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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전쟁

[도서] 신의 전쟁

카렌 암스트롱 저/정영목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누가 세계의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책의 끝에 있는 후기의 제목입니다)

 

 무려 610쪽에 걸쳐 저자의 설명과 주장, 각종 인용된 자료들을 읽으면서 책을 든 것을 잠깐 후회했습니다. 종교이야기가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책을 든 주된 이유는 ‘신의 전쟁’이라는 제목에서 추정되듯이 신의 이름으로 벌어진 잔인한 전쟁의 기록들을 보기를 기대했습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으로서 종교가 가진 폭력성, 특히 서구 제국주의에 빌붙어 식민지 주민들을 괴롭히고 착취한 제국주의의 첨병이었던 선교사들의 잔인성을 확인하고, 어떻게 평화와 공존 관용을 주장해야 할 종교인들이 개인적 민족적 국가적 야망을 가진 자들의 하수인이 되었을까 확인하고 반성하고 반복되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저자는 혹시 알고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읽기로 했던 것입니다.

 

 저자의 책 중에서 머리말을 정리하고 보니 ‘어! 내가 생각한 내용이 아닌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수는 제국주의의 정치적 폭력과 억압에 대항하는 대안을 만들기를 원했고, 그의 제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했다는 설명 이후에 기독교가 제국주의의 무기가 된 내용들을 정리했습니다. 책 읽기를 마무리하면서 저자의 후기가 많은 분량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라 간추리며 종교에 대한 선입견을 수정하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저자의 후기를 정리합니다.

 

 종교는 단일하고 변함없는 고유의 폭력적 본질이 있다는 주장은 부정확합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종교적 믿음과 관행이 완전히 정반대의 행동 경로의 영감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빈 라덴과 탈레반의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은 사실 수니파와 시아파로 갈라져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에서 극단주의자로 분리되어 아프가니스탄에서 세력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무슬림은 폭력적인 테러리스트다는 주장도 있지만 무슬림은 평화를 사랑한다는 주장도 타당하다는 설명입니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종교와 세속의 구분은 없었습니다. 모든 국가 이데올로기는 종교적이었습니다. 존 로크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가 평화의 열쇠라고 믿었지만 민족 국가는 전쟁 반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문제는 ‘종교’라고 부르는 다면적 활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과 국가의 본질에 깊이 새겨진 폭력에 있으며 국가는 처음부터 주민 가운데 적어도 90%에게 강압적 복속을 요구했습니다. 이를 위한 수단으로 군대가 있었습니다. 통치자가 국가 폭력을 피하더라도 군대를 해체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이렇게 세속주의가 없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정치를 종교적인 방식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의 신앙 전통 내 종파적 증오는 실제로 치열하고 적의가 가득하지만 거의 언제나 정치적 차원이 존재했습니다. 종파적 증오의 유발자들은 종교의 옷을 입고 있지만 자신들의 정치적 야망을 달성하기 위하여 종교를 이용했다는 말입니다.

 

액턴 경은 민족 국가가 인종적이고 문화적인 ‘소수 집단’을 박해할 것이라고 정확히 예측했는데 이 ‘소수 집단’은 사실상 이단의 대체물입니다. 그러나 과거 수니파 무슬림은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배교자’라고 부르는 것을 언제나 혐오했습니다. 이라크, 파키스탄, 레바논에서 전통적인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은 민족주의나 탈식민 국가가 겪는 문제들 때문에 악화되었습니다. 제국주의의 폭력과 압제가 분열을 악화시켰습니다.

 

 종교는 늘 공격적이라는 말은 결단코 사실이 아닙니다. 때로는 오히려 폭력에 제동을 걸기도 합니다. 서양에서 이제 세속주의(교회와 국가가 분리된 사회)는 정체성의 일부입니다만 세속주의에도 그 나름이 폭력이 있습니다. 혁명 프랑스는 강요 강압, 유혈에 의해 세속화되었습니다. 세속화는 때때로 성지에서 학살하고, 성직자들을 고문 투옥 암살하는 등 종교에 피해를 끼치기도 했습니다.

 

 전쟁은 “관계를 보지 못하는 무능력”이 원인입니다. 우리가 왜 관용을 해야 하는지,  왜 폭력을 거부해야 하는지, 왜 억압을 강요하지 말아야 하는지는 역사를 뒤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얽혀 있는 관계를 보지 못하는 무능력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종교가 가장 훌륭했을 때 해낸 일을 지금 우리가 다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사족 : 툭하면 북한과의 갈등을 조장하여 지지를 받고자 하는 자들은 북한과 우리가 어떤 관계인가를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북한 평양에 탱크를 몰고 가야 한다는 주장이나, 선제공격을 하겠다는 주장이 결국 어떤 결과를 낼 것인가에 대한 답은 ‘전쟁’이구나라는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습니다.

전쟁은 관계를 보지 못하는 무능력이 원인이다” 새겨들어야 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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