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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도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자기성찰로 가득한 내면, 그러한 삶의 의미]








[고인이 되신 저자께: 그 엄혹한 세월을 견디게 한 건 무엇이었나요?]

나로선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생각만으로도 세월의 인고가 전해져 오는 것만 같아 상상조차 어렵다. 불과 이십대 후반의 나이에 그것도 20년이란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는 심정이라!. 20년이란 세월도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기간일 뿐 그는 형기내내 사형수와 무기수로서 끝나지 않을 지도 모를 나날들을 보낸 것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저자 신영복이 옥중에서 가족과 주고 받은 편지를 한 데 엮은 것이다. 사실 감옥은 물리적인 공간의 제약이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형벌이지만, 사실 한 사람이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활동, 생각, 동기 등 그 모든 것을 일순간에 정지 시키기에 총체적이자 크나 큰 엄벌이며 인생의 종료선고와도 같은 것이다.(잘못의 대가라는 당위성은 논외로 하고 자체의 본질적 성격상)


이 책을 읽고 난 직후의 느낌은 저자가 옥중에서 한 "사색"과 그를 통해 깨달은 "통찰"들에 대한 감명도 컸지만 그 이전에 보다 근원적으로 "20년이란 세월을 옥중에서 보내며 그 엄혹한 시간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라는 물음 같은 것이었다. 저자의 옥중편지들을 보면 그는 수감의 초기부터 마지막까지 내적인 감정의 동요나 두려움 같은 건 없었던 걸로 보일 정도다. 물론 가족의 염려를 우려해 걱정할 만한 자신의 속내는 철저히 감춘 걸 수도 있지만, 그 기간이 무려 20년인 점과 그의 편지는 일반적으로 가족과 주고 받는 범위를 넘어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자유롭게 드러내고 있는 것인 면을 볼 때 그에게 수감 생활은 단순히 "고통"이라 정의 내리기 힘든 복합적인 어떤 것으로 가득했으리라 판단된다. 고인이 되신 저자께 더이상 물을 수는 없지만 그 어떤 것은 분명 기나긴 투옥 내내 끊임없이 스스로를 뒤돌아 보던 "자기성찰"과 "부끄러움"의 자세로 부터 비롯되어 그를 더 단단하게 버티도록 하였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리고 저자의 그런 자세는 현재에 그의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묵직하고도 묵묵한 울림을 전하고 있다.





[한 포기 키 작은 풀로 서서]

이 책 군데 군데에서 찾을 수 있는 "한 포기 키 작은 풀로 서서"라는 문구는 저자의 인생관을 고스란히 그리고 종합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고백과도 같은 절절한 자기반성의 태도를 내비친다. 그것도 끊임없이.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유일하게 허락없이도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이 "생각"일테지만 이미 사회적 엄벌을 받고 있는 사람이 사회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자아성찰의 계기로 삼는 모습과 이토록 엄격한 자기검열적 태도를 보고 있으면 어떤 경외감 같은 감정이 밀려 온다.

저자의 자아성찰. 그 과정은 자신이 가졌던 선입견이나 편견에 대한 반성이자, 공동체를 구성하며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자기만 잘났다며 우쭐대는 사람들의 오만함에 대한 간접적인 폭로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인간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키작은 풀은 특별할 것는 한 포기 일뿐이지만, 그 한 포기들이 주체적으로 서있기에 풀이라는 그들의 존재를 강력히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듯 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주체적이며 고귀한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 저자 자신도 사회적으로는 이미 낙인 찍히고 실패하여 한정된 공간에 자유조차 누리지 못하는 무력한 삶이지만 그런 절망속에서도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을 편견과 단편적인 느낌 그리고 인식만으로 재단하지 않고 주체! 그 자체로 바라보며 그런 사람들이 모여 이뤄내는 공동체와 사회에 대한 믿음과 애정어린 시선을 끝까지 유지한다.




[배움에 관하여(관념보다 인식, 인식보다 실천을)]

20년 간의 옥중서간에 녹아있는 저자의 사색과 통찰은 그것이 아무리 특수한 환경에 놓여있는 상황이었다 할지라도 그 깊이와 세밀함은 누군가 흉내내듯 따라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저자는 옥중에서의 자신의 처지를 "한 발 걸음이라는 외로운 보행"에 비유했다. 사람이 성장하기 위한 두 다리는 인식과 실천인데, 사람이 활동을 통해 실천하고 그 실천의 결과로 인식을 얻는 이러한 순환반복을 성장의 원천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자신은 인식의 실천을 이행하는 활동을 할 수 없기에 인식은 정지하고 사고는 멈출 수 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저자는 독서를 언급한다.

"독서는 실천이 아니며 독서는 다리가 되어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역시 한 발 걸음이었습니다. 더구나 독서가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까닭은 그것이 한 발 걸음이라 더디다는 데에 있다기 보다 인식-인식-인식의 과정을 되풀이 하는 동안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현실의 튼튼 한 땅을 잃고 공중으로 공중으로 지극히 관념화해간다는 사실입니다"(한 발 걸음 중에서...)


오히려 저자는 책의 위험성을 경계한다.

