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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Mary ; 1542.12.8~1587.2.8)

  스코틀랜드의 왕(재위 1542~1567)으로서 제임스 5세와 프랑스 출신 왕비 기즈의 메리 사이의 외동딸이며, 생후 1주일 만에 아버지가 사망하여 즉위하였다. 종조부인 잉글랜드의 헨리 8세는 자기 뜻대로 메리를 움직이려 했으나(메리의 할머니가 헨리 8세의 누이였으므로 메리는 튜더가의 혈통을 지녔음) 실패했고, 스코틀랜드의 섭정은 어머니에게 돌아갔다.

  어머니는 5살 난 메리를 프랑스로 보냈다. 메리는 프랑스 왕 앙리 2세의 궁정에서 왕 카트린 드 메디시스를 비롯해 수많은 왕실 가족들과 함께 자라났고, 1548년 6세 때 프랑스 황태자와 약혼하였으며, 외가가 권세있는 기즈가였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빈번한 사냥대회와 무도회(메리는 2가지 모두 뛰어났음)를 비롯해 어린시절을 호사스럽게 보냈으나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게을리 하지는 않았다. 라틴어·이탈리아어·스페인어를 비롯해 그리스어도 약간 배웠으며 프랑스어가 가장 유창했다. 어느 모로 보나 메리는 스코틀랜드인이라기보다는 프랑스 여성으로 성장했다. 큰 키에(거의 180cm나 되었음) 날씬한 몸매, 금발에 호박색 눈을 가진 뛰어난 미모에다 음악과 시에도 취미가 있었던 그녀가 1558년 4월 앙리 2세와 카트린 사이의 맏아들 프랑수아 2세와 결혼할 때의 모습은 당시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적인 공주의 모습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이 결혼은 프랑스와 스코틀랜드의 동맹을 위한 정략결혼이었고, 신방을 차리지는 못했지만 메리는 진심으로 어린 신랑을 좋아했다.

  그리고 1558년 11월 튜더가의 엘리자베스가 잉글랜드의 왕위에 올랐는데 이는 튜더가의 혈통을 지닌 메리가 그뒤를 이어 잉글랜드의 여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가톨릭교도들은 헨리 8세가 아라곤 출신의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불린과 결혼한 것은 무효이고 따라서 엘리자베스는 사생아이며 메리야말로 합법적인 여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메리의 시아버지인 앙리 2세는 잉글랜드 왕위는 메리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1559년 앙리 2세가 죽고 프랑수아가 프랑스 왕위에 오르면서 메리는 프랑스 왕비로 화려하게 즉위했다. 그러나 프랑수아가 1560년 12월 어린 나이로 죽는 바람에 18세에 과부가 되었다. 결국 1561년 8월에 모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신 ·구(新舊) 양교 귀족의 대립이 격심하였는데, 1565년 그녀가 구교도인 사촌동생 단리경(卿)과 결혼한 것이 신교파의 반감을 격화시켰다.

  즉, 메리는 로마 가톨릭교도였는데 스코틀랜드의 국교는 그녀가 없는 사이 프로테스탄트로 바뀌어 있었다. 따라서 칼뱅파 지도자인 존 녹스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눈에는 메리가 다른 종교를 가진 외국인 여왕으로 비쳤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이었다. 이들은 방계 왕족들의 움직임을 좇아 파당을 만들고 소란을 일으켰으며 국왕을 보좌하기보다는 개인적인 싸움이나 세력확대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메리는 통치 초기에 사생아이자 이복남매 사이인 머리 백작 제임스의 도움을 받고 특히 종교 관용정책을 펼쳐 국정을 잘 이끌었다. 또한 우아한 궁정생활을 연출하고 전국 순회 행차를 즐긴 아름다운 젊은 여왕의 모습을 스코틀랜드인들 모두가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메리는 1565년 7월 레녹스 백작 4세 메슈 스튜어트의 아들이며 사촌인 단리 백작 헨리 스튜어트와 2번째 결혼을 했으나, 이 결혼은 불행한 운명의 시발점이 되었고 결국 메리를 파멸로 이끌어 갔다. 그녀는 미남 단리와 사랑에 빠져 무분별한 결혼을 했다. 이 결혼은 엘리자베스를 비롯한 스코틀랜드의 권력구조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적개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파멸을 초래한 선택이었다. 엘리자베스는 메리가 또다른 튜더가 출신과 결혼하는 것을 승인하지 않았으며 이복남매간인 제임스는 레녹스가의 세력 확대를 시기해 곧바로 반란을 일으켰다. 단리의 성격은 외모와는 달리 나약하고 방탕했으나 야심가였다. 1566년 3월 다른 귀족들과 함께 단리는 메리의 면전에서 신뢰하는 신하 데이비드 리치오를 비정한 방법으로 살해했다. 이 일로 메리는 단리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같은 해 6월 아들 제임스가 태어났으나 두 사람은 전혀 화해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토록 갈망하던 후계자를 갖게 된 메리는 이를 이용해 난관의 타개책을 찾으려 했다.

