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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리커버 특별판)

[도서] 달콤한 나의 도시 (리커버 특별판)

정이현 저

내용 평점 2점

구성 평점 3점

꼬맹이 1학년 시절, 5,6학년의 키 큰 형들을 보면 나는 얼마나 더 자라야 저만큼 클까 안달했었다. 중학생 때는 콧수염 거뭇한 고등학생들은 이미 어른들이었다. 이십대의 나이에 바라보는 삼십세는 많은 것을 배우고 갖춘 어른, 기성세대였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느끼게 된다. 내 마음 속에는 1학년 때부터 조금도 자라지 않은 어린애가 살고 있고, 서른 아니라 마흔이 되어도 새로운 거 보면 신기하고 갖고 싶은 거 못 가지면 속 상한 것 다 마찬가지이다.  


"생속이다"라는 말이 있다. 생나물, 생고기와 마찬가지로 속마음이 여리고 푸릇푸릇하고 민감하다는 소리이다. 생속은 나이가 들면서 과일이 익듯 익어 삭은 속이 되는데, 그러기 위하여 고통의 세례를 거쳐야 한다. 고통 중에 제일의 고통은 역시 내가 사랑하는 여인, 남자, 그리고 아이들이 속을 썩이는 것이다. "내가 시방 내 속이 아니여 이눔아."하고 등짝을 퍽 때리고 싶어도 동시에 사랑스럽고 가여우니, 이리하여 속이 푹 곪고 삭아서 익은 속이 된다. 이것은 누구나 겪기 마련인 것이고 어찌보면 잘 삭을 수 있는 것은 복받은 거다. 그런데 제대로 고통의 세례를 겪지 않아 생속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꼰대들이 있으니 제때 익지 못한 늙은 풋과일은 여럿에게 민폐를 끼치고야 마는 것이다. 


남성에 비하여 여성은 일단 외모로는 많은 변화를 거치는 것 같다. 소녀와, 여인과, 아줌마와 할머니의 변화는 소년,청년,중년,노년 남성보다 더 드라마틱해 보이니 이것은 아마도 다른 성의 외모에 대한 나의 감수성이 더 민감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초경과 결혼, 임신-출산-양육, 폐경을 거치는 여성의 육체가 남성보다 호르몬 변화의 영향을 더 많이 받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혹자의 의견에 따르면, 미래인류는 보다 더 어린아이같아질 거라고들 한다. 일단 영양상태가 좋으며 육체적 과부하가 적으니 얼굴에 주름살이 적고, 마음은 생속을 더 오래 가질 수 있을 것이고, 세상과 학문에 대한 공부가 많으면 사고가 합리적이고 여유있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동의한다. 과거의 남자배우들은 우락부락한 남성미를 자랑하였으나 요즘의 배우는 남녀 모두 선이 곱고 동안이며 어여쁘지 않은가?

 

정이현의 소설에 나오는 세 명의 여성 또한 마찬가지라, 재인,은수,유희 각기 성격은 조금 달라도 대체로 소녀의 마음을 가진 채 결혼이라고 하는 삶의 마디 앞에 서서 고꾸라지고 아파하고 외로워하고 슬퍼한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시간은 줄기차게 흐를 것이고, 어머니의 삶을 살아가든지 아니면 솔로부대의 최전선을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나름의 장점과 단점이 있을 터, 그러나 정이현의 주인공들은 그 미래를 찬찬히 살피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외로움과 자기연민에 빠져든다. 이럴 때 우리는 인간적이라고 하지 않는가?

 

미래는 지나고 나면 그다지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이 미래라는 것이 내가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막무가내로 내 삶으로 밀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순간을 선택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감정이란 나와 남의 경계에서 생겨날 수 밖에 없다. 평생을 먹을 것 천지에 둘러싸여 꼬박꼬박 졸며 사는 팬더나 나무늘보가 아닌 이상,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판돈을 걸고 내기에 뛰어드는 것 이외의 길이 있겠는가.


결혼와 남편이라는 괴물에게 데이고 도망나온 재인공주. 쇼핑하듯 꿈을 고르고 가치와 가격을 끝없이 재보는 유희장군. 그리고 '나는 잘난 것 하나도 없는데 남자가 자꾸 따르네' 수인양. 자자, 정이현 작가님. 순정만화 주인공들을 30대의 나이로 높여서 서울 바닥에 가져다 놓았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독자로 하여금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내고 같이 슬퍼하고 기뻐하게 해 놓은 것이 이야기꾼의 할 바 아니겠습니까? 드라마작가의 작업이 인문학자의 작업보다 가치 없다고 누가 감히 말하겠습니까?


학교 앞 문구점에 파는 500원짜리 반지도 핑크빛 보석함에 넣어두는 우리 딸내미. 자그마한 삶의 여정도 아름답게 포장하여 판매하고, 또 이를 평화롭게 소비하는 이 자본주의 시장경제 세상에서, 가벼운 아침드라마 한 편은 또한 즐거운 소일거리가 아니겠습니까. 저야 뭐 연애소설보다는 치고박는 무협지를 더 좋아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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