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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 자살로 마감한 선구적 사상가 이탁오
옌리에산 등 저 '이탁오 평전' 시대에 맞선 사상가 이지의 조명
05.06.07 11:05 ㅣ최종 업데이트 05.06.07 14:38 조창완 (chogaci)

베이징에 온 여행자들은 흔히 명13릉을 들른다. 13릉이라고 하지만 개방된 곳은 장릉(長陵)과 정릉(定陵), 소릉(昭陵) 정도다. 그 가운데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지하궁전이 개방된 정릉에 들르게 된다. 정릉은 명 신종(神宗) 만력황제(万歷皇帝) 주익균(朱翊鈞)과 두 황후의 합장 무덤이다.

거대한 패방을 지나, 석물이 늘어선 신도(神道)를 지나다 보면 패망한 왕조지만 그들이 살았을 때의 영화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그 무덤의 주인 신종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그저 황홀한 무덤의 광채만을 바라볼 뿐이다. 신종 주익균은 소설을 좋아하고, 나름대로의 아집을 가진 황제였다. 자신의 호화스런 무덤과 생활을 위해 광세(鑛稅)를 만들어 백성들을 짜냈다.

▲ 푸젠성 추엔저우에 있는 이탁오의 생가
ⓒ 조창완
그리고 그는 한 학자를 이단으로 평가해 자살하게 했다. 그 학자는 다름 아닌 탁오(卓吾) 이지(李贄)다. 이지는 1527년 추엔저우(泉州)에서 출생했다. 명대에 세계적인 상업도시였던 추엔저우는 사상의 해방구이기도 했다. 추엔저우에서 멀지 않은 우이산에서 터를 잡고 강학한 주자(朱子)가 있었지만 그곳엔 배를 통해 들어온 회교와 기독교 등 모든 사상이 범람했다. 이런 토양을 바탕으로 이지가 탄생했다.

하지만 그는 1602년 3월 고향에서 너무 먼 베이징 인근 통주(通州)의 감옥에서 자결했다. 그의 무덤은 통주 중심에 있는 시하이즈공원(西海子公園)의 북면에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혹시 명13릉이 아니라 청나라 황제들의 무덤군인 칭둥링(靑東陵)에 갈 이가 있다면 이곳을 들러볼 일이다. 베이징에서 칭둥링으로 가다보면 통저우를 거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탁오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아무런 감흥이 없는 여행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가진 이들에게 한권의 책을 권한다. 옌리에산과 주지엔구오가 쓰고 홍승직이 번역한 '이탁오 평전'(돌베개 간)이다. 책은 최대한 이탁오의 인생을 따라간다. 26살에 향시를 거인(擧人)으로 합격한 이래 벼슬길에 오른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부패할 성격이 못되는 그는 자식들이 굶어 죽을 정도의 힘든 벼슬 생활을 계속한다. 54세에는 모든 직위를 버리고 학문과 승려와 같은 지적 편력의 시기에 접어든다. 물론 태워버려야 할 책이라며 분서(焚書)를 짓고, 묻어버려야 할 책이라며 장서(藏書)를 쓴다.

그의 학문의 큰 줄기는 세상의 모든 사상을 받아들여서 해체와 비판하는 한편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만드는 것이다. 그의 사상적 원줄기는 고향인 추엔저우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물론이고, 그가 일을 보던 베이징이나 윈난 등의 경험, 독서 등 모든 것이 복잡하게 섞여 있다.

▲ 이탁오가 벼슬을 하던 마지막 땅 윈난성 따리 풍경
ⓒ 조창완
그는 힘든 생활을 이어가다 못해 아내와 남은 딸을 고향에 돌려보낸 후 방외인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여유롭다.
"부(富)라, 늘 만족할 줄 아는 것보다 부유한 것은 없고
귀(貴)라, 세속을 훌쩍 벗어나는 것보다 존귀한 것은 없다.
빈(貧)이라, 식견이 없는 것보다 가난한 것은 없고
천(賤)이라, 기개가 없는 것보다 천박한 것도 없다.

자신에게 단 한 가지 현명한도 없는 것을 궁(窮)이라 하고
사방에서 친구가 찾아오는 것을 달(達)이라 하고
백세토록 영화를 누리는 것을 요(夭)라 하고
만세토록 영원히 힘있게 되는 것을 수(壽)라 한다 "
(90페이지. 焚書 중에서)


남녀평등과 민권우위 등 파격적 사상

이탁오 사상의 특이점은 기존에 유가적 틀에서 예속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선 중국 유일의 여제인 당나라 측천무후를 높게 평가하는 등 여성의 권리와 능력을 인정한다. 그는 결코 여성을 경시하지 않고 '식견이 크고' '남자도 따라가지 못하는' 많은 여성의 사적을 '초담집'에서 엮었다.

