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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는 게 겁날 때 -『이탁오 평전』
김이경 2009년 07월 07일 (화) 08:03:29
6월의 마지막 날 편집자 후배를 만났더니 벌써 일 년의 반이 갔다며 울상을 짓습니다. 일도 연애도 지지부진한 채 세월만 보내는 게 걱정이라기에,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잘 생각하고 지금이라도 꿈을 꿔봐.” 하니까 한숨을 푹 쉽니다. “이 나이에 꿈을 꾼다고 되겠어요?” 이번엔 제가 한숨을 쉴 차례입니다.

서른이 넘은 친구들이나 마흔, 쉰이 넘은 사람들이나 노상 입에 달고 사는 게 ‘나이’입니다. 나이를 먹으니까 눈도 침침하고 기억력이 떨어져서 책도 안 읽히고 뭘 배우기도 힘들다는 하소연부터, 나이를 먹으니까 웬만한 일은 다 알겠고 이해가 되고 통달이 되더라는 자부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나이’를 빼고는 얘기가 안 됩니다.

그러나 나이는 만병의 근원도 아니고 지혜의 조건도 아닙니다. 늙고 죽는 것은 생명체의 당연한 이치일 뿐, 그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런데도 자꾸 나이 얘기 하는 분들, 부디 중국 최대의 이단아 이탁오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중국의 평론가인 옌리에산(鄢烈山)과 주지엔구오(朱健國)가 함께 쓴 『이탁오 평전』. 명 말(明末)의 사상가 탁오(卓吾) 이지(李贄)의 사상과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지(1527-1602)는 76년의 긴 생애를 살았으나, 평전은 그가 관직을 버리고 학문에 전념하기 시작한 쉰네 살부터의 인생을 담고 있습니다. 이지 스스로 “오십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사상가 이지의 삶이 쉰 넷에 비로소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인생을 정리하고 품었던 꿈조차 버릴 나이에 이지는 새로운 출발을 결심합니다.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고향과 가족을 떠나 오로지 진리에 헌신하기로 마음먹은 겁니다. 나이에 연연했다면 차마 못할 일이지만, 그 대담한 결심 덕분에 『분서(焚書)』, 『장서(藏書)』 같은 봉건세계를 뒤흔든 저작들이 나오고 “중국 제일의 사상범”이 존재하게 되었으니 역사를 위해 참 다행스런 일이지요.

그러나 이단아니 사상범이니 해서, 그가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난 특별한 사람이라 이런 결정도 쉬웠을 거라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훗날 이단사상가로 이름을 떨친 이지였지만 25년간의 관직생활을 그만두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옷 입고 밥 먹는 것이 인륜이며 사물의 이치”라고 선언할 만큼 그는 물질과 경제의 중요성을 잘 알았던 사람입니다. 더구나 몰락한 상인 집안의 후손으로서 20여 년을 고생하여 간신히 4품 지부 자리까지 올랐는데 그걸 팽개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요.

“관직에 있을 때의 속박이 싫으면서도 차마 떠나지 못하는 마음”을 지닌 채 그는 3년여를 더 버팁니다. 그러나 이미 불후의 학문을 추구하기로 뜻을 세운 그에게 벼슬살이는 고역일 뿐이었지요. 1580년 마침내 그는 노후가 보장된 관직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 황안으로 갑니다. 자신을 알아주는 벗의 곁에서 학문을 닦기 위해서였지요. 그로부터 22년, 이지는 주자학의 이름 아래 화석화된 공맹의 가르침을 넘어 새로운 인간학을 펼쳐 보입니다.

제목부터 도발적인 대표작 『분서』에서, 그는 공자를 진리의 기준으로 삼는 풍토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밉니다.

“무릇 하늘이 한 사람을 나게 하면 절로 그 사람의 쓰임이 있게 마련이니 공자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뒤에야 사람으로서의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반드시 공자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면 천고 이전 공자가 태어나지 않았을 때는 제대로 된 사람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공자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배우라고 가르치지 않았던 까닭에 그 뜻을 얻었으니, 자신을 천하의 교본으로 삼는 태도는 분명 아니었습니다.”(『분서』권1, 「경중승에게 답함」)

이지는, 공자가 자신만 옳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도 맹자와 주자 같은 이들이 공자만 배우라 하고 다른 사상을 배제한 것을 맹렬히 비판했습니다. 그는 공자를 우러르는 도학자(이지가 말하는 도학자는 유학 도덕을 표방하는 사대부를 두루 포함합니다)들을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따라서 짖는 개’와 다름이 없다고 비웃으면서, ‘한 가지 논리에 집착하여 죽은 책을 세상에 전하려 하는 집일(執一)이야말로 도를 망치는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는 이단서를 읽지 말라는 친구에게, “사람은 각자 마음이 달라 완전히 합쳐지는 것은 불가능”하니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학문이 오묘해지는 까닭”이라고 답합니다. 참 학문을 이루기 위해 유학자이면서도 도가와 불가를 수용하고 마테오 리치와 교류하며 서구 사상을 받아들인 데에는 이런 열린 자세가 바탕이 된 것이지요.

