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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도서] 생각

레오니트 안드레예프 저/박선진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희곡의 제목인 [생각]은 희곡으로 읽기엔 그런대로 괜찮으나, 연극무대에 올릴 때는 제목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관객의 호응도가 어떨지 염려됩니다. 


책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케르젠체프 박사의 서재다. 저녁이다. 부드러운 불빛의 전등이 켜져 있다. 구석에 놓인 철창에는 오랑우탄이 잠들어 있다.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오랑우탄은 주황색 털복숭이처럼 보인다. 철창 가리개용 장막은 젖혀져 있는 상태다. 케르젠체프는 얼굴이 몹시 창백한 한 젊은이와 함께 잠들어 있는 오랑우탄을 관찰하고 있다. 그는 이 청년을 부를 때 크라프트라는 성만 부른다.


제1막 1장에 나오는 지문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오랑우탄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고릴라도 시인들처럼 우울증에 잘 빠진다고 하더군.'  '오랑우탄은 절대로 웃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나? 개는 웃지만 오랑우탄은 웃지 않는다네.'  그런가요? 오랑우탄은 웃을 줄을 모르나요? 아니면 웃는 표정을 지을 줄 모르나요? 새삼스럽게 오랑우탄을 생각하게 해주는 대사입니다. 


의학박사 안톤 이그나티예비치 케르젠체프라는 비교적 긴 이름의 주인공은 알고보니 오랑우탄을 빙자해서 그의 우울에 대해 고독에 대해 상실감에 대해 그의 연구 조수격인 크라푸트라는 창백한 젊은이에게 이야기하고 있군요. 


케르젠체프는 크라푸트라는 젊은이에게 오랑우탄 이야기를 하면서 문득 그의 아버지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러면서 두 번씩이나 웃자 그 이유를 물으니 그가 답합니다.' 난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네..' 케르젠체프의 성장과정을 어렴풋하게 짐작을 하게 만드는군요. 우리 아버지들 자녀들에게 이런 이미지는 남겨 놓지 않는 것이 좋겠지요..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며 감동을 느껴주지 못하게 할 망정..


케르젠체프의 우울증 원인이 밝혀집니다. 그는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 타티야나를 그의 오랜 친구이자 이젠 저명한 작가로 성장한 알렉세이 콘스탄티노비치 사벨로프에게 빼앗겼다는 질투감과 상실감이 그것이었군요. 살아가며 '사랑'을 개인의 삶에 전체인 경우로 받아 들이는 경우가 정상적인 감정이지요. 반면 그 상실감은 모든 것을 앗아가기도 합니다. 케르젠체프는 대사에서 우울의 원인을 '그리움'이라고 표현합니다. 서로 사랑했던 시간들을, 순간들을 그 사무치는 감정들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생각]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오는 대사가 등장합니다. 케르젠체프는 그의 친구를 방문하는 것을 빙자로 그의 옛사랑을 만나고 있습니다. 마침 그의 친구이자 연적인 작가는 부재중입니다. 

"생각과 함께 하는 고독이란 게 뭔지 알고 계십니까?" "많은 생각을 하다가 저는 끔찍한 짓을 저지르기로 결심합니다. 당신네 집으로 가서, 무작정 당신네 집으로 가서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당신의 알렉세이를 죽이기로 한 겁니다!"  놀라는 그의 옛 여인에게 단지 그의 생각은 이야기일 뿐이라고 달래면서도 계속 이어집니다. "저는, 그러니까 제 주인공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미친 척한답니다. 그 다음엔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와 자신의 안락한 생활로 돌아가는거죠."


