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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

[도서]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

요아브 블룸 저/강동혁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출판사 푸른숲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임을 밝힙니다.

 

어느날, 큰 의미 없이 집어든 책이 당신에게 말을 건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작가가 전하는 다정한 위로'라거나 '책과의 대화' 같은 말랑말랑 보송보송 감성이 아니라, 그 분(무생물이긴 하지만 인간은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에게 본능적으로 존칭을 붙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바선생처럼.)이 당신에 대한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상황을 넘어 생각까지도 마치 들어갔다 나온 양 술술 읊어대고 있다면? 나였으면... 버렸어요... 나약한 코리안은 귀신들린 책이 무서워서 냅다 한강물에 집어던졌을 거라구. 물론 이런 슈퍼겁쟁이 독자만 있는 세계에서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시작도 못하고 사라지거나, 첫페이지부터 "잠깐잠깐잠깐 던지지 마세요! 귀신 아닙니다! 한강물 안돼!!!!"라고 외쳐야 하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소설을 소개할 때는 가급적 줄거리를 피하는 편입니다. 한 명이라도 더 이 시간의 즐거움을 공유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쓰는 글인데, 다 말해버리면 재미 없잖아요. 10분 요약! 영화 한 편! 같은 게 되어버리니까. 이것만 보면 다른 건 다 필요 없다고 유혹하는 건 수험생 요약노트로도 충분합니다. 남의 집 일이라는 뜻.

 

다른 건 덮어두더라도, 시작부터 참 불친절합니다. 대뜸 너만 알고 나는 모르는 얘기로 시작해 묘하게 이리저리 지적받고 나니 대체 뉘시오? 하는 말이 목구멍, 아니 손가락까지 차오르는 순간 '당신은 곧... 죽습니다...' 같은 느낌의 불안한 메시지라니요. 이거 행운의 편지 아니야? 당장 베껴서 일곱명한테 보내야 하는 건가? 칭찬입니다. 시작부터 독자를 꽉 쥐고 휘어잡는 문장에 푹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적어도 도입부에서는 제목을 알 수 없는 책은 이렇게 말합니다. "필요할 때마다 이 책을 가져다가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읽으"라고. 그말인즉슨 달리 말하면 모든 문장이 두루뭉술하게 적혀있다는 게 아닐까요? 조금 더 따라가봅시다.

주연 중 하나인 우리의 벤(어쩐지 강아지같은 이름!)은 좋게 말하면 평범하고 나쁘게 말하면 조금 초라한 인물입니다. 동창의 성공에 열등감을 느끼고, 뛰어난 인재가 되고 싶지만 현실은 무슨 발달린 주석기계 취급인데다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들은 방대하지만 대체 쓸 날이 오기는 할까 싶게 중구난방인, 그런 소시민이지요. 그런 사람이 무작정 '너 죽게 생겼다!' 식의 위험에 휘말려버렸으니 얼마나 눈물이... 짠내가 나겠습니까... 그걸 다잡아주는 건 '이자식 묘하게 꼬인데다 찌질해...!'라는 마음의 소리겠지요, 아마도.

 

소설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뭘까요? 소설을 읽는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습니다만, 저에게는 무엇보다도 캐릭터입니다. 등장인물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면, 악인이든 선인이든 말과 행동에 전혀 공감하거나 이입할 수 없다면 영 맞지 않는 신발을 신은 것처럼 얼마 가지 못하고 벗어던지게 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껏 한 번이라도 남을 평가하고 위아래로 훑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타인의 삶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딱히 사랑스럽지만은 않은) 주인공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각자의 열등감, 이기심, 오만함을 끌어안고 있거든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렇듯이 타인과 그들의 삶, 경험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평가하고, 밀어내고, 맛보고, 때론 집어삼키고 싶을 만큼 욕망하는 그런 마음들.

달리 말하면 저자의 인간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란 나약하고 불완전하기에 오만하고 욕망에 휩싸인 사람일 수 밖에 없다고. 더해서, 인생이란 게 누구나 그렇게 비틀거린다고. 앞서 말한 것처럼 "필요할 때마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뚝딱 얻을 수 있는 해답은 없다고, 완벽한 승리자의 완벽한 인생비법으로 가는 왕도같은 것은 없다고, 행복은 그렇지 않다고.

물론 악당은 있습니다. 그가 저지른 일은 용서할 수도 그래서도 안되는 악행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요. 그렇지만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독자라면 마음 한 켠에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겠지요. 무조건 너 나쁜놈! 하기 전에 그의 삶을, 고통을 이해하려고 시도할 수는 있습니다. 공감은 그 사람의 신을 신고 걷는 것과도 같다던 어느 옛말처럼 위스키 한 잔, 어쩌면 한 방울과 함께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고통에 함께 잠겼다가 그것을 당신의 것으로 소화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되새기며. 그러니 당신의 삶에도 행복이 필요하다고, 다만 이런 방식은 절대 아니라고.

삶은 어쩌면 준비된 필연과 우연의 연속이고, 행복은 삶의 아주 작은 순간에도 스며들어있으니 감사하라고, 사랑하라고, 그렇게 살아가는 게 삶이라고.

 

어떤 책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개개인들의 이야기를 마구잡이로 쓸어온 꽃처럼 끌어안고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작은 정원이 되어 있을 것이고, 또다시 어느새 그 정원 안을 헤매고 있는 당신을 발견할 것이고 출구 앞에서 아쉬운 마음에 발끝을 차다보면 한 폭의 그림을 안고 미소짓고 있을거라고. 이 책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이 책은 당신을 그렇게 만들거라고. 다시 한 번, 위스키, 와인, 칵테일, 어쩌면 초콜릿과 함께.

작은 팁을 드립니다. 충격적일 거라고, 이 작품의 주인은 독자가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중요하니까 두 번 말해야지. 말 그대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가지고 노는 누군가라고. 이 글을 , 이 책을 읽는 당신이 누구든간에 한번쯤 이렇게 외칠거라고. '아니 이걸 이렇게까지 써먹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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