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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전쟁

[도서] 신의 전쟁

카렌 암스트롱 저/정영목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제국주의와 기독교

 

팍스 로마나 시대 기독교 모습

 나사렛 예수는 온 세상이 평화로웠던 로마 황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기원전 30-서기 14년 재위) 치세에 태어났다. 로마의 통치하에 과거 제국주의 세력도 일부 포함된 여러 나라로 이루어진 큰 집단이 꽤 오랜 기간 자원이나 영토를 놓고 서로 싸우지 않고 공존할 수 있었다. 이는 주목할 만한 업적이었다. 그러나 팍스 로마나는 무자비한 방식으로 강요되었다. 로마의 직업적인 군대는 그때까지 세계 역사에서 가장 능률적인 살인 기계였다. 조금만 저항해도 대대적인 학살이 벌어졌다.

 

 예수는 폭력으로 상처받은 사회에서 태어났다. 복음서들은 거기에 묘사되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나서 수십 년 뒤 도시 환경에서 기록되었지만, 여전히 로마령 팔레스티나의 정치적 폭력과 잔혹성을 반영하고 있다. 하나님의 왕국은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이었다. 제국주의적 통치의 폭력과 억압에 대한 대안을 세우는 일은 하나님의 권능이 마침내 인간 조건을 바꾸는 순간을 재촉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예수의 지지자들은 마치 그 왕국이 이미 도래한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예수는 로마인을 몰아낼 수는 없었지만 그가 선포한 정의와 공정에 기초한 ‘왕국’은 모두에게-특히 기성 체제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열려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국은 어느 먼 미래에 세워질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예수의 왕국은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깝게 다가감으로써 로마령 유대와 헤롯이 지배하는 갈릴리의 잔혹성에 도전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 뒤 제자들은 예수가 하나님 오른편으로 올라갔고 곧 다시 돌아와 분명하게 왕국을 열리라는, 확신에 찬 비전이 있었다. 그리스인도 로마인도 종교를 세속 생활과 나눈 적이 없었다. 바울의 공동체 구성원들은 예수의 승리의 귀환을 기다리는 동안 예수가 가르친 대로 살아야 했다. 친절하게, 서로 도우며, 관대하게, 그들은 제국주의 통치의 구조적 폭력과 귀족제의 이기적인 정책을 대체할 대안을 창조하게 된다. 그러나 바울이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초기 기독교인이 그리스-로마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많은 난관을 거치면서도 기독교 또한 무시 못 할 세력으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여전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교회의 성공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 하나는 자선 사업이다. 이 덕분에 교회는 도시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얻었다. 기독교인이 경전의 정전을 확립했을 때-4세기에서 5세기 사이의 일이다- 거기에는 다양한 비전들이 나란히 자리를 잡았고, 랍비들도 절대 하나의 중앙 권위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독교 지도자들은 발레리아누스의 죽음 이후 평화로운 40년 동안 교회를 당국에 점점 위협적인 존재로 만들게 된다. 새로 선출된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16년 동안 교회와 대립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제국의 운명이 위태로워지자 팍스 데오룸(신들이 부여하는 평화에 의지하며, 신들은 정기적인 희생제에 대한 보답으로 제국의 안보와 번영을 보장해준다고 여겨졌다)의 굳건한 신봉자였던 그는 기독교인이 고집스럽게 로마의 신들을 기리는 일을 거부하는 데 점차 인내력을 잃게 된다. 303년 2월 3일 그는 건방진 바실리카를 부술 것을 요구했고 다음 날에는 기독교인의 집회를 불법화하고 교회의 파괴와 기독교 경전의 몰수를 명령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제국의 공공 광장에 모여 로마의 신들에게 희생제를 드려야 하며 위반하면 처형을 당했다.

 

 순교는 늘 소수의 항의가 되지만, 순교자들의 폭력적 죽음은 국가의 구조적 폭력과 잔혹성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순교는 늘 종교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 선택이었다. 순교자들은 자신의 죽음을 억압자의 문간에 갖다놓음으로써 효과적으로 억압자를 악마로 만들었다. 동시에 이 기독교인들은 원한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고, 이것이 그들의 신앙에 새롭게 공격적인 날을 세우게 된다. 자발적으로 당국에 출두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혁명적 자살’이라고 부르는 것을 감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당국이 자신을 죽이도록 강요함으로써 이른바 팍스 로마나의 내재적 폭력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드러냈고, 자신들의 고통이 그 종말을 앞당길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다른 기독교인들은 제국을 악마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로마로 개종하는 주목할 만한 경험을 했다. 이 현상은 이번에도 동일한 행동 경로를 장려하는 ‘본질적’ 기독교를 확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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