으로 필자는 순간 씁쓸한 기분을 맛 보았다. 왜 그런 기분을 맛 보았을까? 이는 마치 유튜브를 통해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존재가 극우만 있는듯한 느낌을 전달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위의 문장에서 '극우'라는 단어만 빠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필자는 아쉽고 씁쓸했다. 그런데 유튜브를 통한 가짜뉴스를 또 다시 언급하며 극우라 언급하는 부분이 <제5장 오보를 기억하라>에 다시 한번 나온다. 그때도 반대 성향의 유튜버들에 대한 내용은 빠져있다. 그런데 '과연  가짜뉴스는 극우에만 있을까?'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필자는 순간 궁금했다. '『미디어 오늘』이 진보 성향인가?' 

 

특정 언론사를 특정 정당에 맞추지 않으려 해도 강하게 한쪽으로 쏠린 느낌을 주는 언론사들이 있다. 그래서 그런 느낌을 받을 땐 가끔 검색해본다. 검색해보니  "『미디어 오늘 』은 진보성향의 미디어 비평지다." 라는 글들이 보였다. 여기서 필자는 『뉴스와 거짓말』이란 책이 더 읽어볼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를 잠시 생각했다. 

 

꽤 오래전 읽었던 조윤호님의 《나쁜뉴스의 나라》에서는 저자가 '진보인가? 보수인가?'라는 저자의 성향이 필자에게 크게 느껴지지 않었다. 그보다  뉴스에 나오지 않은 진짜뉴스를 우리가 봐야하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말하고자한다고 느꼈다. 반면에 정철운님의 『뉴스와 거짓말』은 프롤로그에서부터 그가 몸담고 있는 언론사의 성향이 짐작가능했다. 그 짐작은 '이 책이 과연 편향적으로 쓰여지진 않았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했다. 그러다 결국 필자가 다시 책을 펼치게 된 이유는 또 다른 문장 때문이었다.

 

이 책은 선배들의 부끄러운 발자취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례의 대부분은 『미디어 오늘』 기자로서 써냈던 기사들이다. 이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미디어 비평지 기자이기에 가능했다. 이 책은 언론계 주목을 못 받고 끝날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 없다. 결국 이러한 작업은 부끄러움을 아들 이들의 몫이다. 당연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오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오보의 극히 일부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이 세상에 오보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어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 프롤로그 중에서 -

 

이 문장으로 저자 정철운님이 '오보의 무게', '오보에 대한 부끄러움'을 알고 있는 기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이 진행됨에 따라 필자는 좀 씁쓸했다. 특정 언론사를 주로 많이 겨냥하며,특정 사건, 특정인에 대해서는 저자가 적극적으로 해명하고자 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객관성이 결여되었다는 그런 느낌 말이다.<1장. 팩트 체크는 없었다.> 부터 살펴보자.

 

제 1장. 팩트 체크는 없었다.

<제 1장. 팩트 체크는 없었다.> 를 읽으며 필자는 참담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신뢰할 수 있는 언론사 과연 있는가?' 오보를 양산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기자 개인의 안일함일까 취재원의 불완전한 기억을 의심하지 않아서일까? 시스템 문제일까? 아니면 그 모두일까? 가장 참담했던 기사는 '서해 훼리호 사고'에 관한 기사다.

 

 1993년 일어난'서해 훼리호 사고'를 읽으며 필자는 2014년, SBS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피노키오》가 불현듯 떠올랐다. 당시는 몰랐는데 이번에 검색하며 알게되었다. 드라마 《피노키오 》속 기호상 소방관의 이야기가 서해 훼리호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것을. 하명이와 함께 분노하고 슬퍼했던 드라마는 더 이상 드라마가 아니었다. 실제 존재한 훼리호 사고 선장님 이야기였다.

 

기사마다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을 비아냥대듯 부르는 말이 있다. '음모론자'다. 그런데 필자는 그들을 '음모론자'라고 비아냥 대는 분들에게 『뉴스와 거짓말』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제 1장. 팩트 체크는 없었다.>만 읽어본다면, 더 이상 뉴스를 의심하는 자들을 향해  '음모론자'라며 비아냥 되진 않을 것이다. 

