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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용 / 과거의 여인

[도서] 황금 용 / 과거의 여인

롤란트 시멜페니히 저/이원양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두 편의 희곡이 실려 있습니다. 

 

황금용

이제껏 읽은 희곡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릅니다.

희곡이 그렇다면 연극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겠지요. 등장 인물은 다섯인데 각기 맡은 역할은 17입니다. 그러니까 희곡을 보던 연극을 보던 정신을 바짝 차리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긴 "황금 용(黃金龍)"식당입니다. 이른 저녁 시간이죠. 희미한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테이블에 떨어지고 있군요. 타이-차이나-베트남 간이식당의 비좁은 주방에서 아시아인 다섯 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그 중 중국인 청년이 치통을 호소합니다. 많이 힘들어하는군요. 블법 체류군요. 돈도 없고, 신분증도 없고, 그러니 치과에 갈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일하고 있는 불법 체류 외국인들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일단 치아를 뽑아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집니다. 꼬마라 불리우는 치통 청년의 입에 소주를 들이붑니다. 일종의 마취제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이런..공구함에서 파이프렌치를 꺼내는군요. 쉬운 일은 아니지요. 어설픈 작업 끝에 부러진 이빨이 공중을 날아갑니다. 날고 날아서 중국 냄비에 빠집니다. 그 안에는 닭고기 타이 수프가 끓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수프는 칠레에서 날아온 비행기를 타고 이제 막 한끼 식사를 해결하러 들어온 두 사람의 스튜어디스중 한 사람에게 서빙이 됩니다. 그들 역시 매우 피곤합니다. 장소만 다를 뿐 역시 그네들도 비행기안에서 그렇게 서빙을 하며 하늘에 떠있었지요. 이런..배가 고픈 김에 허겁지겁 먹다보니 수프 대접 밑바닥에서 피 묻은 이빨을 발견합니다. 섬찟하지요. 속이 심하게 거북해집니다. 차라리 진주라도 발견되었다면 모를까. "다른 사람들은 물고기 뱃속에서 금반지도 발견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풀밭에서 다이아몬드도 발견하는데"

 

주방에 있던 꼬마는 이 빠진 자리에서 출혈이 멈추지 않습니다. 결국 과다출혈로 숨을 거둡니다.숨을 거둔 이 땅에선 시신조차도 비밀히 처리해야합니다. 안 그러면 여러 사람이 다칩니다. 안타깝습니다. 이빨하나 때문에 이 세상을 떠나야합니다. 동료들이 "황금 용" 식당 앞 쪽 벽에서 떼어 낸 카펫에 죽은 중국인을 쌉니다. 그들은 둘둘 만 무거운 카펫을 어깨에 메고 갑니다. 어느 따뜻한 날 밤에.. 오..죽은 사람이 독백을 합니다.."저들이 나를 다리 위에서 내던지지 않으면 좋으련만.."

황금 용이 그려진 카펫에서 꼬마(나이가 어린 것은 아니지만)가 풀어져 강물에 떨어집니다. 

그 다음부턴 환타지풍으로 바뀝니다.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집으로 향합니다. 강물에 몸을 맡깁니다. 흘러 흘러 북해로, 얼어붙은 북극해로, 베링해협과 베링해를 횡단해서 캄차카 반도로..그리고 드디어 중국입니다. 도착했어요. 집에 거의 다 왔습니다. 그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수주일? 수개월? 또는 수년?  그러나 어쨌든 귀국 여행은 공짜로 했다고 위안을 삼습니다. 


그냥 강물에 던지우는 시신은 처참합니다. 비극입니다. 아니 이 희곡 전체적 분위기가 그리 밝지 못합니다. 모두 힘든 사람들 뿐입니다. 물론 꼬마라 불리우는 이 청년 말고도 여러 부류의 등장인물들의 내면이 표출됩니다. 옮긴이는 이를 '세계화의 비참한 실상'이라고 표현합니다. 등장 인물들 모두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지 못하고 좌절한 사람들입니다.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실제 우리 삶의 한 단면입니다. 희곡에는 '생소화 기법'이 있습니다. 브레히트가 처음 도입한 '생소화 기법'은 해설자 도입, 관객을 향한 대사, 보고하기 등입니다. 이 희곡의 작가인 시멜페니히는 이런 고전적인 브레히트의 생소화 기법을 극작품에 통합해서 새로운 희곡 기법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과거의 여인

등장 인물은 다섯입니다. 40대 중반의 프랑크와 그의 부인 그리고 아들과 아들의 연인. 그리고..로미 포크트랜더라는 미스터리한 여인. 이 희곡은 '황금 용'처럼 1인 다역은 없지만, 역시 정신을 차리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런 지엄한 당부로 시작됩니다.  "장면이 시작될 때 시간의 비약에 대한 안내는 자막, 방송, 또는 다른 방식으로 분명히 해야 한다."


