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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나의 두 신사중국의 영화 황제 김염(金焰)

 

베로나의 두 신사에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김염(金焰)이라는 배우를 발견했다.

그 과정은 이렇다.

 

지식갤러리에서 펴낸 스탠리 웰스 외 공저인 셰익스피어의 책에서 베로나의 두 신사를 소개하는 항목에 다음과 같이 설명이 나온다.

 

1931, 복만창 (Bu Wancang, 복만창) 감독이 20세기 중국을 배경으로 이 희곡을 각색하여 흑백 무성영화 <일전매(一箭梅)>를 만든다.

 

간단한 내용이었지만, 1930년대에 중국에서 이 희곡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해서 자료 검색에 들어갔다.

 

있었다, 영화 <일전매(一箭梅)>에 관련된 자료가 아주 많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런데 모든 자료들은< 일전매>라는 영화보다는 거기에 출연한 한 사람의 배우에 주목하고 있었다. 바로 김염이라는 한국 배우.

 

 

 

자료 목록을 우선 열거한다.

 

金焰을 기리면서.... 중국의 영화황제였던 한국인.

https://blog.naver.com/gct2002kr/220997490555

 

중국에서 영화로 독립운동 대배우 김염

http://smarteasy.tistory.com/293

 

중국 영화 황제 김염

http://blog.daum.net/kevinrun/4715098

 

그의 생애를 나무위키에서 인용해본다.

 

191048일 대한제국 서울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필순 의사였는데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에 의해 수배가 되자 1912년에 만주로 이주하였다. 국적은 1912년부터 중화민국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 첩자에 의해 살해 되었고 김염은 혼자 남아 고아가 되었다.

1927년에 김염은 상하이로 갔고 영화사에서 기록원으로 일하다가 출연한 게 인연이 되어 배우가 되었다. 하지만 김염이 배우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어린시절부터 배우가 되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해왔던 사람이었다. 배우로 성공한 그는 1930년대에 상하이에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성공한 후 갑작스런 발표를 하게 된다. 유명한 배우로 자신을 스타덤에 오르게한 멜로영화를 그만 두고 앞으로 항일 영화만 찍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아버지가 일본첩자에 의해서 살해당한 어린시절부터 결심했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배우가 된 이유도 영화의 사회적인 영향력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항일 영화 출연을 통해 독립운동을 하였고 그 수는 40편에 이르렀다. 하지만 후에 중국을 점령한 일본에 의해 김염은 제국주의 영화 출연을 강요받지만 그는 그 순간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관총으로 나를 겨눈다고 해도 그런 영화는 찍지 않을 것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국적도 바뀌었다. 19831227일에 상하이에서 사망했다. 아내는 중국의 배우인 친이(秦怡, 1922-)인데 생존 중이다.

 

기타 자료를 살펴보니, 여러 기록이 나온다.

 

상하이 복수원이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 김염의 묘소가 있다.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한국인인 김염을 위해서 기념우표가 나오기도 하고, 기념주화까지도 나와 있다. .기념서적도 8종 정도 발간이 되어 있다 한다. 한국인으로 지금까지도 존경받고 있는 진정한 영화황제다

 

그렇게 유명한 배우인 김염이 출연한 영화가 셰익스피어의 극을 각색한 <일전매>.

아쉬운 것은 <일전매>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저 이 정도 자료만 나온다.

 

<김염은 '일전매(一剪梅)'에서는 의적이 되는 경비대장 역을 맡았다.>

 

아마, <베로나의 두 신사>에 등장하는 산적을 일전매에서는 의적으로 각색하여 등장시킨 듯하다

 

앞으로 김염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져, <일전매>에 대한 자료도 많이 나타나, 베로나의 두 신사에 대한 관심도 따라 높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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