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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인문강좌] 이탁오 -『분서』읽기, 삶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유의 힘


 공간 플러스의 금요인문강좌가 벌써 올 들어 세 번째 강좌를 준비하고 있다. 이희경 선생의 <여섯 가지 테마로 본 학교>와 전일성 감독의 <스타일로 보는 영화-기계>에 이어, 오는 5월 2일부터는 채운 선생의 <이탁오-『분석』읽기>가 시작된다. 문학, 예술, 철학 등 인문학의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다채로운 지적 향연을 펼치는 금요인문강좌는 이젠 그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기대를 품게 한다. 명말의 사상가 이탁오를 통해, 삶에서 부딪히는 한계들을 넘어서는 전복적 사유를 소개하겠다는 채운 선생은 그 이력부터 이채롭다. 학부는 국문과로 졸업하고, 학위는 한국 근현대 미술 연구로 받았다. 서사연(서울대 사회과학 연구소) 출신으로 연구실에 발을 디딘 후 푸코, 들뢰즈 등을 통해 근대성에 대한 연구를 했고, 이를 통해 품게 된 ‘근대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동아시아 사상을 탐색하며 그 비전을 찾는 중이다. 이런 그가 그려 내는 이탁오는 어떤 모습일지 미리 들어본다.

 

Q. 연구실에 있다 보면 오며가며 이탁오에 대해 듣게 됩니다. 얼핏 듣기로도 상당히 흥미로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요. 그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계신지,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이탁오(본명 이지)는 1527년생으로 명말에 살았던 사람이에요. 흔히 저물어 가는 시대, 부패한 시대라고 말하는 시기를 산 사람이죠. 과거를 보고 나서 30년 정도 이곳 저곳을 오가며 말단 관료생활을 했죠. 당시는 학자가 곧 관료였던 시대고, 그렇게라도 근근히 벌어야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 시대의 사상적 기반은 주자학이었고, 과거를 위해 모두가 그것을 줄줄 암송하고 다니던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도학자'임을 자칭하는 자들이 안으로는 썩을 대로 썩어 있으면서 겉으로는 예(禮)나 도(道)를 말하고, 기존의 경전 해석을 의심 없이 답습하고 있었죠. 이지는 이런 지식인들의 허위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존의 사상적 근저를 의심하고 ‘이단'으로 칭해지던 불교와 노장사상을 공부했죠. 이른바 ‘커밍 아웃'을 한 셈인데, 그 때 나이가 이미 50이 넘었을 때입니다.

『분서』에 나오는 ‘나는 한 마리 개였다'는 자기선언을 그 나이에 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죠. 20대 때 하는 자기부정과 50대에 하는 그것은 아주 의미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공부할 여유가 생겨도, 지천명이라는 나이에, 사상이 완고해지고 보수적이 되기 쉬운 그 나이에 그렇게 부정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 아니겠어요? 그 후로 본격적으로 글도 쓰고, 불교 같은 것을 공부하면서 도학자들과 논쟁을 하기 시작합니다. 제 생각에, 이탁오가 하려고 했던 작업은 삶과 욕망을 일치시키고 욕망과 사유 사이의 거리를 없애려는 것이었어요. 삶에서 만나는 한계 상황들을 공부로, 사유로 극복해 나가려고 한 것이죠. 흔히 말하듯 그저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욕망으로부터 학문과 삶을 사유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래서 ‘이단'이라는 주변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의연하게 살아갑니다. 죽음도 그렇게 맞이하고요.


Q. 말씀을 듣고 보니 내공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그 『분서』라는 텍스트는 어떤 책인가요.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접하게 되셨고, 어떤 것들을 공부할 수 있었나요.

A. 말한 대로 『분서』는 이지가 쉰이 넘어서 쓴 책이에요. 자기 사유의 불온함을 그도 알고 있었죠. 책 제목이 ‘태워버려야 할 책'이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니체라면 ‘위험한 책'이라고 했겠죠. 처음에는 이탁오 책 중에 번역된 것이 그것밖에 없어서, 다른 책은 읽을 수가 없었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거죠.(^^) 최근에 <분서> 두 권과 <속분서>가 완역되어 나왔습니다. 책은 칠팔년 쯤 전에 아주 우연히 접하게 됐어요. 동아시아 사상들을 공부하면서 우연히 이 책을 접하고 정말 큰 충격을 받았죠. 굳이 분류하자면 이지도 유학자임이 분명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유학자로서의 그의 한계가 아니라, 그가 ‘유학'이라는 사유에 어떻게 어떤 균열을 내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들뢰즈 표현을 빌리자면 이지는 횡단계수가 아주 높은 사람이에요. 경계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자신이 접한 모든 학문들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부딪히는 한계들을 밀도 높게 사유하고 또 그걸 넘었다고 생각해요. 『분서』는 이런 그의 사상이 가장 잘 응축된 이지의 대표적인 저작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어요. 경전에 대한 해석들을 자기 식으로 다시 풀어내고, 공자도 노장자도 불교도 뛰어 넘으면서 자신의 사유를 펼쳐갑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전히 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유학에 어떤 균열들을 일으키고 있는지, 그 균열들을 통해 무엇을 읽어낼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분서』에 대한 느낌은 사유가 펄떡거리고 있다는 것, 생동감 있는 사유 같은 거에요.



Q. 연구실에서 열리는 강좌들은 단순히 누구의 사상을 개괄적으로 소개한다거나, 교양으로서의 인문학적 지식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강좌를 준비하시면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같은 것이 있으실 텐데요. 수강하시는 분들과 함께 공부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덧붙여 수강생들에게 미리 당부 드리고 싶으신 말씀은 없으신지요.

A.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한다고 하면 뭔가 현실과 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들을 하시는 것 같아요. 특히 동양 고전 공부를 한다고 하면 그런 생각들을 더 많이 하시는 것 같고요.(^^) 그런데 이지의 책을 보면 사유 자체가 어떻게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어요. 이것이 그의 사유가 가진 힘이기도 할 텐데, 사유가 결코 삶과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 정말 강렬하게 다가오죠. 『분서』는 다른 점은 차치하고라도, 공부 자체를 강하게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탁월한 책입니다. 단지 좋은 말들을 찾아서 읽겠다고 하면 ‘고전'은 그냥 좋은 덕담집일뿐입니다. 그런데 이지는 공부한다는 것이 생사를 넘어서는 문제라고 말해요. 어떻게 공부로 생사를 넘을 수 있을 것인지를 한번 고민해보면 좋겠어요. 매 순간 삶의 한계는 전혀 다르게 내 앞에 닥쳐옵니다. 공부도 마찬가지고요. 어찌 생각하면 그렇게 부딪히는 매번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나의 죽음이기도 하죠. 그것을 어떻게 사유하고, 또 어떻게 사유를 통해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지를 보고 싶어요. 공허한 지식인이 아니라 삶과 세상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신의 사유를 삶으로 증명했던 한 사상가를 공부하면서 나의 삶을 반추해보고 고민할 수 있을 겁니다. 책 분량이 좀 많고 결코 쉽지 않은 텍스트지만,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함께 읽어나가면 좋은 공부가 될 것 같아요.


연구공간 수유+너머 웹진 이초선 기자 chosun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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