그러나 공맹(孔孟) 정주(程朱)의 절대 권위가 우뚝하던 시대에, 진리는 하나가 아니라는 이지의 주장은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특히 ‘이(理)’를 근본으로 삼는 주자학의 일원론을 비판하고, ‘정(情)’을 내세워 부부의 중요성과 남녀평등을 역설한 것은 격렬한 반발을 불렀습니다.

“애초에 사람을 낳을 때 오직 음양 두 기운과 남녀 두 생명이 있었을 뿐 ‘일(一)’이니 ‘이’니 하는 것이 없었는데 어떻게 태극이 있었겠는가?… 나는 사물의 시작을 연구하면서 부부가 그 실마리임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성색(聲色)을 즐기고 부귀를 좋아하고 성공하고 싶어 하고 삶에 연연하며 죽음을 두려워하고 구속과 속박을 싫어하는 것은 자연지성(自然之性)이므로 억누르고 숨길 필요가 없다는 이지의 주장에 대해 도학자들은 터무니없는 모함으로 응했습니다. “사대부 집안의 여자들을 꼬여 불법을 강론하는데 이불을 들고 와 자고 가는 사람도 있다.”며 그를 음란한 늙은이로 몰아세운 것입니다.

하기야 남녀 사이에 생리적 차이는 있어도 식견과 능력의 차이는 없다는 주장은 당시 중국 사회가 받아들이기에 너무 급진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그는 말로만 주장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매담연 같은 여성들을 제자로 받아들여 함께 학문을 토론하고 편지를 주고받았으니 말입니다.

결국 1602년 일흔여섯의 나이에 이지는 음란방종하고 혹세무민했다는 이유로 끌려가 옥에 갇히는 몸이 됩니다. 그를 따르던 이들이 나서 무고함을 주장했으나 소용없었습니다. 이미 『분서』를 펴낼 때 “지금의 학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을 죽이려 들 터”이니 태워 없애야 한다고 했던 이지였습니다. 자신의 사상이 죽음을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옥중에서 담담히 죽음을 준비합니다.

이지를 가둔 자들은 그를 죽이지도 무죄를 선고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를 죽이면 이름이 더욱 높아질 것이고 무죄로 풀어주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셈이니까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그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이지는 분노했습니다. 평생을 걸어온 길과 정반대되는 길을 강요하여 수치와 모욕을 주려는 비열함에 격노했습니다.

3월 15일, 그는 시자에게 머리 깎는 칼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나는 장차 나를 알아주지 않는 자를 위해 죽음으로써 분노를 토하리라!”고 예언했듯, 그는 스스로 죽음으로써 시대를 향한 분노를 토해냈습니다. 그 삶만큼이나 격렬한 죽음이었지요.

중국 역사상 이지처럼 저술이 풍부하고 널리 전파되어 명성을 떨친 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평전의 저자들이 지적하듯, 그것은 지식인들의 일일 뿐 일반 민중은 이지라는 사람이 죽든 말든 관심이 없었습니다. 민중이 받아들이기에 그의 사고는 동시대인들보다 훨씬 앞서고 훨씬 급진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자들은 거기에 이지의 슬픔과 위대함이 있고, 중국의 비극이 있다고 말합니다. 자유로운 사상이 죽으면서 역사의 발전이 멈추고 나라는 결국 패망의 길로 접어들었으니까요.

나이가 드니 꿈도 욕심도 없어진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저는 나이가 들수록 하고 싶은 일이 또렷해지고 해야 할 일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젊어서는 세상이 하라는 일들을 하느라 바빴다면, 이제야 비로소 제 마음을 들여다보고 제가 정말 원하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나이가 든 덕에 공연히 겁내고 주눅 드는 일 없이 소신껏 밀고 나갈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젊음과 늙음은 세월이 아니라 마음의 차이라고들 합니다. 말은 쉽지만 하기 쉬운 일은 아니지요. 이탁오처럼 죽음을 각오하는 건 극단적인 예이지만, 그만큼 온 마음을 다해야 하는 건 분명합니다. 너무 어렵다고요? 그럼 먼저 나이를 잊으십시오. 사람들과 나이를 묻지도 말하지도 말고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그런 다음엔 무엇이든 당신이 꿈꾸는 걸 하십시오. 나이는 절대 생각하지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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