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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알고 보면 혁명을 선동하는 책!

[프레시안 books] 신정근의 <동양 고전이 뭐길래?>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06-01 오후 6:58:26

    

     

동양 고전은-정확히는 중국 고전이지만-콘텐츠의 보고(寶庫)다. 누천년에 걸쳐 수많은 영웅호걸과 재사들이 명멸해 갔으니 이들의 언행과 사상에선 그야말로 언제 어느 때라도 활용하고 응용할 거리를 찾을 수 있을 정도다.

문제는 나름 가치를 인정할 만한 고전이 너무 많고, 전공자가 아니라면 굳이 찾아 들춰보더라도 문자를 읽는 데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그러니 편리한 책 읽기를 돕는 해제나 다이제스트에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결국 '한 권으로 읽는~'식의 책이 쏟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원저를 읽는다고 꽤나 열심이었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런 해제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1970년 대 초 삼성문화문고에서 나온 <중국고전입문>을 시작으로, 다양한 해제를 접했다. 그 중 권할 만한 것은 <교양으로 읽어야 할 중국 지식>(다케우치 미노루 지음, 양억관 옮김, 이다미디어 펴냄). 경서나 사서, 문학 작품만이 아니라 자연과학예술 분야까지 중국 고전 명저를 골라 해설하면서 '책 속의 명문장' '번역서 현황' 등을 덧붙여 고전의 숲에서 헤매지 않도록 하는 이정표 구실을 톡톡히 했다. 무엇보다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책까지 소개한 것이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이런 해제와 구분되는 것이 해설서다. 고전을 읽어도 그냥 읽었다는 사실만 남는 나 같은 이를 위해 원저에 담긴 뜻을 풀어주는 형식인데 남의 눈을 통한다는 미안함만 덜면 오히려 도움이 되는 책들이 더러 있다. 근래에 읽은 것으로는 이중텐의 <백가쟁명>(심규호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펴냄)은 유가, 묵가, 도가, 법가의 사상을 씨줄 날줄로 엮어낸 솜씨가 독특하고도 유려해 기억에 남는다.

▲ <동양 고전이 뭐길래?>(신정근 지음, 동아시아 펴냄).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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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의 <동양 고전이 뭐길래?>(동아시아 펴냄)은 이 두 책의 중간에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해제는 다채롭지만 요약 발췌 형식의 소개에 그친다는 단점이 있고, 해설서는 깊긴 하지만 그 대상을 어떤 기준으로 골랐는지 모호하다는 한계가 있는데 반해 이 책은 나름의 기준을 세워 지은이의 시각을 더한 '평석'이란 점이 돋보인다. 그런 면에서 자칫 어정쩡한 고전 해설서에 빠질 위험을 너끈히 벗어났다.

신정근은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21세기북스 펴냄)이란 베스트셀러의 저자로 대중이름을 알렸지만 내가 주목했던 것은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사계절 펴냄)였다. '생활 고전'이란 신선한 관점을 바탕으로, 단순한 원문 번역이 아니라 현대와 고전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서술 방식이 신선해서였다. 그 솜씨는 스물다섯 권의 '고전'을 풀어낸 이 책에서도 여전하다.

이 책에서 돋보이는 점은 크게 두 가지. 우선 8경 5서 12자를 고른 안목이 독특하다. 사실 이런 유의 책은 어떤 책을 대상으로 하느냐에서 먼저 판가름이 난다. 지은이는 사서오경이란 유학의 텍스트 틀을 벗어나 경학(經學)과 자학(子學)의 시대로 구분해 스물다섯 권을 골랐다. 경학의 시대는 성왕 같은 특별한 인물이 초월적 권능에 의지해 세계의 질서를 유지해 나갔다. 여기 해당하는 책이 <주역>, <예기>, <시경>, <악경>, <서경>, <춘추>, <효경>, <이아>이다.

자학의 시대는 성왕의 경학과는 달리 소인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중앙 집권적 관료 국가가 등장하고, 상대적이며 다원주의적 사회에서 피곤하면 쉬고 물질을 가지려고 하는 보통 사람을 위한 가르침을 다룬 책들이 소개된다. 그러면서도 경에 담긴 글자의 뜻을 밝히는 <이아>나 오롯이 한 권의 책으로 전해지지 않는 <악경>, 저서가 없는 명가의 공손룡과 양주, 추연의 사상 세계까지 구성해내 여느 해제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치는 창의적 시각에 있다. <주역>에서 유일신 사상에 대비되는 자력 구원의 길을 보고, <중용>에서 기우뚱한 균형과 혁명 논리를 캐내고, <관자>에서 소인 시대의 개막을 보는 것이 그런 예다.

예컨대 주역 곤괘 육이 문언전의 "자기 주도적 존재는 경외감으로 자신의 내면을 곧게 하고 도의감으로 자신의 외면을 네모반듯하게 한다. 이로써 경외감과 도의감이 제자리를 찾게 되고 인덕이 외롭지 않게 된다"에서 사람의 힘에 의해 결정되는 자력 구원의 자세를 읽어낸다. 군자는 내적 감시를 통해 자신을 규율하고 도의에 바탕을 두고 행동 하나하나를 단속해 외적 존재를 끌어들이지 않고 자신을 완전한 존재로 빚어간다는 것이다. 길거리 '사이비 동양 철학'의 도구로 쓰이는 <주역>에 이런 의미를 부여하기란 드물다.

수동적이고 변화를 꺼리는 듯한 <중용>에서 혁명의 논리를 찾아내는 것도 지은이만의 탁견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중용>은 무뇌아나 개념 없는 상태의 무지가 아니다. 귀찮음을 이유로 움직이지 않고 무기력을 이유로 가만히 앉아 있고 탄압을 이유로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중 기만이자 허위의식일 뿐이며 중용을 들어 안주와 순응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란다. 그러기에 혁명의 논리마저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어떤 정부가 언론을 압살하고 민주주의를 탄압하며 삶의 공동체가 독재 체제로 기울어져 있다면 균형을 잡기 위해 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용의 논리라고 한다.

이 책이 단순한 고전 소개를 넘어서는 것은 창의적 시각 덕분이기도 하지만 길지 않은 글에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우쳐주는 섬세함도 한몫한다. <효경> 편에서 흔히 효의 한 방편으로 거론되는 입신양명(立身揚名)에 관한 대목이 그렇다. "후세에 이름을 떨쳐 부모를 명예롭게 만드는 것이 효도의 끝"이라는 구절은 원문의 '입신행도 양명어후세(立身行道 揚名於後世)'에서 "도리를 실행하여"란 '행도'를 빠뜨려 효도를 출세욕과 결부하여 오해하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하니 말이다.

소설 <장미의 이름>, 영화 <묵공>, 야구 등 다양한 소재를 빌어 고전의 뜻을 풀어준 이 책은 체제나 시각, 서술 방식이 모두 새롭고 새롭다. 이것이 케케묵은 골방에서 '고전'을 끄집어내 현대인에게 전달하는, 진정한 온고지신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지은이의 의도는 값지고 또 그만큼 성공적이다.

한 마디 더. 고전의 파격적 해석에 흥취가 있다면 갑골문 연구를 바탕으로 동양고전의 전복시도한 김경일의 <나는 동양 사상을 믿지 않는다>(바다출판사 펴냄)를 권한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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