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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탁오의 『분서』와 개

나이 50 이전의 나는 정말로 한 마리의 개에 불과하였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어댔던 것이다.” 명나라 때의 사상가 이탁오의 글 한 구절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인 1602년 2월 5일에 남긴 유언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유서 대부분은 자신의 묘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제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지시하는 데 할애됐다. 이 유언을 남긴 뒤 얼마 뒤 3월 16일 그는 자결했다.

근대 이전 지식인들에게 경서 공부란 무엇이었을까. 시대가 흐를수록 경전을 공부하는 것은 과거 시험을 통과해 출세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능 했다. 관직에 나아가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한 출발점, 그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성현들의 말씀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글쓰기를 잘할 수 있었으므로 경서를 익히는 것은 세속적 욕망을 성취하는 도구로 여겨졌다.

이러한 현실을 이탁오는 강력하게 비판했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지식인들이 오직 성현들의 말씀만 되뇌일 뿐 그 참뜻에 대해서는 관심도 두지 않으며, 그러니 다른 개들이 짖을 때 자기도 덩달아 따라 짖는 짓을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고 했다.

남을 따라 짖기만 하는 개가 되지 않으려면 공부와 실천의 합일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함께 공부하며 서로 격려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불교의 수행자들은 이를 ‘도반’이라 부르거니와, 이탁오 역시 그런 존재를 강조했다. 인간은 누구나 스승과 벗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스승의 가르침만을 따라서 오직 한길로만 가기에는 너무도 많은 유혹과 욕망이 횡행한다. 따라서 내 삶의 어지러움을 잡아주고 힘들 때 함께 독려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갈 벗이 필요하다.

이탁오 역시 스승과 벗을 중시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스승과 벗의 범주는 조금 특별했다. “내가 말하는 스승과 친구란 원래가 하나이니, 어떻게 두 가지 다른 의미가 존재하겠습니까?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친구가 바로 스승인 줄은 알지 못하니 …… 고인은 친구가 연계가 바의 중요성을 아셨기 때문에 특별히 ‘스승 사(師)’를 ‘벗 우(友)’ 앞에 놓으시어 친구라면 스승이 아닐 수 없음을 보이셨으니, 만약에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친구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인들 스승의 도가 없었으랴마는, 그 도리가 현실 속에서 발현하는 모습은 시대마다 달랐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시대에, 스승을 벗과 동일시한다는 발상 자체가 참으로 신선하다. 이러한 논지를 담은 스승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의 문장가였던 韓愈가 그의 「師說」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건 적건 간에 많이 아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배워서 스승으로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는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탁오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스승이 벗이요 벗이 스승이라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스승 같은 벗, 벗 같은 스승이 그의 이상적인 사제 관계였다.

 이탁오의 이러한 논의는 결국 주변의 어떤 존재에게서라도 배울 점이 있다면 서슴없이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경건한 자세와 예절을 잘 지켜 스승으로 모시면서 마음속으로는 스승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제 관계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통째로 공부와 하나가 되지 않았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생각이다.

이탁오의 『焚書』를 읽노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선 후기 박지원 그룹의 인물들을 떠올린다. 달빛 환한 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술을 놓고 시를 읊조리거나 음악을 연주하면서 담소를 나눈다. 거기에는 나이와 신분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적 공유 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동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벗이자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했으리라. 그런 점에서 그들이 이탁오의 『분서』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의 생각에는 상당 부분 동의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곤 하는 것이다.

이탁오의 글을 읽으며 주변을 돌아본다. 나에게는 저와 같은 스승이자 벗이 있는가. 나는 스승이자 벗으로서의 존재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공부에 대한 열망이 치열한가. 그런 생각들이 책갈피 사이로 스친다.

이 글은 필자의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푸르메, 2009)의 일부로, 필자의 동의하에 재수록한 글입니다.

김풍기 서평위원/강원대·국어교육과. 교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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