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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탁오는 54세의 나이에 관직을 떠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지락至樂의 즐거움이 부귀나 공명, 불로장생의 쾌락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 위에서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것에 있다고 믿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흡사 굶주린 사람이 배불리 먹기를 싫어하지 않고, 추운 사람이 옷 두껍게 껴입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처럼, 머리에 타는 불을 끄듯이, 반드시 이 생에 깨치겠다는 마음으로"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고 본인도 그런 자세로 공부했다. 공부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는 법이다. 이탁오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배우는 일에 싫증내지 않아야 한다"는 성인의 말씀 때문이 아니라, 그 한계를 자각한 이상 "멈출 수가 없었던(不容已)" 것이다. 어떤 것을 멈출 수가 없는 이 절박함. 이 불 같음. 이 얼음 같음.

"만약 벼슬하고 결혼하는 따위의 일들을 다 마치길 기다렸다가 부처를 공부한다면, 이는 성불은 아무 일도 없는 때를 기다려야 하고 인생의 제반사는 성불에 방해가 된다는 말이 된다. 이런저런 일에 걸려 성불할 수 없다면, 이는 부처가 세상사에 있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겠지. 부처가 세상일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성불을 한들 무엇에 쓰겠느냐? 세상만사가 성불에 장애가 된다면 부처 역시 소용이 닿지 않는 것이니, 어찌 가소롭다 하지 않을까? 잠깐만 미룬다고 하다가 천, 만, 억 겁劫이 늦춰지게 되니, 무서운 일이로다!"

"저는 자신의 과실을 덮어두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저의 잘못과 악덕을 파헤쳐 공격할 수 있는 분만이 저의 스승이지요. 저는 스승이 저를 큰 화로에 집어넣어 오래도록 단련시켜주기를 바랍니다. 사물이 단련되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가 없고, 사람이 절차탁마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결국은 완전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법이지요. 저는 친구를 찾으려고 할 뿐 명성을 구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도를 구하려고만 했지 명예나 칭찬을 추구하진 않았습니다. 저는 제게 허물없음을 좋아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이 저의 허물 들춰내는 것을 기뻐합니다. 저는 제게 허물이 있음을 걱정하지 않고 그 허물이 드러나지 않을까봐 걱정하지요."
 
"명성은 자신을 구속하는 족쇄입니다. 오직  저 한 사람이 그를 알아주면 족하니, 많은 이가 알아줘서 다 무엇하겠습니까! 많은 이가 알아주면 쓰임에 맞지 못하게 되고 오히려 명성을 가까이 한다는 부담만 생길 뿐이니, 어찌 귀하게 여길 바이겠습니까!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있지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드물수록 나는 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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