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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4- 헨리 왕자에 대한 역사적 사실 기록들

 

셰익스피어는 그의 극 헨리 4에서 헨리 왕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는데, 문학적 작품으로 형상화 된 것이라 아무래도 헨리 왕자에 대한 미화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헨리 왕자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어떨까?

찰스 디킨스가 쓴 영국사 산책에 헨리 왕자에 대한 기록이 있다.

 

<얼마 후 양측 군대는 슈루즈베리에서 맞닥뜨렸다.

양측 군대는 각각 14,000명 정도였다. 고령인 노섬벌랜드 백작의 건강이 좋지 않아 그 아들이 반란군을 통솔하게 되었다. 헨리 4세는 적의 눈을 속이기 위해 일반 병사의 갑옷을 입고, 네 명의 귀족이 왕실의 갑옷을 입었다. 반란군의 돌격은 아주 맹렬해서 그 귀족 네명 모두 목숨을 잃었고, 왕실 깃발도 찢겨나갔으며 어린 왕세자도 얼굴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왕세자는 역사상 가장 용감하고 훌륭한 군인답게 아주 잘 싸웠다. 헨리 4세의 병사들은 그의 이런 대담한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어 즉시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 적군을 무찔렀다. 핫스퍼가 머리에 화살을 맞고 죽자 반란군 전체가 단번에 와해되었다.>(300)

 

<웨일스나 프랑스와 어쩌다 겪는 갈등을 제외하면 헨리 4세의 나머지 치세 동안 잉글랜드는 평온한 편이었다. 그러나 헨리는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이 왕위를 가로챘고 사촌의 비참한 죽음에 원인을 제공했다는 사실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였을 것이다. 더구나 아들인 왕세자는 비록 대담하고 관대한 면이 있지만 행동거지가 제멋대로인데다 방탕했다.

 

한번은 왕세자가 똑같이 방탕한 친구들 중 한 명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왕좌재판소의 수석 재판관 개스코인을 행해 칼을 빼든 적도 있었다. 이에 수석 재판관은 왕세자를 즉각 투옥하라고 명령했고, 왕세자는 순순히 명령에 복종했다.

 

이일을 두고 헨리 4세는 그토록 공정한 재판관과 그토록 기꺼이 법의 명을 받드는 아들을 둔 군주는 행복하도다!”라며 감탄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것은 전부 진위가 의심스러운 내용이고, (셰익스피어가 작품에서 아름답게 각색했듯이) 왕자가 아버지가 잠든 틈을 타 방에서 왕관을 가지고 나와 자기 머리에 써보았다는 이야기 역시 진위를 알 수 없다.>(302)

 

이런 사실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사족 : 헨리 왕자에 대한 기록으로 찰스 디킨스의 책 이외에 앙드레 모로아의 <영국사>에 기록이 나타나 있다는 것은  김성한의 소설 <바비도>에 관한 글에서 이미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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