" 저는 책에서 대단한 것을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 그것은 지식은 특유의 지적 사유욕을 만족시켜 크고 복잡한 머리를 만들어 사물을 보기 전에 먼저 자기의 머릿속을 뒤져 비슷한 지식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그만 그것으로 외계의 사물에 대치해버리는 습관을 길러놓거나, 기껏 촌놈 겁주는 권위의 전시물로나 사용하면서도 그것이 그런 것 인줄을 모르는 경우마저 없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을 지식이라 불러온 것이 사실입니다. ...지식은 책속이나 서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리된 경험과 실천속에 그것과의 통일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 믿습니다."(피서의 계절 중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인식과 실천의 통일, 그리고 그 실천을 위해 필요한 직접적인 "행동의 중요성"은 생전의 그를 알지 못하는 나 같은 독자들에게도 큰 깨달음을 안겨 준다. 그간 배움의 뜻을 인식의 축적에만 두었던 게 아닌가 싶었고, 성찰없이 인식만 쌓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그러한 삶이 내가 진정 바라는 삶인가! 라는 물음이 나를 뒤돌아 보게 한다.




[어머니, 어머님: 20년의 세월, 옥중서간을 모아보니]

독자들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을 한 권의 책으로 접하고 있지만 사실 이 책은 독자를 위한 것도 한 번에 씌여진 것도 아니다. 20년의 세월 속에 파묻힌 한 인생의 인고의 나날들이 겹겹이 모인 결과물이다. 사실 각 편지 하나하나인 그 나날들은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글이다. 그러나 편지들을 한 권의 이어진 책으로 접하는 독자들은 각 편지의 연결됨을 통해 독특한 감상 같은 걸 느낄 수 있는데, 그 감상들을 통해 저자가 편지에 직접적으로 나타내지 않은 감정들을 부수적으로 느낄 수 있다.


몇가지를 들자면,

1) 이 옥중서간은 시간의 흐름순으로 엽서가 배열되어 있다. 편지를 읽다보면 본의 아니게 추운 겨울/따듯한 겨울, 시원한 여름/더운 여름이라는 표현들이 빈번히 반복 되는 걸 알 수 있는데, 계절의 변화 무쌍함은 곧 자연의 섭리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 순간 "올 여름은 덥다"고 호들갑 떨던 작년의 내가 떠오르며 부끄러워 졌다.


2)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 편지의 주된 내용도 변화해가는데, 어릴적 추억 - 인간의 관념, 사고, 행동에 대한 통찰 - 의병, 동학, 공동체 - 주위 환경(자연), 교도소 사람들(소소한 일상), 가족 등으로 주제가 넓혀져 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결국 저자의 통찰, 성찰의 방향은 스스로에서 개인으로 개인으로부터 사회에 대한 것으로 확장 됨이 짙어 진다. 이러한 구조는 이 책이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라 하나의 완결을 가진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작품으로 느끼도록한다. 이러한 것의 이유는 온전히 저자의 깊은 사색과 통찰의 결과물 임에 틀림 없고, 또 그러한 태도가 옥중 내내 내면에 간직되었기에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유기성"일 것이다.


3) 20년간의 편지 속 가장 등장하는 단어는 <더위와 추위 >그리고 <가내 평안하시리라 기원합니다.>일 것이다. 이 편지들이 일반적인 것이었다면 이러한 표현들을 의례적인 것으로 봐도 무방하겠으나, 이 옥중서간은 의례를 의례로서만 볼 수가 없다. 그 속에는 안녕을 바라는 진실한 사랑의 마음이 담겨있다. <더위와 추위>는 옥중의 저자를 자나 깨나 걱정하는 노모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 반복되어 나타난 표현으로 보이고,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는 표현은 저자가 곁에서 부양하지 못하는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과 걱정이 애달프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편지 내용의 대상으로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사람은 바로 "어머님" 일 것이다. 저자가 감옥에서 흘러보낸 "나이"들에 비하면 아직 초입부 단계인 나에게 요즘 가장 큰 변화는 "부모님의 나이 듦"을 내가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저자의 상황과는 비교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자유로이 왕래하고 있음에도 그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나날이 약해지실 것을 생각하면 왠지 모를 서글픔이 커져만 간다. 부모님을 아직도 편하게 해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 같은 것일까.


평범한 삶속에 있는 나또한 이러한데, 옥중의 저자가 부모님에 대해 느끼는 죄송함은 얼마나 큰 슬픔으로 다가왔을까!. 사형수라는 크나 큰 충격을 안겨드렸고, 20여년간 지속 된 옥살이, 어머님이 할머님이 되시도록 얼굴조차 편히 보여드리지 못하는 무력한 처지 . 어쩌면 옥중의 저자에게 가장 큰 아픔은 이러한 죄책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옥중서간에 수없이 반복된 "어머님"이라는 그 이름은 일상이라는 이름앞에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 소중함을 그것이 결여된 상황에서의 아픔과 소중함을 간접적이지만 그 어떤 이야기보다 크게 느끼도록 해준다.




[성찰하는 삶]

성찰하는 삶은 마음가짐이자 태도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자신만 알기에 쉽게 그리고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그러하기에 자기성찰은 더욱 어렵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이지만, 복잡다단한 내 마음과 행동 그리고 욕심 앞에 자기 객관화는 점점 더 멀어질 뿐이다.

반면 우리는 상대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일에는 훨씬 적극적이다. 단편적인 면모나 이미지만으로 그 사람을 정의하려 한다. 그것이 폭력이라는 건 자신이 그 피해의 대상이 되어서야 느낄까 말까한 상황이다. 이 책의 저자는 감옥에서의 시간을 자기성찰의 계기로 삼았다. 그의 인생에서는 불행한 시간이었겠지만 그의 인고의 시간이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는 감사하게도 성찰하는 삶의 의미와 중요성을 가슴깊이 느끼도록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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