"천하가 모두 남자라면, 진짜 남자 아닌 사람이 누구기에 진짜 남자라는 말을 하는가? 그러나 천하에 남자가 몇이며 또한 누가 진짜 남자인가? 진짜를 말하지 않으면, 천하의 남자가 모두 자기는 남자라고 여길까 봐나는 염려된다"라고 했다. 사람의 경중은 재능을 따져야지 성별을 따져서는 안 된다고 그는 주장했다. (254페이지)

또 이지는 "'모든 악 중에서 음행(淫行)이 으뜸'이라느니 '여색이 나라를 망친다'느니 하는 피상적 견해를 반박했을 뿐 아니라, 성색 등 인욕은 영웅이 업적을 세우는 것을 추동하는 동력이라고 당당하거 떳떳하게 주장하고, 나라를 망친 자는 원래 그가 어질지 않거나 재능이 없는 등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240페이지) 고고한 척하면서 안으로는 모든 속물근성을 지닌 이들에 대해서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의 사상 중에 도드라진 것 가운데 하나가 동심설이다. "동심(童心)은 참된 마음(眞心)이다. 만약 동심이 있다면 안 된다고 하면, 이는 참된 마음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동심이란 거짓 없고 순수하고 참된 것으로, 최초 일념(一念)의 본심(本心)이다. 동심을 잃으면 참된 마음을 잃는 것이며, 참된 마음을 잃으면 찬된 사람(眞人)을 잃는 것이다. 사람이 참되지 않으면 최초의 본심은 더 이상 전혀 있지 않게 된다."(285페이지)

또한 충의보다도 사람의 목숨을 더 귀하게 여기는 등 혁명적인 사상을 담고 있었다. "사람의 목숨이 '충의'보다 귀하다, 이학이 천하를 하나로 통일한 명나라 시대에 감히 이런 관념을 제시한다는 것은 정말 간단하지 않은 일이다!"(465페이지)

▲ 베이징 인근 통주에 있는 이탁오 묘. 그는 아이들의 마음을 지순하게 보는 동심설을 주창했다
ⓒ 조창완
사상도 파격적인데, 살아서는 세도가인 경정향과 끝없이 대결해야 했다. 그런 그의 마지막이 편할 리 없다. 객지에서의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최후도 그는 감당할 수 있었다. "지사 志士는 구렁에서 뒹굴던 때를 잊지 않고, 용사는 목숨을 잃을 것을 잊지 않는다. 내가 지금 죽지 않고 무엇을 더 기다리는가? 이한 목숨 어서 황천으로 돌아가길 원한다"고 통탄했으니. 그러면서 그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과 황제가 미웠을 것이다. "이전에 이지는 '오사편(五死篇)'을 쓴 적이 있다. 인생에서 어떻게 해야 제대로 죽었다고 할 수 있는지 논한 것이었다. 그는 영웅호걸은 분노를 토하지 않는다. 내가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만큼 나를 알아주는 자가 없다. 나는 장차 나를 알아주지 않는 자를 위해 죽음으로써 분노를 토하리라라고 예언했다, 그는 정말로 죽음으로 분노를 토해냈다"(548페이지)

살아서 그는 당대의 대결자인 경정향에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위세가 덜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와 경정향이 대결을 벌이던 후베이성 마성(麻城)의 사이트에는 이탁오의 유적이 남아있는 반면에 경정향의 집은 흔적이 없다. 그는 그 시대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과 학문에 정직했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지의 탄생과 부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는 진한 이래 이어진 문화 전제주의에 대한 반항이며, 오랜 기간 사상계에 축적된 불만의 총체적 폭발이며, 2천년 봉건 경제의 발전 과정이 가져온 갑작스런 변화이자 충동이다. 이지는 현재의 가사假死 상태를 돌파할 것을 강렬하게 요구하는 한 무리 각성자들의 대표에 불과할 뿐이다."(562페이지)

필자는 이지의 흔적을 곳곳에서 만나본 적이 있다. 추엔저우에 있는 그의 고택의 작은 석류나무 아래에서 사색에 빠져본 적이 있고, 그가 후기 벼슬을 했던 윈난에도 다녀왔다. 마성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후베이성 우한(武漢)의 강가에서 사색에 빠져본 적이 있고, 통저우에 있는 그의 무덤도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그가 들렀던 그곳에서 느끼는 삶과 인생의 소회는 나에게 적지 않은 각오를 준다. 갈수록 날을 잃어가는 그의 삶과 사상은 후세들에게 중요한 사표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서서히 그의 학문이 다시 빛을 내기 시작한다. 이번에 일독한 '이탁오 평전'은 좋은 안내서다.

▲ 추엔저우 그의 옛집에 있는 초상화
ⓒ 조창완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북경 독서일 클럽(http://cafe.naver.com/bjreading)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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