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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에게 이의 있다외친 정제두를 만나다 

 

하곡(霞谷) 정제두(鄭齊斗)는 윤휴보다 한 세대 늦게 태어났다. 박세당보다도 한참 후배였다. 정제두가 경전을 바라보는 입장은 탈성리학적이었다. 대학서인 大學序引이라는 글에서 정제두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유교의 경전은 뜻을 아는 사람이 읽으면 저절로 다 이해가 된다. 굳이 주를 달고 해설을 붙일 필요가 없다. 그랬기에 옛적에는 자구만 풀이하는 것[訓?]으로 만족했다. 그런데 송나라의 주희가 등장하여 상황이 바뀌었다. 주희는 구절마다 형이상학적 해석을 하느라 수많은 주를 달았다. 그 바람에 경전의 본뜻이 변하고 말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주자의 해석이 경문 본래의 뜻을 어겼으므로, 다시 고쳐서 해설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중용, 조선을 바꾼 한권의 책, 백승종, 112-113)

 

여기까지 읽고, 눈을 더 크게 뜨고 읽기 시작했다.  

정제두는 나에게 새로운 인물이었다. 중용을 해석하는 차원이 기존의 입장과 달랐던 두 사람만 알고 있던 나에게 정제두는 제 3의 인물이요, 새로운 경지였다.

 

조선시대 중용의 해석을 둘러싸고 사문난적으로 몰려 사약을 받은 윤휴, 그리고 주희를 거슬러 올라가 공자와 맹자의 본질에 닿고 싶었기에 경전의 해석을 달리했던, 그래서 박해를 받아 유배를 떠났던 박세당, 그 두 사람만 알고 있던 나에게 정제두는 새로운 경지였던 것이다.

 

대체 주희가 누구이길래 공자보다도 맹자보다도 더 권위를 부여하고, 주희의 말 일점일획이라도 거스르면 사문난적으로 몰아 죽인 송시열과 그들 세력들, 그들에 반대한 사람이 또 있었다니! 경전 해석을 주희 판박이에서 벗어나 해석의 자유를 주장한 정제두에게도 이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듯하다.

 

, 그럼 윤휴와 박세당은 주희와 해석을 달리 한다고 핍박을 받았는데, 정제두는 어땠을까?

그 뒤를 읽어보자.

 

조선의 기득권층은 정제두의 발언을 용서할 수 없었다. (……)

영조 2, 집권세력인 노론은 정제두를 해치려 했다. 그들은 벌떼처럼 일어나 정제두를 사문난적이라며 성토했다. 그러나 영조는 숙종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노론의 요구를 묵살했다. 2년뒤인 영조 41728년에는 도리어 그에게 의정부 우참찬이라는 높은 벼슬을 내렸다. 영조는 만년의 정제두에게 안온한 여생을 허락했던 것이다. 1736년 영조 12년 정제두는 88세의 나이로 천명을 다했다.

(위의 책, 113)

 

다행이다. 한 사람이라도 평안을 누리다 가야지.

그렇게 천수를 누리다 간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다니, 이 책을 읽는 내 마음이 다소 편해진다.

윤휴, 박세당, 그 두 사람의 경우와는 그래도 달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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