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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걸 Lab Girl

[도서] 랩걸 Lab Girl

호프 자런 저/신혜우 그림/김희정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랩 걸을 쓴 호프 자런은 여성이고, 과학자이다. 일반인에게는 약간 낯선 직업, 지구 물리학자이다. 주로 식물을 연구한다. 과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과학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한 게 그녀가 과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였지만, 책의 첫 장에 씌여진 문장 (내가 쓰는 모든 글은 어머니께 바치는 것이다.) 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가 연구를 계속 하고, 이런 책을 내게 된 것은 그녀 어머니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아는 과학자 중에 여성은 마리 퀴리밖에 없는 것 같다. 뼛속까지 문과생인 나는 사실 과학에 별로 흥미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한다. 그리고 실제 과학자로 살아가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 당연히 과학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과학자라면 실험실에서 흰 가운 입고, 현미경을 들여다본다든지, 비이커나 실린더의 여러 가지 알 수 없는 시료들을 혼합했다, 분리 했다 하면서 분석하고 논문 쓰는 사람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든 멀리서 볼 땐 수월해 보인다. 막상 책을 읽어보니, 과학자라는 직업만큼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일이 따로 없음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인가, 인기 TV프로에서 유 시민 작가가 공부하는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로서, 이 책을 읽고 많은 위안을 받았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을 과학자의 이야기를 읽어 보기로 했다.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가 위로를 받았다니, 부모 마음은 다 똑같은 거 아닐까? 나도 엄마의 걱정스러운 딸이고, 나도 내 딸을 걱정하는 부모로서, 위로를 받고, 자식에 대한 걱정을 좀 덜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이 책은 그녀가 평생 연구 해온 나무와 과학, 그리고 그녀와 그녀의 실험 파트너 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나무, 과학, 그리고 여자로서 과학자로서 삶을 살아낸 당찬 한 인간의 의지와 한 인간과 평생 우정을 나눈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된다.

 

1. 호프 자런과 빌

노르웨이 이민자의 자손인 호프 자런은 오빠 셋을 둔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녀가 나고 자란 곳은 미국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미네소타 주이다. 북유럽 특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문화와 길게 이어지던 미네소타 주의 겨울 탓에 그녀는 따뜻하게 애정 표현을 자연스레 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이런 경험이 성인이 된 그녀가 조울증으로 고생하게 된 한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여자가 과학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많은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문학 전공으로 시작했던 대학 생활을 곧 과학의 길로 선회한다.

과학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미래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사람은 식물과 같다. 빛을 향해 자라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과학을 선택한 것은 과학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의 집, 다시 말해 안전함을 느끼는 장소를 내게 제공해준 것이 과학이었다. p33

 

미네소타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았지만 부족한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그녀는 수많은 부업을 해야 했다. 그렇게 미네소타 대학을 우등 졸업한 후 박사 과정을 밟으러 간 버클리 대학에서 평생의 실험 파트너 빌을 만난다. 어린 시절 집 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그곳으로 가출을 했다던 빌은 다른 사람들 눈에는 매우 특이하고 괴팍한 학생으로 보였으나, 호프의 눈에는 자신의 실험실에 꼭 필요한 똑똑한 인재로 보였다. 빌은 아르메니아인으로 대학살의 아픔을 겪은 조상을 두고 있다.

그녀는 박사학위를 따고, 조지아 공과대학교에서 조교수로 일을 시작한다. 그렇게 그녀와 빌의 연구 여정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어진다. 연구 기금을 따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기도 하고, 비행기 값을 아끼기 위해 50시간을 운전해 학회에 참석하기도 하고, 집세를 낼 수 없어, 지하방이나 실험실에서 기거하며, 냉동 햄버거를 먹어가며 실험을 이어가던 에피소드들은 눈물겹기 짝이 없다. 거기에다 그녀는 여성 과학자로서 과학이라는 세계에서 불공정한 편견과 맞서 싸워야 했다. 남성보다 훨씬 더 성실하고, 전략적이어야 하며, 매순간 긴장하면서 살아야했다.