프랑크는 아내 클라우디아와 함께 해외 이주를 위한 마지막 이삿짐을 싸고 있습니다. 19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한 집을 떠나게 되는 셈입니다. 바로 이 때 로미 포크트앤더라는 여인이 나타나서 프랑크에게 24년 전에 한 사랑의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합니다. 로미라는 여인에겐 장밋빛 미래의 꿈이 담겨 있을지 몰라도 이미 19년간 부부로 지낸 프랑크 내외에겐 청천벽력같은 상황이 닥칩니다. 관객은 이미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예측하게 됩니다. 결혼식장에 아기를 안고 나타나서 이 아기는 저 남자의 애예요..라며 신랑을 지목하는 상황과 흡사하다면 흡사할 것입니다. 로미라는 여인의 말에 의하면 프랑크와 그녀는 24년 전 한 해 여름 동안 한 쌍으로 같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할 것"이라는 프랑크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프랑크는 열아홉살 때 한 풋사랑의 약속에 불과하다고 반박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로미 포크트랜드 : 저이(프랑크)와 나는 ....우리는 한 쌍이었어요, 그 땐, 그리고 지금도 그래요.


비극이 시작됩니다. 로미는 프랑크가 자기와 떠나야 한다고 강변합니다. 아내도 자식도 다 버리고 자기와 함께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프랑크의 부부 사이가 별로였던 모양입니다. 옛사랑과 함께 떠날 듯 합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안디가 집 앞 언덕 위에 앉아 있다가 가정의 평화를 깨는 로미의 모습을 보고 적개심에 불타서 돌을 집어 던지는군요. 안디가 던진 돌을 맞고 그녀는 실신합니다. 로미가 죽었다고 착각한 안디는 그녀를 안고 들어가서 자신의 침대에 눕히는군요. 


프랑크와 그의 아내 클라우디아 그리고 여인을 잠재운 아들 안디는 혼이 나간 상태입니다. 

이 과정 중에 프랑크의 아내가 표현하는 질투심과 적개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어디 다른 상처가 없는가 확인을 해보려고 합니다만, 프랑크의 아내는 여인의 몸을 절대로 안 만지겠다고 합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어디가 이쁘다고 그 몸을 만지겠습니까? 할 수 없이 프랑크가 조심스럽게 여인의 몸을 살핍니다. 


클라우디아 : 어때요?

프랑크 :  없어....

클라우디아 : 그녀의 몸이 전처럼 느껴져요? (프랑크는 중단하고 클라우디아를 본다. 그러고는 계속 찾는다.) 어때요? 그녀의 몸이 전처럼 느껴져요? 이제 기억나요? 기억이 되살아나느냐구요!

프랑크 : 여기....머리 밑에...여기 열상(裂傷)이 있어. 이거 붕대로 감아 줘야 해...


여인..프랑크의 옛 애인..로미 포크트랜더...복수극을 펼치네요..우선 프랑크의 아들 안디를 유혹해서 동침합니다. 그리고 그를 비닐 봉지로 머리를 씌워 질식사시킵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철저한 복수. 옮긴이는 이 희곡의 모티브를 고대 그리스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를 연상시킨다고 하네요. 하긴 배신으로 인한 남녀의 갈등과 복수는 역사와 전통이 오래 되었지요. 


작가  롤란트 시멜페니히

괴팅겐 출생. 현재 독일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극작가(1967년 생 ~)입니다. 40여 개 외국어로 번역, 공연되어 호평을 받고 있다합니다. 1996년에 첫 번째 극작품 [영원한 마리아]가 공연된 이후 지금까지 29편의 극작품과 9편의 방송극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상도 많이 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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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란토끼13호

    이국만리에 와서 이빨 빼다가 과다출혈로 죽고 다시 강에 던져지고...너무 가련해요.

    2012.12.29 00:00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쎄인트saint

      예..그러게 말입니다..병원 치료도 제대로 못받고..그나마..죽어서라도 고향에 가는 것으로 설정되어 다행이라고 해애할까요..

      2012.12.29 11:10
  • 콩순이

    이해하기 쉬운 내용은 아니로군요. 이빨 하나 때문에 과다출혈로 죽은 중국인은 자신의 상황에 변변한 대응도 못하는 오늘의 우리 같습니다. 문제가 뭔지 뻔히 알지만 마땅한 방법도 없고, 개인이 적절히 대응하기엔 시대의 흐름이 너무 강해 속수무책인 우리요...

    2013.01.01 12:23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쎄인트saint

      예..같은 생각입니다..우린 누구나 마음의 치통을 앓고 있지요..누구나 뽑아 내어야 할 이빨 한 두개씩은 갖고 살지요.. 뽑자니..겁이 나고..두자니 성가시고..그러면서 살아가는거지요..
      새해엔 앓던 이가 회복되는 건강한 날이 되시도록 기도 드리겠습니다~

      2013.01.01 12:46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