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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의 일

[eBook] 9번의 일

김혜진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2019년 마지막 책으로 <9번의 일>을 골랐다. 후회했다. 연말은 아름다운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우울하고 칙칙한 이야기는 쉬이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한숨이 쌓여가고 아픔이 보태졌다. 일단 접어두고 다른 책을 읽을까, 생각하다가 곧 마음을 바꿨다. 적어도 아픔을 나누진 못해도 외면하진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다양한 이유로 외면한 아픔들에 대한 미안함도 함께 몰려왔다.

<9번의 일>은 내게 '아홉 번의 일'로 읽혔다. 애처로운 주인공 남자가 결국 9가지의 일을 겪을 수밖에 없는 아픔이 아닐까, 예상했다. 물론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구 번의 일'이었다. 구 번, 사람 이름도 아닌 숫자로 메겨진 사람. 당신은 구 번이요, 이것은 마치 그 사람이 누구인지 부정하는 느낌이다. 갖고 있는 이름도 특성도 모두 외면당하는 느낌. 번호로 불리기에 그들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걸까. 좌지우지하기 위해 그들을 번호로 불렀던 걸까.

남자는 수차례 권고사직을 권유당한다. 이제 회사에서 당신의 능력은 필요하지 않으니 그만 나가달란다. 이만한 조건이 없다고 덧붙인다. 이윤을 남기기 위한 회사는 직원도 고장 난 부품과 같은 취급을 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호봉을 올라가고 일은 다소 느려진다. 예전처럼 오랜 노하우보단 빠르게 변하는 기술에 대한 적응이 필요한 시대. 거기에 걸맞게 오래된 누군가를 쉽게 내보내기 위해 회사는 고군분투한다. 남자는 끊임없이 권유를 받지만 악착같이 버틴다. 그런 그에게 실로 상상도 못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무능한 직원으로 분류해 교육을 받게 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약점을 찾아내기 위해 애쓴다. 참으로 애쓴다.

어떤 회유와 협박에도 흔들리지 않으려는 남자. 본사에서 지방으로 지방에서 또 지방으로 또 지방으로 위기에 위기를 거듭 마련하지만 정신만은 단단히 붙잡고서 애쓴다. 고정적인 지출도 많지만 자신은 이 일을 위해 살아왔다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물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부심이다. 어쩌면 무모한 고집일지도 몰랐다. 다양한 방법으로 살아남으려는 남자를 더 다양한 방법으로 내모는 회사. 왜 우리는 더 이상 공생이 아니라 분류와 퇴출을 선택하는 것일까.

물론 이젠 평생 한 가지 일만으로 살 수 없는 시대라는 걸 안다. 그렇다고 해도 공생을 외면하는 건 정당한 일일까. 무조건 몸집을 키우고 불리는 게 최선일까. 그래서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되려 양극화의 최극단을 맛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양 끝에서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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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자신에게도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다른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순간들이, 삶을 다른 방향으로 놓아둘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번번이 그것들을 그냥 흘려보냈다. 스스로에게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면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자신을 막아서기만 했다. 어떻게 해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럼에도 아주 작은 것 하나쯤은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두 가지 마음이 들끓는 동안 그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 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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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적인 상황은 끝내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인간이 인간답길 원한다면 최소한의 장치가 사회에 마련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걸맞게 미쳐가는 우리들. 남자라고 예외였을까. 기회가 주어져도 끝내져버릴 수 없었던 그의 선택은 진정 어떤 일에 대한 자부심이 아니라 못난 미련이었을까. 마지막 그의 선택에 돌을 던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공평함과 공정함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우린 과연 맞는 세상에 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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