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느낌과 마음은 서로 어떤 관계에 있을까? 자극이 오면 먼저 마음 곧 감정적인 반응이 먼저 발생하고 나중에 몸의 느낌이 생겨날까? 아니면 먼저 몸의 느낌이 있고 마음의 반응이 생겨날까?

예컨대 아이가 길을 가다가 개를 만났다. 그런데 갑자기 개가 마구 짖어댄다. 이때 위협적인 자극이 마음 곧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그런 다음에 몸의 느낌이 생겨날까? 아니면 몸의 반응이 먼저이고, 나중에 불안감을 느끼는가? 아니면 동시인가?

일상의 생활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한 실질적인 판단이 어렵다. 19세기 미국의 제임스와 독일의 랑케는 몸의 반응이 있고, 나중에 감정적인 마음, 불안과 두려움이 뒤따른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을 제임스-랑케 효과(James-Ranke Effect)라고 한다. 슬프기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우니까 슬퍼진다고 주장한다.

 

마음이 무겁고 우울해도

크게 웃으며 편안해져

위의 사례에서 개가 짖어대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고 말한다. 근육이 긴장되고 심장박동수가 늘어나며 혈압이 올라간다. 이렇게 해야 개와 싸울 것인지 아니면 도망갈 것인지를 결정할 수가 있다. 우리는 이런 몸의 반응을 ‘두려움’이라고 지각하고 이것을 ‘불안’이라고 판단하여 감정적인 경험을 한다는 말이다.

이런 주장은 일리가 있다. 마음이 우울하고 무겁지만 몸을 움직이고 크게 웃게 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점차로 편안해지는 경우를 보면 이해가 된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하거나, 신체화된 정서장애(MD)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가진 이들은 이와 유사한 상황에 처하면 몸이 자동적으로 반응한다.

그런 다음에 몸의 불쾌한 느낌에 대해서 부정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이것은 실제적인 사건과는 무관하게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이 공포와 같은 매우 힘든 감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반대의 주장도 있다. 캐논-바드 이론(Cannon-Bard theory)은 이를 반박한다. 반드시 몸의 마음이 정서적인 경험을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기관이 제거되거나 없는 경우에도 여전히 감정적인 반응을 하는 경우가 있음을 실험으로 증명하였다.

그래서 몸과 정서적인 반응은 선후를 가릴 수가 없고, 동시에 발생한다고 말할 수가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몸이 먼저 반응할 수도 있고, 반대로 정서가 먼저 반응할 수도 있다.

캐논과 바드의 이론은 우리의 일상에서 느끼는 상식을 옹호해준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몸과 마음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동시에 혹은 상호작용하면서 발생된다고 결론적으로 말할 수가 있다. 단지 상황 혹은 사람에 따라서 다소 차이가 있을 수가 있다고 말할 수가 있겠다.

불교심리학에서 몸의 느낌과 마음의 관계를 연기, 곧 상호작용 관계로 보는 점과도 일치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몸의 느낌은 일단 외적인 자극에 의해서 발생되고, 이 느낌에 의해서 마음이 발생된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마음의 선택, 곧 의식에 의해서 대상이 다른 방식의 정서 상태를 경험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몸의 느낌에 대해서 마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반응을 나타내는가.

불교 심리학에 따르면, 감미로운 몸의 느낌에는 탐착의 마음이 발생한다. 반대로 불쾌한 느낌에는 짜증이나 성냄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이점은 일상에서 매우 자주 경험하기 때문에 의심의 의지가 없다. 실제로 우리의 삶은 감미롭고 달콤한 느낌을 탐착하고 그것에 집착한다.

반면에 불쾌하고 지루한 느낌에 대해서는 회피하고 심한 경우는 적의를 표현하여 거부를 한다.

이것이 우리 삶의 양극단이다. 우리의 삶이란 애착과 증오, 좋음과 싫음의 쌍곡선을 따라서 여행을 하지 않나 생각한다. 즐거운 느낌에는 행복이라 이름하고, 불쾌한 느낌에는 고통이라 말한다.

결국 우리는 가급적이면 고통은 피하고, 있는 힘을 다해 행복을 추구한다. 이것이 솔직한 우리 삶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그러면 이 윤회의 길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 

[불교신문 2736호/ 7월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