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고백 그리고 고발

[도서] 고백 그리고 고발

안천식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예전에 재미있게 챙겨 본 드라마가 있었다. 지금도 간간히 명장면을 뽑아 보기도 하는데, 그 드라마는 KBS에서 방영한 '각시탈'이다. 드라마 대사 중엔 이러한 대화가 나온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닙니까?" 라는 이강토(주원)의 질문에 담사리(전노민)는 아래처럼 대답 한 대화이다.

 

 

 "물론 무모해 보이겠지, 계란 껍데기 한 겹, 바위 모퉁이에 맞으면 그냥 깨져 버리겠지, 하지만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것이고, 계란은 아무리 약해도 산 것이네, 바위는 세월이 흐르면 부서져 모래가 되겠지만, 언젠가 그 모래를 밟고 계란 속에서 태어날 병아리가 있을 걸세, …(중략)… 계란을 이길 수 없는 날이 반드시 올것이야." - 각시탈 14화 中에서 -

 

 

사실 위의 담사리 대사는 일제 감정기를 배경으로 한 최명희 소설 「혼불」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대사이다. 이 대사를 갑자기 떠올린 이유는 현직 변호사이자 저자인 안천식의 『고백 그리고 고발 』을 읽게 되면서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공권력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경찰서이든, 법원이든 어떠한 사건에 휘말려 근처에 가본적도 없는 내가 공권력을 그토록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면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언론이 가장 큰 영향을 줬다. 언론은 강자에 의하여 가려지고 약자는 아무런 근거 없이 누군가의 먹잇감이 되는 현실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피해자를 감싸야할 학교가 가해자의 편이 되어, 피해 학생과 학부모를 협박하거나, 감시하는 모습으로 교육기관임에도 교육기관으로서의 면모를 잃어버린 안타까운 현장부터 또다른 갖가지 억울하고 슬픈 사연들을 언론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느껴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신뢰를 떨어져 갔다. 그런데 언론도 무조건 적인 신뢰를 할 수도 없다. 매체도 진보이냐 보수냐에 따라 어휘 선택이 달라진다. 시위가 '합법적 시위'가 되느냐, '무력, 폭력시위'가 되느냐의 차이, 그리고 경찰이 범인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신입 여경이 기지를 발휘해 범인을 잡았다는 등의 허위 기사 등은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리며, 공권력의 신뢰를 함께 무너지게 한다. 나는 이렇듯 언젠가부터 긍정적인 시각보다, 부정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더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느끼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정의가 있다며 법을 믿고 싶던 내게, 한 서적이 눈에 띄었다. '부패한 사법현실을 고발 한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법을 믿어야 한다' 라는 문구로 사로잡은 책이었다. 그 서적이 바로 현직변호사 안천식의 저서『고백 그리고 고발 』이다. 그 문구는 내게 신뢰할 만한 기대치를 선물했고, 어쩌면 그 문구 때문에, 책의 두께 만큼 무겁고 답답한 내용과 재판의 과정 끝에는 드라마 틱한 반전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변호사 안천식의 저서 『고백 그리고 고발 』대기업과 법원의 잘못된 판단, 그들을 상대로 10년간 23차례나 싸운 한 변호사의 집념과 열정이 녹아든 내용으로 1부 열여덟번째 소송 과 2부 고백 그리고 고발로 이루어져 총 16장으로 구성된 400페이지가 넘는 꽤 두꺼운 책이다. 그렇듯 『고백 그리고 고발 』은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책이 아니다. 각종 법률용어와 재판의 과정 그리고 증거자료들 까지 고스란히 담겨 다소 버겁게 읽혀진 책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드라마 틱한 반전을 원했지만, 드라마는 역시 드라마고, 현실은 여전히 서릿발 칼날진 얼음 위와 다르지 않았다. 냉혹하리만큼 잔인했다. 법은 '권리이외의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말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실현하려 해야지만 법적인 보호아래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고백 그리고 고발 』통해 본 적극적 권리실현은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일까?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권리를 못 찾는다면, '더렵혀 줄 것'이라고, 앞서 이야기한 계란으로 바위기치를 들어,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는 없지만 더럽힐 수는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법은 냉혹하고 부조리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법은 왜 이렇게 부조리 한 것일까?

 

그리스 신화 속의 정의를 상징하는 여신 디케는 왼손엔 저울, 오른손엔 칼을 들고 있다. 저울은 정의와 불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약자에게 강하지 않고, 강자에게 약하지 않은 형평성을 상징하고 칼은 절제를 아는 칼로 실현되어야 하는 정의로서 엄정한 집행을 상징한다. 그리고 디케의 눈을 가린 이유는 상대가 누구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의미로 어떠한 편견에도 영향받지 않을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 사법부의 디케는 어떤 모습 하고 있을까? 한 손엔 법전, 다른 한손엔 저울를 들고 있다. 나는 칼을 대체한 법전엔 조금의 의심도 의문도 없다. 그러나 우리 사법기관의 디케는 눈을 가리지 않고 뜬 모습을 하고 있는 것에는 조금의 의구심이 생긴다. 우리 사법부안에 있는 디케가 눈을 가리지 않은 이유는 실체적 진실을 두 눈으로 정확히 보고 죄를 가리겠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법기관의 디케는 실체적 진실을 어떤 기준에 두고 보는 것일까? 그리고 저울에는 기득권의 무게가 올려진 것인가? 아니면 죄의 무게를 올려진 것일까? 우리 사법기관의 디케가 눈을 가리지 않은 모습의 의미가 어떠하든, 서민인 나의 입장에서 우리 사법부의 디케는 초심을 잃었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변호사 안천식의 저서 『고백 그리고 고발 』를 읽게 된 동기는 내가 신뢰하진 않지만 신뢰하고 싶은 공권력, 사법기관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고, 신뢰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읽고 난 지금은 더 혼란스럽고 가슴이 너무도 답답해졌다. 그리고 진정으로 그곳엔 법적인 문제로 가진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그래야만 나는 조금은 정의가 있다며 사법기관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란 그런 생각이 물밀듯이 들었다. 그러나 안천식 저자의 열정에 앞서 이야기 한 담사리의 대사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다시한 번 안천식 변호사를 떠올려 본다. 그 후에 다시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본다. 대기업과 잘못된 판단을 삼은 사법기관이 거대 바위라 할지라도 언젠가 계란을 이기지 못할 날이 오기를 말이다. 적어도 법을 공부하고, 법을 사랑한 사법부가 제대로된 실체적 진실을 바라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싶다. 말이 독립된 사법기관이지, 사실 보이지 않은 무수한 연결고리들이 그들을 아슬아슬하게 잡고 있는지 모른다. 그 끈을 놓으면 자기가 떨어진다는 불안감이 어쩌면 신념을 이길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두려움과 불안감은  가장 큰 방해 요소이다. 그렇기에 사법기관의 결과와 달리 진심은 계란의 손을 들어 주고 싶었다고 기대해 본다. 그렇다면 아직은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닐까? 진심이 모아지고 모아지면 두려움과 불안감을 물리치고 진심과 같은 초심의 결과를 낼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날이 오면 우리 사법부 안에 디케는 눈을 가리고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눈을 뜬 채로 실체적 진실을 판단하고 있을까? 궁금해 진다. 나는 사법부를. 법을 계란으로 더럽히고 싶지도 않고, 그럴 자신도 용기도 없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실현하려 하였을때, 당당하고 정의롭게 분별하여 계란의 손을 들어 줄 수도 있는 엄중한 사법부를 만나기를 고대해 본다.

 

 

< 이 도서는 도서출판 용두리에서 제공받아 작성 되었습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