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코너에 분리수거하러 갔다 누가 버렸다. 이게 왠떡이냐하고 얼른 짚었다. 내용이 좋다.
양현석대표님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팬이었고 그 중에 '우리들만의 추억'을 가장 좋아하는
지지층중의 하나다.
언젠가 방송에서 스튜디오에 앉아 "여러분이 복제음반을 사시면 우리나라 가요계는 ...... "
아주 인상깊게 들었다 그 당시 잘 나가는 거리마다 불법복제 테이프가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그저 춤잘추고 노래 잘하고 인기있는 가수로만 알았는데 경영,기획능력까지 이렇게 탁월하신
분인 줄은 몰랐다.
페이지25 '가수가 되기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라' 타이틀만 있고 메뉴얼은 없는 공허한 메아리같다 물론
밑에 실천방안도 써 있지만 성공하면 고급외제차 타야한다는 공식 공인으로써 이젠 바꾸어야될 때도 되
지 않았을까 청소년들이 무의식적으로 보고배운다는 사실도 알아야할 것이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과 대가를 흔쾌히 감수해야 한다.
백 번 훈련하는 것보다 한 번 경험하는게 낫다고 돈은 벌기도 힘들지만 지키기는 더 힘들고 쓰기는
더욱 어렵다.
예를들자면 남모르게 하는 고아원방문,조용한 봉사활동,자선공연 인생의 진리가 담긴 책 읽기,산에 나무
심고 스스로 잘랄 수 있을때까지 기르기등 찾아보면 인생을 배울 곳은 얼마든지 있다.
요즘 빅뱅의 소식을 뉴스에서 접하면 연습생시절엔 돈버는 법만 터득시키려 스파르타한 느낌만든다.
책을 나름 소개하자면 3권만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
여우와 토종씨의 행방불명
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
좋은 글들도 많고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떠오르기도하는 좋은 책이지만 대필 작가들의 흔적
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겉표지부터 13,140일을 365로 나누면 30년이 넘는다 연습생 끝나면 중년이다 이유는 마지막 페이지에
달았다.
5명이 2박3일 야유회간다고 10박11일이 되는건 아니다. 묘한 언어의 유희가 곳곳에 배어있다.
페이지49 FRIEND 친구에 관한 설명 좋았다.
그런데 TV에서 보건 책에서보건 친구들과의 비교가 너무 많다.
처음엔 감동도 있었지만 결국엔 과거 딴따라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씻어내기 위한 자격지심으
로 비춰져 고생한 나날들의 질주가 약간은 초라하게 변색되는 느낌도든다.
주관있게 자기 앞길을 개척하는 친구는 뭉뚱그리거나 애써 외면하고 방황하는 친구는 자세히 묘사한다.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이들도 그들만의 철학과 고생이 있다. 배수면가
태양 -어제와 다른 오늘만이 희망찬 내일의 조건입니다. 아주 좋은 말이다.
대선인생스토리에서 배우는게 많았다. 큰 가수가될 될성부른나무다.
재미있게 잘읽었다.
YG에만 쓰는 소리는 아니다. 근대 우리가 세계최빈국에서 20대경제대국으로 도약하기까지 수많은
노력들이 있었지만 그 때문에 그 속에 둗힌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하지 못한다.
연예계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어쩌면 더 심할 수도 있다고본다. 그래서 부족한 글 두 개만 올리낟.
제목 : 미즈노교수와 종로피맛골이야기
지금은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생글생글 잘 웃던 미즈노교수가 방송에 잘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이 스튜디오에 모여서 토론하던 곳에서 미즈노교수는 "저희 일본에서는 자식이 사업자금이
부족해 시골 부모님에게 가서 가만히 있으면 말을 안해도 부모님이 알아서 주십니다. 또 연인들끼리도
사랑한다는 말을 안해도 다 압니다."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말에 주변사람들은 "에! 그게 뭐야 말을
해야지" 하며 어이없어 했다.
이야기가 좀 다를진 몰라도 야만이란말은 18세기 프랑스에서 만든 말로 자신의 문화가 다른 문명보다
우수함을 말하기위해 만든 말이다.
타문화를 자신의 문화적 시각으로만 해석하려는 극단적인 예가 '야만'이라는 단어다.
12세기 한국과 일본에는 모두 무신정권이 같은 시기에 등장한다.
청기백기게임의 원형도 알고보면 운동회때의 청백전이 아니라
백강전투후 400년동안 일본에 존재했던 시대가 헤이안시대고 그 이후가 700년간의 무신시대다.