  그뒤의 8개월은 메리의 일생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논란이 많은 시기였다. 이때 메리는 보스월 백작 4세 제임스 헵번과 간통해 함께 단리를 죽인 뒤 결혼할 계획을 세웠다는 비난이 있었으나 단리가 죽기 전에 이들이 간통했다는 당시의 증거는 전혀 없다. 메리가 보스월에게 썼다는 편지와 시들을 모아놓은 이른바 ' 캐스킷 편지집'이 논란이 되고 있으나 그 신빙성이 매우 희박하며 일반적으로 역사가들은 증거로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1566년 10월 메리는 심한 병을 앓고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뒤 단리와 이혼할 생각을 했다. 1567년 2월 9일 밤 단리가 요양중이던 에든버러 외곽의 커크오필드에 있는 집이 폭파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단리는 빠져나오려 했으나 목이 졸려 살해당했다. 이 사건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해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견해가 제시되어왔다. 그 가운데는 단리가 메리를 폭사시키려고 했다가 자기 덫에 걸린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단리를 미워하는 귀족들이 일으킨 사건이라는 주장이 가장 신빙성 있다.

  메리가 사전에 이 사건을 얼마 만큼 알고 있었든지 간에 그 이후에 보여준 행동은 지극히 어리석었으며 여왕을 보좌하는 훌륭한 자문관이 없음을 잘 보여주었다. 3개월 뒤 메리는 이 사건의 주모자로 의심받고 있던 보스월에게 유괴되어 겁탈당한 뒤 그와 결혼해버렸다. 애정이 바탕이 된 결혼이 아니라면 메리의 이러한 행동은 자신을 보좌해줄 강력한 힘 없이는 스코틀랜드가 당면한 문제들을 처리할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건강의 악화로 이러한 절망감은 한층 깊어졌다. 그러나 시기심 많은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이 보기에는 보스월 역시 단리와 마찬가지로 달갑지 않았다. 메리와 보스월은 1567년 6월 15일 카버리힐에서 영원히 결별했다. 보스월은 추방된 뒤 투옥당해 1578년에 죽었고, 메리는 리븐 호수에 있는 작은 섬에 유폐되어 1세밖에 안 된 아들 제임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퇴위했다. 이듬해 잠깐 동안 자유를 얻었으나 랭사이드 전투에서 지지자들이 패배해 다시 도망쳐야 했다. 메리는 친척인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스리는 잉글랜드로 피신했다. 그러나 메리와는 달리 정치적 간계에 능숙한 엘리자베스는 단리 사건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점을 구실삼아 이후 18년 동안 메리를 여러 감옥에 번갈아 가두며 잉글랜드에 붙잡아두었다. 그 사이 스코틀랜드에서는 메리와 이복남매간인 제임스가 섭정으로 통치했다.

  감금생활은 길고 고통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신앙에서 위안을 얻고 자수를 하거나 애완견이나 새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달랬다. 운동부족으로 건강이 나빠지고 뚱뚱해졌으며 미모도 사라졌다. 이런 모습은 1578년 검은 벨벳 옷과 흰 베일을 쓴 그녀의 모습을 그린 유명한 초상화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메리는 부당한 감금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탄원을 하고 나중에는 음모를 꾸미는 등 온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녀는 구교도로 헨리 7세의 증손녀뻘이었기 때문에,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와 영국의 구교 귀족들이 엘리자베스를 폐위하고 그녀를 옹립하려고 책동하여, 1586년 배빙턴의 음모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사건이 발각되었다. 즉, A.배빙턴이 중심이 되어 런던에서 예수회(會)를 지지하는 비밀결사(密結社)를 조직, 여왕의 암살과 메리의 구출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1586년 여왕의 측근인 F.월싱엄에게 음모가 탐지되어, 배빙턴과 그 일파는 사전에 체포 처형되었다. 그리고 이 때 그녀가 음모자와 내통한 사실이 드러나, 19년 간의 유폐생활 끝에 1587년 피터버러 근처에 있는 포더링헤이 성의 넓은 방에서 처형당했는데 그때 나이는 44세였다. 살벌한 처형장면은 오히려 메리가 죽음에 임박해서 보여준 위엄있는 자태에 가려졌다. 그후 왕위계승에 성공한 아들 제임스는 어머니를 위해 웨스트민스터 대사원 안에 거대한 기념관을 세우고 이곳에 시신을 안장했다. 

<두산대백과사전> 참고

<브리태니커백과사전>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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