케르첸체프는 결국 그의 망상을 실행에 옮깁니다. 살인을 저지른 후 그는 극심한 내적 혼란에 빠집니다. 당연한 귀결이겠지요. 미친 척 하며 살인을 저지르고 정신병자로 인정받아 감옥 대신 정신 병동에서 잠시 머물다 다시 자신의 안락한 공간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완벽했던 그의 계획은 실제로 사람(연적인 사벨로프)을 죽인 후 무너져 내립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조종 할 수도 있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일단 처음 의도대로 정신병원에 수용됩니다. 작은 반전이 기다리고 있군요. 정신병원에서 만난 간병인 마샤라는 여인입니다. 그가 그녀를 좋아하기 시작합니다. 참 인간의 감정이란 때론 염치불구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상한 영이 회복되는 계기가 된다면 너그럽게 용서를 해줘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나와 함께 있어주시오. 당신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오, 마샤. 벌써 두 달 동안 당신을 주시하며 관찰하고 있는데, 그 악마라 할 정도로 강인하고 흔들림 없는 당신의 정신력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알 수 없소. 그렇소, 마샤 당신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 거요. 그런데 도대체 그게 뭐요? 모든 공기 입자들까지도 광기로 오염된 이 곳에서, 정신 나간 이들이 울부짖고 기어 다니는 이 철창들 속에서 당신은 마치 이곳이....꽃들이 만발한 초원이기라도 한양 걸어 다니고 있지 않소! 알겠소, 마샤 이곳은 호랑이와 사자, 그리고 독사가 든 우리보다 살기에 더 위험한 곳이란 말이오!"


그럴까요? 정신 병동이 그리 평안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라도 짐작하는 바이지만, 그 안은 위험하고 밖은 안전하고 평화로울까요?  그러나 어쨌든 주인공 케르첸체프는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마음대로 휘두르게 되리라는 생각을 그의 것으로 만드는 데 실패합니다. 스스로의 생각을 조종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신의 생각에 조종당하고 농락당했다는 사실만 남습니다. 아울러 이 점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요. 어려서도, 성장해서도 사랑을 받지 못 한, 사랑안에서 회복되지 못한 한 인간이 그나마 정신을 되돌릴 수 있었던 곳은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 찬 바깥세상이 아니라 '미친'사람들로 가득 찬 정신병원이란 것. 그렇다면 정신병원의 기능이 제대로 그 역할을 했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정신병원 바깥 사람들이 그 역할을 분담해주지 못햇다는 것일까요?

이는 숙제로 남겨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아니 앞으로도 충분히 일어 날 수 있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서로 사랑하십시다. 내 몸과 마음을 끔찍히 사랑하듯이 다른 이들에게도 그리 하며 사십시다. 그럼 됐지요.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아..그리고 '용서'가 있습니다. 그의 옛 사랑이자 살해한 친구의 미망인 타티야나가 병원에 있는 그를 면회옵니다. 그에게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이런 결과가 왔다는 것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그의 행위에 대해선 용서를 하겠다고 하며 떠납니다. 


지은이  레오니트 니콜라예비치 안드레예프 

긴 이름에서 연상하셨듯이 러시아 태생입니다. 막심 고리키가 멘토 역할을 해주었군요. 안드레예프의 모든 작품들은 어떤 특정한 문학적 경향만으로는 정의 내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작가 고유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수많은 비평가들이 안드레예프의 이러한 개성을 규범화된 문학적 틀에 가두려 노력했으나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하네요.

정치적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자유로운 문학 활동만을 꿈꾸었던 안드레예프는 볼셰비키가 정권을 차지하자 고국을 등지고 핀란드로 떠납니다. 그리고 1919년 9월 12일 핀란드의 한 시골 마을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납니다. 1930년에 판금 작가로 분류된 이후 그의 작품은 소련에서 절판되었고, 스탈린 사후인 1956년에 들어서야 복권되고 재평가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유해는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고,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장되어 영원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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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란토끼13호

    사후에라도 조국에 묻혀서 다행이군요.생각이라는 제목의 무게가 보통큰게 아니군요.정신병동에서 용서로 귀결되는 어려운 이야기네요.

    2012.12.30 23:18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쎄인트saint

      예..정치와 이념의 희생이 된 예술가들이 많지요..그래도 그들의 예술혼과 창작의욕이 사그러들지 않았기에 후세대들이 그 맛과 향을 느끼며 살아간다고 생각듭니다..정신병동에서나마 마음을 추스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습니다..

      2012.12.30 23:31
  • 콩순이

    자신의 생각을 조종할 수 있다고 여긴 오만에 당하고 말았군요.
    인간의 본질을 깊이 파헤친 희곡이란 생각이 듭니다. 러시아의 저력이 대단하군요. ^^*

    2013.01.01 12:13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쎄인트saint

      [생각]이라는 존재 자체가 내가 주는 양식을 먹고 살아가지요..
      그 [생각]에 어떤 양식을 주느냐가 문제이지요..좋은 양식을 공급해서 뽀샤시한 [생각]을 만들어 가야겠습니다.

      2013.01.01 12:48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