수도를 두 번씩이나 옮긴 간무천황이 794년에 헤이안쿄(현재 천왕이 사는 도시 교토)를 도읍으로
정착시킨후 1185년에 이르러서야 미나모토가문이 다카모리왕의 손자 다이라씨와 전장에서 맞붙었을때
서로를 구별하기 위해 한쪽은 등에 홍기를 꼽고 한쪽은 등에 백기를 꽂은데서 청백전이 유래한다.
이로인해 다이라씨가 궤멸하고 군사,경찰,행정권이 미야모토가문의 수장 요리토모에게 넘어간다.
이때 시작된 또 하나의 풍습이 있는데 무신정권의 호화로운 요리인 가이셰키요리와 승려들의 공양음식인
쇼진요리가 합해져서 현재의 일식요리의 원형이 탄생되기도 한다.
이런 전통이 1868년 메이지천황의 시대가 도래할 때까지 700년 동안 무신들이 전국에서 난립해 싸우는
전국시대가 계속된다.
우리나라에 군청단위가 있다면 일본에서는 현단위의 땅에 지배자인 영주가 있어 그곳의 무사집단과
농민집단이 영주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서로 경쟁하는 시대를 그들은 700년이나 지속시킨다.
만일 거기속한 사람이 자신의 불만이나 억압에 대한 표출을 하게되면 그곳 집단에 해를 끼쳐 단결에
해가된다하여 자신의 욕구불만을 자신의 내부로 내면화하는 문화가 뿌리를 내려 지금도 일본에선
제일 심한 욕이 우리가 잘아는 '빠가야로'라는 바보란 말이 제일 심한욕이라 알고있다.
어느 기자가 그런다 한국과 일본의 고소고발 사건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이건
단순비교가 아니라 원인을 역사적 유래를 놓고 비교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라마다의 문화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건 무리가 따를 때도 있다.
그럼 한국욕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바보'는 욕도 아니다 그냥 애칭 정도일까
조선은 500년동안 양반중심의 중앙집권제가 뿌리를 내린다.
서민들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멸시와 천대를 뒤에서 욕으로 푸는걸로 해소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외부의 억압으로 인해 생기는 불만을 욕으로 푸는 문화를 발달시키게 되었고
일본은 외부의 억압으로 인해 생기는 불만을 내면화하는 문화가 발달하게 된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다 사대부의 발원지를 보자.
진,송시대이후 사대부라는 명칭이 직업은 비록 달랐지만 농,공,상과 같이 섞여 살았다가 후대에와서
사대부는 곧 문벌이 높은 집안을 가리키게 되었고 그들이 사는 곳은 농,공,상과 완전히 구별되도록
서로 섞여 거주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압구정도 중국 송나라의 정승 '한충헌'이 황제를 새로 세운 공을 이룬뒤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지은후
벼슬을 버리고 갈매기와 함께 논다는 겸손의 뜻이 원형이다.
그 압구정이 조선으로 넘어와 '계유정난'을 기획한 한명회가 갈매기압으로 부르던 정자를
지은후 그곳의 뜻이 서민들에 의해 누를압으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다.
발원지를 알면 재미나는 것들이 많다.
한강의 발원지도 오대산 '우통수'와 태백 황지의 창죽동의 검룡소를 발원지로 보기도한다.
여기는 귀한 곳이기에 잘 보존되고 있다.
그럼 지금 한국은 발원지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문화유산은 또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을까
안압지,불국사,석굴암,첨성대,무령왕릉,고인돌,장군총등 거의 다인 문화유산은 모두 귀족이나
왕족들을 위한 유산이다.
그럼 우린 이런 문화유산을 정말 잘 지키고 있을까
우리는 약간이라도 불편하거나 보기 싫으면 싹쓸어버리고 다시 짓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종로의 피맛골,중앙청,명성황후생가 담장의 일부,북촌을 밀어버리고 빌라단지를 만들자는 사람들,
창덕궁의 아기자기한 산책로를 시원스럽게 밀어버린 사람들,천재시인 백석과 길상사 자야여사가
사랑을 나누던 집,1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조선시대 세운 단성사가 헐릴때 우리 영화인들은 돈세는
일만했다.
돈에 미친한국영화인들,올림픽 메인스타디움과 국회의사당을 지은 건축가 김수근씨의 집도 싹
밀어버리거나 밀려고했다.
이제껏 나온 문화유산중 95%인 서민들의 유일한 유산 한국에 욕이 왜 많은지를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가 바로 종로의 '피맛골'이다.
종로통 대로변 정승판서행차의'말을 피하다'에서 유래된 피맛골은 종로통의 뒷골목이다.
지금 당장은 경제적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과거의 역사를 통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을 기를 수 있기 때문에 문화유산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이다.