 

오보는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초등학생 뿐만 아니라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도 오보의 피해자였다. 2%

 

 

제2장. 야마가 팩트를 앞서면 진실을 놓친다.

 <제2장. 야마가 팩트를 앞서면 진실을 놓친다.> 에서 언급되는 사건들과 오보의 피해자들을 보면 저자가 해당 파트를 서술한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해당 파트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박원순 시장에 대한 오보부터 한총련, 이석기, 유시민, 5.18 민주화 운동, 미네르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부지 (노무현 타운) 에 대한 오보,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오보 등을 다룬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절정이던 2014년 4월 박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정부 합동 분향소를 방문했을 당시 '조문객 연출'에 대한 CBS의 오보와 2016년 '경주 황남동 한옥마을 피해복구'를 위해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과 주민이 악수하던 상황에 대한 경향신문의 오보도 언급하긴한다.

 

 <제2장. 야마가 팩트를 앞서면 진실을 놓친다.> 에 나오는 12건에 대한 오보 중 9건이 특정 보수 언론과 보수 정치권에 반감이 들게 하는 내용이다. 모든 오보를 바로 잡는데도 적극성에있어 좀 차별적으로 느껴졌다.  그로인해 다른 세 건은 구색맞추기용 같았다.

 

제 3장.  쉽게 쓰면 쉽게 무너진다.

이어지는 <제 3장. 쉽게 쓰면 쉽게 무너진다.>에서는 앞선 파트처럼 편파적이라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았다. 특정 의원의 이름을 거론하며 '가짜 뉴스의 숙주'라 표현 한 것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언론사가 조명되었기 때문이다. <제 1장. 팩트 체크는 없었다.>부터 <제 3장.  쉽게 쓰면 쉽게 무너진다.>까지 줄곧 『뉴스와 거짓말』은 팩트 체크를 넘어 크로스 체크의 필요성 과 확증 편향(보고 싶은 것만 본다)의 경계성에 대해  말한다.

다만,  <제 3장. 쉽게 쓰면 쉽게 무너진다.> 에선 기자로서 '왜 가장 기본 적인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할 수 밖에 없는지, 근본적인 시스템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도록 한다. 수많은 문제들 속에 가장 먼저 '단독' 이라는 유혹과 속보라는 경쟁 그리고 게이트 키핑 등의 문제들이 있었다.

 

제 4장, '뉴스인가, 조작인가?

 

과거의 언론은 권력의 눈치를 보는 나약한 존재였지만 지금은 하나의 권력이 되어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하다. 

 

 < 제 1장. 팩트 체크는 없었다.>에서 언급 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오보와  <제2장. 야마가 팩트를 앞서면 진실을 놓친다.>에서 언급 된 '고의적 왜곡에 따른 오보'라는 단어, 더불어 권언유착, 기언유착(?), 검언유착 등 온갖 부정적 단어들이 떠오르는 파트다. 

 

여기서 소개되는 오보들 중 필자를 굉장히 아이러이한 감정에 빠져들게 한 기사 두 건이 있었다. 두 건의 기사는  '고의적 왜곡에 따른 오보' 해당하는 내용이다.

 

먼저  'CCTV를 2배속으로 틀어 어린이집 학대 영상'을 만든 모 방송사의 오보였다. 미필적 고의든 고의적 고의든 그 어떤 쪽으로든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굴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CCTV를 왜곡하면서까지 교사를 학대교사로 만들었을까? 무엇을 덮기 위해? 

 

또 다른 하나는 2008년  '휴게소 찐빵소녀'에 관한 이야기다. '찐빵소녀' 변씨에 관한 이야기는  최악이었다. 어떻게 지상파 방송에서 이런 자작극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찐빵소녀 이야기'는 분노를 넘어선 공포까지 선사하는 내용이었다. 

 

모든 언론은 자신들의 기사 하나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게 된다는 사실을 무겁게 봐야 한다. 