부유한 국가로만 알고 있던 미국에서 그것도 명문대 교수로 일하는 과학자가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대목은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돈이 되지 않는 그녀의 연구에 연구기금이 후할 수만은 없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조울증을 오랫동안 앓게 되지만, 병원 치료와 과학, 그리고 빌이라는 파트너로 정신적 고통을 극복해 간다. 드디어 천신만고 끝에 그 둘은 존스홉킨스 대학에 두 사람의 일자리를 구해 아틀랜타에서 볼티모어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현재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는다. 하와이, 노르웨이 등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그녀와 빌은 아직도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학위를 세 개 땄고, 직장을 여섯 번 옮겼으며, 4개국에서 살았고, 16개국을 여행하고, 병원에 입원하기를 다섯 번, 중고차 여덟 대를 갈아치우고, 적어도 4만 킬로미터를 운전했고, 개 한 마리가 영면하는 것을 지켜봤고, 65,000개에 달하는 탄소 안정적 동위원소를 측정해냈다. 특히 동위원소 측정은 우리의 커리어를 내내 관통하는 목표이기도 했다. p395

이것이 호프와 빌 두 사람의 여정이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두 사람의 관계, 오누이? 영혼이 통하는 친구? 동지? 수사와 수녀 관계? 공범? 그녀는 그냥 빌이 자신의 전제 조건이라고 정의하고, 그저 우리라는 단어로밖에 표현 할 수 없다고 한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우리라는 존재...

정말 부러웠다. 그냥 길게 얘기하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생각이 연결 되어 있는 듯, 서로를 알고, 부족한 부분을 완벽히 채워주는 생대가 있다는 것! 그 영혼의 파트너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 두 사람 모두에게 큰 행운이었겠지만, 서로의 가치를 알아본 그 둘의 안목이 더욱 놀라웠다.

그 두 사람, 지금까지도 무수히 많은 역경을 뚫고 여기까지 왔듯이 앞으로도 인류를 위해 많은 연구를 해 내기 바란다. 영화 히든 피겨스의 포스터 문구가 문득 떠오른다.

천재성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에는 한계가 없다.

-영화 히든 피겨스

2. 나무와 과학

저자는 나무의 성장 과정에 빗대어 자신의 일생을 서술했다. 나무는 이 책의 또 다른 주제이다. 저자는 나무와 자연에 대해 대중에게 알리고자 한다.

이제 시선을 이파리 하나에 집중해보자. 사람들은 이파리를 만들 줄은 모르지만, 파괴할 줄은 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500억 그루가 넘는 나무를 베었다. 한때 지구 육지의 3분의 1이 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10년마다 우리는 이 숲 전체의 1퍼센트를 파괴하고, 그렇게 파괴한 숲을 다시는 복구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날마다 1조 개도 넘는 이파리들이 영양 공급원으로부터 찢겨나갔다는 이야기다. 그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무언가를 돌보고 관심을 갖는 바로 그 기본적인 이유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지 않아야 할 생명이 죽어가기 때문이다. p10

저자는 과학자로서 차근차근 대중에게 식물이 완벽한 생명체임을 설명한다. 인간 입장에서 생각하던 정적이며 수동적인 식물이 아니라, 식물의 입장에서 그들이 얼마나 완벽하며, 얼마나 능동적이고, 얼마나 생명을 갈구하는 지를 설명한다.

씨앗이 어떻게 싹을 틔우는지, 그 싹을 틔우기 위해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그렇게 싹을 틔워 얼마나 많은 기다림을 포기 하지 않고 마침내 우거진 나무가 되는지를 설명한다.

세상의 모든 대담한 씨앗들처럼 나도 상황이 닥치면 그때그때 거기 맞는 해결책을 찾아가며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p114

잡초가 왜 생겼는지, 덩굴이나 선인장, 이끼는 어떤 식물인지 설명한다. 그리고 나무들은 어떻게 벌레들의 침공에서 살아남고, 다가올 계절을 준비하고, 자손을 번성 시키는지를 설명한다. 그렇게 독자는 식물과 나무를 이해하게 되고, 스스로는 아무것도 생산해 내지 못하는 인간이 식물보다 우월한 존재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모든 나무는 자기 나름의 성장 패턴을 찾아내서 그에 따라 자라는 수밖에 없다. p301

이제 나는 저자의 희망대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초록이 보이고, 이파리가 보인다. 한 나무의 이파리는 우리 머리카락만큼이나 많다고 한다. 저렇게 오늘도 햇빛을 보고, 땅에서 물을 끌여 당겨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물하고 있는 식물들...

나는 그것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파트에 사는 나에게는 나무를 직접 심을만한 마땅한 마당도, 땅도 없다. 그러나 최소한 이제 내 눈에 띄는 모든 초록의 생명들이 그냥 배경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것들의 아파리, , 그리고 줄기를 걸음마다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그것들에게 애정이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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