낡은 것은 허물고 처음부터 새로 짓는다는 한국식 개발과정은 한국이 지닌 약점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이
다.
세월이 지나면 무엇이든 잊혀지는 법이지만 역사의 현장은 고이 보존되고 간직되어 다시 후손들에게
전해져야하는 법이다.
우리는 지금 전통과 낙후를 구분못하는 혼돈에 빠져 있지않은지...
가난의 잔재를 지워버리고 싶었던 구시대적 발상이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하고 있는
것일까
1392년 조선은 개국했고 그 시절 숭례문을 만들게된다.
숭례문은 한명회의 계유정난때도 있었고 임진왜란때도 있었고 흥선대원군시절에도 있었고
김영삼대통령이 치적이라고 내세우는 우를 범하며 근현대사가 그대로 녹아 있는중앙청을 부술때도
있었지만 69세 노인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고 그 노인은 국민들의 비난을 받으며 감옥으로 향했다.
종로의 피맛골은 1392년 조선의 개국시절 서민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기게된다.
피맛골은 한명회의 계유정난때도 있었고 임진왜란 때도 있었고 흥선대원군시절에도 존재했고
김영삼대통령이 치적이라고 자랑하며 근현대사가 그대로 녹아있는 중앙청을 부술때도 있었지만 낡은
것은 허물고 처음부터 새로 짓는다는 한국식 개발과정으로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고 국민들은 무관심하
거나 부순사람을 지지한다.
옛날 것을 없애는 것은 한국의 약점 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이다.
몇몇 정치인의 생각만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를 통째로 바꾸려는 발상 이제는 좀 바꿀떄
도 되지 않았을까
외국에서는 모짜르트생가 베토벤 생가에서 외국정상들과 칵테일 파티를 한다는데
왜 우리는 이런 야만의 시대에 살아야하는가
참고도서 몇권만 추려서 권한다
서울, 북촌에서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
일생에 한 번은 독일을 만나라
세계는 기다리지 않는다
내사랑 백석
맨큐의 경제학 페이지230 (역사적건물의 외부효과)
구석구석 찾아낸 서울의 숨은 역사이야기
제목 : 종로구,경주시,짧은글,실제상황
새로운 경주시장이 취임하여 낙후된 경주를 살리고자 첨성대를 밀고 세계적 IT기업을 유치해
삼성전자같은 좋은 일자리를 1000 개정도 만들고 부수적 산업창출효과도 일으켜 경주를 최고의
도시로 만들어 경주시민들이 열렬히 환호한다면 우리는 환호하는 경주시민들을 맛이갔다고
보아야할까 부러워해야할까 - 여기까지는 허구이다.
어느 도시에나 그 도시의 역사를 상징하는 상징물은 있다.
파리,런던이 두바이보다 아름다운 이유는 피카디리나 샹제리제 같은 유서깊은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뭇솔리니가 2차대전때 자신의 위용을 과시하고자 로마황제들이 다니던 거리를 밀어버리고
군사퍼레이드를 했다.
종로구를 보자 정도 600년의 산증거인 종로피맛골을 밀어버렸을때 종로구민들은 열광했고 많은
사람들은 오세훈서울시장을 지지했다. 지금도 지지하고 있고 대통령후보를 넘보고있다.
한국천주교의 상징은 구한말 명동성당이고 서울대병원의 붉은벽돌건물은 한국현대의학의 상징물이다.
충무로역에가면 배우 안성기씨의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 중에 "충무로는 영화인들의
고향입니다."
맞다 고향이 있으려면 자궁이 있어야한다. 한국영화를 넘어 북한영화까지 남북한영화의 자궁은
어디일까.
종로3가 단성사 이걸 밀어버리고 원형을 싹 없앤후 새건물을 지었을때 영화인들 돈버는 일만했다.
노무현대통령시절 미국영화직배문제가 있었다 영화인들 광화문광장에서 릴레이 1인시위를 했다.
대통령과 TV설전까지 벌였다 단성사 없앨때 옆동네 어느집에서 인테리어 하나보다했다.
고종황제시절 한국상인들의 힘만으로 세운 단성사는 영화인들의 상징인데 그걸밀어버렸다.
역사성이 있는 오래된건물은 세금감면등 여러용도로 사용할 방법을 찾아야지 밀어버리는건 정체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한양엔 4대문이 있고 그중에 하나가 흥인지문이다 지금 단성사앞을 가보자 안내문에 뭐라고 적혀있는가
'동대문'민중이 잘못된길로 가면 지도자가 바른길로 이끌어야지 잘못된길로 같이간다.
이런 사람이 무슨 지도자라고 TV에서 대통령후보토론할 준비를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