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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적 지식인 이탁오의 '속분서'

[연합] 입력 2007.08.24 13:16

김혜경 교수 완역본 출간

공맹(孔孟)만 알던 50세 이전 자기 삶을 반추하면서 "나이 50 이전 나는 한마리 개에 지나지 않았다"고 선언한 명말(明末) 시기 반항적 지식인 이탁오(李卓吾.1527-1602)의 또 다른 주저(主著)인 '속분서'(續焚書)가 완역돼 나왔다.

속분서 원작격인 분서(焚書)와 중국 판타지 문학의 금자탑으로 꼽히는 요재지이(聊齋志異)를 각각 국내 최초로 완역한 대전 한밭대 김혜경(金惠經.45) 교수가 역주를 맡았다. 이번 역주본에는 본문 이해를 돕기 위한 각주만 1천230개를 달았다.

이지(李贄)가 본명인 이탁오는 양명학 급진좌파로 분류되며, 자유분방한 행동과 언론활동으로 당대에 이미 저서가 금서 처분을 받았다. 이지 생전인 1590년에 나온 분서라는 책 이름은 '책을 불살라 버리다'는 뜻으로 이지 자신이 붙였다.

속분서는 그가 옥중에서 자살하고 16년이 흐른 뒤에 그의 제자인 왕정보(汪鼎甫)가 발간했다. 왕정보는 그 서문에서 "10년 동안 탁오 선생을 추종하며 그의 부스러기 말이나 쪼가리 문자까지도 빠짐없이 수습했다. 선생의 책이 유행하고부터 그의 이름을 도용하는 자가 숱하게 나타나니, 식자들이 이를 병통으로 여겼다"고 했다.

왕정보의 요청으로 속분서에 기고한 발간사에서 장내라는 사람은 "탁오는 말세적 인간 유형인 유자(儒者)를 미워했다"면서 "지금 세상에 나도는 가짜들은 그(탁오)의 삭발을 배우고 훈채(파.마늘 처럼 특이한 냄새가 나는 채소)와 고기를 먹으면서 칼로 목숨을 끊는 것이나 배우고 있으니 사람을 오도함이 어찌 심하지 않으랴"라고 개탄했다.

이 증언처럼 이탁오는 삭발을 단행하는가 하면, 법복을 입고서도 훈채와 고기를 즐기기도 했으며, 옥중에서는 칼로 자살했다.

속분서는 분서와 마찬가지로 맨 앞에는 편짓글인 서답(書答)을 배치하고 그 뒤로 경수필 격인 잡술(雜術), 역사평론에 해당하는 독사(讀史), 시가(詩歌) 등을 수록했다.

역주자인 김 교수는 분서가 장년의 한창 나이 때 쓰여져 재기발랄하면서도 유장한 문장으로 채워졌다면, 속분서는 불교와 생사에 대한 관심이 한층 깊어진 상황에서 나왔기에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의제들이 많다고 평가했다.

속분서에서 이탁오는 불교의 무(無)나 도교의 도(道)가 결국 유가의 인(仁)과 다름 없다는 삼교귀유(三敎歸儒)를 주창하기도 한다. 한길사. 692쪽. 3만원.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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