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가재가 노래하는 곳

[도서]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저/김선형 역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작가가 이 책은 '외로움'에 대한 책이라고 했다. 과연 인간이 이렇게까지 고립되는 것이 가능할지를 생각해보면 이 책의 설정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카야를 고립시킨 주범(?)이나 다름없는 인종차별정책도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난 오히려 현실적이라고 느껴졌다. 카야와 똑같은 방식으로 고립된 사람은 없을 수 있지만 미국 당시의 흑인이라면, 어느 형태로든 이러한 수준의 고립을 겪은 사람이 한 명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보다 더 하면 더 했겠지. 

 

반전 같은 결말은 나에게는 별로 반전 같지 않았다. 그냥 예상했던 결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정에서 톰 변호사가 배심원들에게 '편견에 사로잡혀 카야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평결을 내리지 말라'는 식으로 최종변론을 할 때는 좀 시시했고 앞으로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 대충 예상됐고 그대로 전개됐다. 그래도 작가가 다루고자 했던 외로움과 고립은 나에게 잘 다가왔던 터라 책 자체가 지루하지는 않았다. 

 

1. 

"낚시 따라가고 싶니?"

"네, 가고 싶어요."

"넌 여자애잖니." 아버지는 접시를 보고 등뼈를 씹으며 말했다. 

"네, 전 아빠 딸이에요."

- 많은 경우에, 이 세상을 어린아이의 눈으로 봤을 때 이상하지 않은 모습으로 바꿔가는 게 나름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여자애'가 '낚시'를 한다는 것에서 그 어떤 어린아이가 이질감을 느끼겠는가? 

 

2. 

카야는 자기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왜 상처 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피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용서의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 걸까?

- 공감했던 부분이다. 너무 상처받고 너무 지치면, 그냥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뒀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이럴 때 누가 용서해줄 수 없겠느냐는 말을 건네면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참 어려워져서 머리가 폭발할 것 같다. 이미 일어난 일인데 내가 용서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가? 용서 후 달라지는 게 있다면 상대가 느끼는 죄책감의 무게밖에 없지 않나? 그렇다면 용서라는 건 어느 쪽을 위한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이 구절이 와 닿았던 것 같다.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