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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도서]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저/이세욱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단편소설의 매력은 짧은 이야기속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 오래도록 생각하게 만드는 데 있다.

단편소설의 거장인 프랑스 작가 마르셀 에메의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는 이야기는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걸작이다. 그의 작품은 기묘하기도 하고, 어른을 위한 동화같기도 하고, 때론  판타지의 요소도 있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는 우리나라에서 뮤지컬로도 공연되어 비교적 대중적으로 친근한 작품이다. 풍자와 유머가 넘치며, 반전도 있어 읽고 나서도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언제 읽어도 가슴에 남아 있을 이야기들이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에는 5편의 짧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첫 번째 이야기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는 파리에 사는 뒤튀유윌이라는 공무원이 습관적인 일상을 살아가다 어느날 문득 벽을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깨닫는 데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는 벽을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그런 능력을 써 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습관적인 일상을 지냈다. 뒤튀유윌에게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그는 그의 재능을 사용하지 않고, 끝까지 습관적인 그의 삶을 이어갔을 테고, 그리고 이무일 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턱별한 사건이란 것이 고작 심술맞은 상사를 골려주려 한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그의 재능을 사용하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자들의 물건을 훔치면서 세상에 주목을 받게 되고, 점점 대담해진 그는 일부러 체포되는 일까지 저지른다. 그리고, 감옥에서 탈출을 하며 완전히 스타가 되었다. 그러다 그는 사랑에 빠지고, 의사가 지어주었던 약을 먹고,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잃어버리면서, 결국 벽에 갖히고 만다. 아직도 몽마르뜨 언덕에 가면 벽에 갖혀있는 그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재능이란 어떻게 사용하는 가에 따라 행복해지기도, 불행해지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또 어리석어서 욕망을 제어하기도 힘들다. 그럼, 뒤튀유윌이 그의 재능을 적당히 사용했다면, 끝내 불행을 맞지 않을 수 있었을까? 주인공에게는 그래도 한 여인과 사랑이 그의 인생의 마지막이여서 다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네 삶도 늘 예상치 못한 변수 때문에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만다. 그래도 아무 일도 안 하고, 습관적인 일상을 사는 것보단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도전해 봐야 우리 현실에서도 무언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다음 이야기 생존시간 카드에서는 사회에서 비생산적인 소비자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쓸모없는 자들은 신분별로 한달 중에 법령에 정해진 날수를 살 수 있다. 이 쓸모 없는 자들에 작가나 예술가가 포함 된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 하다. 주인공 작가는 한달중 15일을 살 수 있다. 나머지는 피안의 세계로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살 수 있는 날이 줄어드니, 주인공은 오히려 더 열심히 정열적으로 살아간다. 글도 더 열심히 쓰고, 쾌락도 더 열심히 추구하고, 밥도 더 많이 먹는다. 그런데, 빈자들은 자신의 생존카드를 부자들에게 팔게된다. 어차피 고단한 생활, 하루라도 줄어드니 좋고, 카들 팔아서 돈이 생기니 그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게 된 것이다. 반면, 부자들은 돈으로 산 생존 카드로 한달을 두배, 세배 늘려서 살면서, 여행도 다니고, 여가를 즐기게 된다. 결국, 여러 가지 부작용으로 이 법령은 폐지된다.

빈자나 부자에게 평등한 것은 오직 시간뿐이라고 여겼는데, 이제 부자는 빈자의 시간마저 살 수 있게 되었다. 지금 현실에서도 빈자는 노동이나, 그 밖에 생존을 위해 시간을 쓰지만, 부자들은 돈으로 자기 대신 빈자에게 일을 시키고, 또 돈을 번다. 그리고 남는 시간은 여가에 사용 하든지, 다시 생산성 있는 일에 투자를 한다. 그래서, 양극화는 더 심화되고, 이젠 양극화란 단지 자본의 유무가 아니라, 시간마저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씁쓸하면서도 소름끼치도록 미래를 예측한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

 