 

 

제5 장, 오보를 기억하라.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뉴스와 거짓말』는 '선배들의 부끄러운 발자취다.' 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일까? 해당파트는 앞으로 기자의 길을 걸어갈 사람들이 각인해야 하는 부분들인지도 모른다고 필자는 생각했다. 그래서 도서 본문에 있는 오보의 원인, 오보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오보가 사라지기 위해 해야할 것의 일부를 남기는 것으로 해당파트는 정리하려 한다.

 

오보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언론중재위원회에 따르면, 마감 시간. 상업주의에 의한 경쟁이라는 언론 산업의 속성에서 비롯된 오보가 있다. 오인, 간과, 선입견, 조급성, 단정적 감정 등 기자의 결함과 경험 미숙, 전문 지식 결여, 취재 부족 등에서 비롯되는 언론사 내부적 오보 요인도 있다.  보도자료, 권력의 간섭, 광고주의 간섭, 통신사의 잘못된 보도, 취재원의 고의 또는 실수에 의한 오보라는 언론사 외부적 오보 요인도 있다. 

김창룡 교수는 "언론은 오보를 기사화할 생각이 없다. 우리나라는 언론사들이 수도 없이 오보를 내고 있지만  오보를 정정하는 후속 보도를 하지 않는다. 오보 피해자의 경우도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서봤자 실익이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언론사를 건드려봤자 오히려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언론에 대한 불신만 가슴에 새길 뿐이다. 

오보는 허위 보도다. 부정확한 기사부터 날조된 기사, 과장 보도가 모두 포함된다. 오보가 줄어들어야 언론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그래야 언론이 산다. 이를 위해선 오보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오보의 경위를 독자들과 공유하며 오보를 줄일 수 있도록 조직 문화를 바꿔야 한다. 하지만 언론은 정정 기사를 많이 내면 신뢰도가 떨어진다며 이를 기피한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의 책임의식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언론은 오보에 솔직해져야 한다.

 

// 리뷰를 마치며.

도서『뉴스와 거짓말』을 다시 한번 정리하며 리뷰를 마치려 한다. 본 책은 오보에 대해 다룬다. 오보에 대한 비중이나 오보를 설명하는 면에서 필자가 볼때 객관성이 결여 되어 있다고 본다. 특정 오보들에 관해서 저자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해명하려하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건  "모든 언론사에 대한 불신" 이 생긴다는 점이다. 그 어떤 언론사도 신뢰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특히 《미디어 오늘》이  'OO일보' 싫어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다른 언론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뉴스와 거짓말』에서 많이 언급된 언론사가 있다.

그래서 일까?  'OO일보'의 신뢰도는 그 어떤 언론사 보다 최악이 되어버렸다. 'OO일보는 기자로서의 윤리가 없나?' 생각이 들 정도다. 한국에 존재하는 언론의 오보 중 극히 일부만을 실었다는 『뉴스와 거짓말』 속 오보는 OO일보가 탑이었다. 96%로는 그들의 오보다. 그래서 도서의 제목을 《OO일보와 거짓말》이라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해서 오해는 없으시길, 흔히 진보 성향의 언론사라 불리는 곳들의 오보도  언급 되곤 있다. 

 

신문은 독자를 위한 공기이며 지면은 국민의 알 권리를 지키는 사회 전체의 광장일 뿐 언론사 경영주의 사유물이 결코 될 수 없다.

 

국민이 알아야 할 것을 알려야하는 기자는 '일부의 국민이 보고 싶어 할 뉴스'를 냈고, 필자를 포함한 대다수의 국민들은 '보고 싶은 뉴스'만 찾아 읽었다. 씁쓸한건 앞으로도 오랜 시간 동안 언론은 지금까지의 관행을 답습할 것이 보인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국민이, 독자가 제 아무리 의심한다 하더라도 기자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팩트체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보고 싶은 뉴스가 알아야 하는 뉴스보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난 뒷맛이 썩 좋진 않은 도서다. 씁쓸, 혼란, 불신 그것이 남아버려서 일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뉴스와 거짓말』를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겠다고 판단한다. 의심하는 자가 많아지면 기자도 언론사도 함부로 기사를 낼 수 없게 될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관행을 바꿀 수 있는건 기자들이 아닌 똑똑한 독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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