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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 산책 83호>

문학의 향기로 남은 섬



-심 경 호(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나사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젊은 굿맨 브라운(Young Goodman Brown)』은 인간 내면에 깃들어 있는 악마적 속성을 환상적 기법으로 드러내 보인 고전이다.
마을에서 선량하다고 칭송되는 이들이 실은 무고한 사람을 마녀재판으로 학살하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끔찍한 꿈’을 통해 알게 된 젊은 브라운은 아주 딴사람이 되고 말았다.
“완전히 절망적이진 않다 하더라도 근엄하고, 슬프고, 어두운 생각에 잠기고, 모든 것을 불신하는”그는 백발노인으로 죽기까지 끝내 음울함 속에서 죽어갔으므로 사람들은 그의 비석에 “아무런 희망의 글귀 하나 새겨 넣을 수가 없었다.”(천승걸 옮김에서)

브라운이 인간의 악마적 속성을 알게 되어 음울함 속에 죽어간 것은 그가 살았던 마을과 마을을 둘러싼 숲이 밝음의 역사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날 밤 브라운이 세일럼 마을을 벗어나 황량한 숲길로 들어섰는데, “정말이지 그 숲길은 너무 고독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고독함은 수많은 나무 기둥과 짙게 드리운 나뭇가지 뒤에 누가 숨어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미묘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음울한 풍광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숲은 나뭇가지 뒤에 숨어 있는 악마가 기분 나쁜 입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마을과 숲에 간직된 밝은 이야기와 때로는 어두운 과거사까지도 ‘역사미’로 결정화되어 있다.
그것들은 전설이 되고, 문학이 되고, 예술이 되었다.
『한시기행』과 『산문기행』을 집필하면서 내가 느낀 감흥과 신명은 바로 그 역사미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자도에 서린 이야기들과 ‘역사미’


이 봄 4월 4일, 서울시립대학교에서 「한강의 섬」을 주제로 학술발표를 개최할 때 나는 집행부의 요청에 따라 저자도(楮子島)와 관련된 시문에 관해 발표하였다.
그 준비를 하면서 우리 국토에 서린 역사미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고, 그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였다.

저자도는 청계천이 사근동 동남쪽에서 중랑천과 합류되어 서남으로 꺾이면서 한강으로 접어드는 곳에 이루어진 삼각주였다.
고려 말 호방한 인물인 한종유가 거처하였던 일화가 전설로 되어 전해지고, 세종 때 대마도 정벌을 떠나는 이종무 일행의 출정식을 거행하였다는 사실이 역사서에 남은 섬이다.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북한강이나 남한강으로 나가는 사람을 전별하는 곳이자, 경강 어구의 선유락에서 중심지이자 경유지였다.
특히 이 섬은“서울에 가깝지만 상당히 외졌다”는 사실 때문에, 욕망이 분출하는 뜨거운 세계[열세계(熱世界)]로부터 몸을 빼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었다.
개결한 처사였던 허격(許格), 정승을 지낸 문학가였던 이세백(李世白), 이세백의 내제로서 역시 대문호였던 김창흡(金昌翕)이 이 섬에 은둔하면서 많은 일화와 시문을 남겼다.
이세백이 죽은 손녀를 애도하여 쓴 글은 너무도 애절하면서 질병에 맞선 선인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글이다.
김창흡이 초가의 낙성 때 지은 상량문은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정신지향을 담아낸 명문이다.

‘저도귀범(楮島歸帆)’이라는 조어가 만들어진 데서 상상할 수 있듯이, 이 섬 일대의 안온하고 고즈넉한 풍경은 선인들의 시문 속에 원경으로 스크랩되어 있었다.
그리고 국가적으로는 기우제, 벌빙과 연병의 장소로서 중시되었다.
또한 저자도는 국가의 채전을 가꾸는 농민과 벌빙군을 대신하여 품삯을 받고 얼음을 채취하는 민중들이 생활하던 곳이기도 하였다.
더구나 저자도에는 백제 온조왕의 행궁이 있었다는 전설도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어우러져 저자도의 ‘역사미’를 구성하였던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봉은사에서 지내며 지은 잡시[寺居雜詩]」가운데 제5수에서 저자도 수신사에서 굿 하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저자도 강변에서 해 질 무렵
楮子洲邊落日時
둥둥 수신사에 무당 북소리.
巫鼓水神祠
마을 사람 공수를 가만히 들어보니
村人密聽奏
모두가 원한 품은 여인의 말.
多是閨中怨女詞



이 시를 읽으면 저자도의 수신사에서 우리네 여인들이 한스러운 마음을 공수로 풀어 흩던 광경을 선명하게 눈앞에 떠올릴 수 있다.
그녀들의 슬픈 사연은 한강 물에 둥실 떠서 바다로, 바다로 흘러갔으리라.

연암 박지원이 큰 누님의 상여를 실은 배를 바라보면서 통곡하며 돌아간 곳도 저자도 강변 두모포에서의 일이었다.
「큰 누님 증 정부인 박씨 묘지명(伯 贈貞夫人朴氏墓誌銘)」에서 연암은 28년 전 여덟 살 때 큰 누님이 시집가던 날 어리광 부리던 일을 추억하였다.
그리고 자형이 큰 누이의 상여를 배에 싣고 까마귀골로 향하는 것을 두모포 강가에서 바라보았다.

강가에 말을 세우고 아득히 보니,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돛대의 그림자가 구불구불 흘러가더니, 언덕에 이르러선 방향을 틀어 나무들에 가려져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런데, 강가의 먼 산은 검푸른 것이 쪽찐 머리와 같았고, 강 빛은 거울과 같았으며, 새벽달은 눈썹과 같았다.
빗을 떨어뜨리던 것을 눈물 흘리며 생각해 보니, 오직 어렸을 때의 일이 또렷하고 또 기쁨과 즐거움이 많았다.
긴 세월 가운데 사이사이 늘 이별의 고통을 겪고 빈곤을 근심했으니, 그것들은 홀홀히 지나가는 꿈과 같은데, 형제로 살았던 날들은 또 왜 그리 짧은지.


‘역사미’의 향기를 맡을 수 있기에


이러한 풍광과 역사를 지닌 저자도 자체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1970년대 강남 압구정을 개발할 때 이 섬에서 골재를 채취하여 섬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당시 저자도가 지닌 인문학적 배경을 충분히 검토하였는지 의심스럽다.
닭소리, 가을 기운, 별, 달, 안개, 물빛, 물새 등이 어우러져 만들어내었던 조용한 저자도 일대의 풍광은 이제 존재하지 않기에, 한강은 영혼의 정화력을 일부 상실하고 말았다.

그래도 우리는 젊은 굿맨 브라운이 모든 것을 불신하다가 묘비명에 아무런 희망의 글귀 하나 새겨 넣을 수 없이 죽어간 것과는 다른 미래를 살아갈 수 있다.
‘역사미’가 뿜어내는 향기가 우리를 황폐함에서 구해내주기 때문에. ‘역사미’가 뿜어내는 향기를 맡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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