다음 속담 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꼰대같은 아버지를 실랄하게 풍자하는 이야기다. 특히, 아버지가 식탁에 앉아 식구들에게 돌아가며 잔소리를 해대는 장면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아들이 숙제를 하지 않는 다고 일장 연설을 하는 장면은 무려 두 페이지 반이나 빼곡이 쓰여 있다. 작가의 유머에 웃음이 절로 나오는 대목이다. 결국 아버지가 해준 숙제로 아들은 20점 만점에 3점밖에 받지 못하지만, 차마 아버지한테 사실을 밝히지는 못한다. 꼰대같은 아버지이지만, 그래도 아버지 아닌가? 아버지의 자존심을 어린 아들이 지켜주는 마지막 대목은 찡한 여운을 남긴다.

 

칠십리 장화는 어른을 위한 동화와 같은 이야기다. 제르멘은 어린 아들 앙트완과 단 둘이 산다. 앙트완은 친구들과 어울려 하교길에 자신을 기다리던 엄마를 외면한 채 모험을 떠난다. 모험이라고 해 봐야 학교에서 좀 떨어진 고물상에 가는 것이다. 그곳에 진열된 칠십리 장화를 구하러 간 것이다. 아이들은 이 칠십리 장화를 신으면 가고 싶은 곳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구경하던 중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져, 모두 도망치던 와중에 구덩이에 빠져 부상을 입게 된다. 아이들은 모두 같은 병실에 입원하게 되는데, 앙트완은 친척이나 지인 한명 없이 엄마만 병문안을 온다. 부상을 빌미로 아이들은 부모에게 칠십리 장화를 갖고 싶다는 희망을 얘기하고, 부모들은 약속을 하게된다. 하지만, 고물상 주인인 노인은 다른 아이들의 부모에겐 턱없이 비싼 돈을 불러서 팔지 않고, 앙트완의 엄마 제르멘에게만 아주 싼 값에 장화를 판다퇴원 후 지붕밑 누추한 집에 돌아온 앙트완은  엄마가 자신을 위해 새로 바꾼 벽지마저 맘에 안 들고 슬펐지만,  장화를 보고 곧 행복해진다. 소년은 엄마가 잠든 후 칠십리 장화를 신고, 지구 반대편에 가서 아침 햇살 다발을 성모 마리아의 실로 묶어 와 엄마의 잠든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다. 아이는 어머니의 피곤이 덜어지리라고 생각했다.

이 책의 이야기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이다. 가난하고 외로운 모자의 이야기는 너무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집세 때문에 고민하는 엄마, 그런 엄마를 안쓰러워하는 어린 아들, 고단한 엄마를 위해 칠십리 장화를 갖고 싶어 하는 아들.

그런데, 이야기 맨 마지막에서 너무 아름다운 판타지가 펼쳐지며 반전이 일어난다. 그것이 어린 아들의 꿈이었는지, 고단한 엄마의 꿈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햇살은 누구에게나 행복을 선물한다. 부디, 이 가난한 모자가 그 햇살 한 줌으로 다시 하루를 버텨내기를 기원한다.

 

마지막 이야기 천국에 간 집달리는 직업상 천국에 가기 힘든 말리코튼이라는 집달리가 나오는데, 그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재판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하느님께 상소를 한다. 그래서 다시 세상으로 내려와 그는 천국으로 가기 위해 엄청난 돈을 쓰며, 선행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정작 그가 천국에 갈 수 있었던 것은 돈으로 행한 선행이 아니라, 어떤 가난한 여자를 지켜주려다 집 주인을 타도하자! 타도하자!” 고 외친 두마디였다.

선행이란, 어떤 목적을 갖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음에서 느껴서, 자연스럽게 행하게 되어야 의미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는 모두 40쪽 내외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서, 몇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마르셀 에메의 묘는 그가 살던 몽마르뜨 언덕에 있고, 그 옆엔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의 동상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을 덮고나니, 몽마르뜨 언덕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진다. 그곳에선 평안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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