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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균 개혁사상의 현대적 의미

◇…'IMF한파'를 맞아 현재 시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허균은 이미 400년전에 자신의 논설인 '관론'을 통해 주장했다.

문벌과 신분차별 타파를 주창했는가 하면 인재를 고루 등용해 쓰고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뜻의 '유재론'을 폈다.

허균은 '호민론'에서 혁명을 강조했다. "천하에 두려워 할 것은 백성뿐"이라며 "견훤이나 궁예같은 사람이 나와 몽둥이를 휘두르면 근심과 원망에 가득찬 민중들이 따라가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느냐"며 백성을 우습게 여기는 집권자들에게 경고를 보냈다.

명나라 사람들은 이탁오를 요인(妖人) 요선(妖禪) 괴물이라고 비난했다.

허균도 조선왕조실록에 요망(妖妄) 독륜(瀆倫) 괴물 금수(禽獸) 등의 부정적 이미지로 표현돼 있고 결국 반역죄로 극형을 당했다.

허균은 여러차례 중국을 드나들면서 수많은 책을 사들여 읽었다. 중국 지식인들과의 폭넓은 교유를 통해 국제적인 식견을 키웠다. 국제화에 관해 허균은 당시로선 가장 이상적인 인물이었다.

허균은 조선의 지배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의 장벽을 넘어 불교와 도교 나아가 천주교에까지 관심을 가졌다.

허균은 부처를 믿었다고 부사직에서 파면당했을 때 유교사회에서 마음 머물곳이 없어 불교에 기댔다. 자신을 탄핵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대들은 그대들의 법을 따르라. 나는 나름대로 내 삶을 이루겠다"고 선언한 것처럼 조선사회의 체제를 벗어난 새로운 삶의 방법을 꿈꿨다.

허균의 혁명실패로 개화가 300년이나 늦어졌다.

허균은 상중에도 기생을 끼고 놀았다는 등 세인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남녀간의 정욕은 하늘이 주신 것이고 인륜과 기강을 분별하는 건 성인의 가르침이다. 나는 하늘을 따를지언정 성인은 따르지 않겠다"며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였다.

유교의 굴레를 뿌리치고 본성대로 살려 애썼던 사람이 허균이다.

그는 유교사회인 조선에서 불교를 믿다가 여러차례 탄핵받고 파직당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이탁오가 유교반도(儒敎叛徒)로 낙인찍혀 처형당했으며 조선에서는 허균이 유교반도로 몰렸다.

허균은 사대부였으면서도 민중중심의 혁명을 시도했다. 그는 기득권을 가진 사대부들이 배제된 새로운 사회를 희망했다.

허경진(목원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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