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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대하드라마<대왕의 꿈>(토일 오후9시 40분 방송)의 김덕만(선덕여왕, 박주미 분)은 이지적이고 합리적인 이미지를 띠고 있다. MBC <선덕여왕>의 김덕만(이요원 분)도 일정 정도는 그러했다.

그런데 '이지적인 선덕여왕'의 이미지는 놔두고, '합리적인 선덕여왕'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좀더 고찰이 필요하다. 이 말은 선덕여왕이 합리적이지 못하고 무식했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려면, <삼국유사> '기이' 편의 이야기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선덕왕의 '지기삼사'가 의미하는 것 

'기이' 편에는 '선덕왕 지기삼사'(善德王 知幾三事)라는 부분이 있다. '선덕여왕이 미리 기미를 알아차린 세 가지 일'이란 의미다.

 <대왕의 꿈>의 선덕여왕(박주미 분).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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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기삼사 첫 번째는, 당태종(당나라 태종)이 모란 씨와 함께 보내준 모란 그림을 보고 "이 꽃은 필경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 점이다. 당태종이 선사한 모란 씨를 심었더니, 실제로 꽃에서 향기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훗날 선덕여왕은 "그림 속에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그렇게 짐작했다"고 회고했다.

두 번째는,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를 근거로 백제군의 기습을 알아차린 점이다. 선덕여왕은 서라벌의 영묘사란 절에 있는 옥문지란 연못에서 겨울인데도 개구리들이 사나흘 동안 울어댄다는 소식을 듣고, 서라벌 서쪽 교외의 여근곡이란 계곡에 백제 병사들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왕은 2천 명의 군사를 보내 백제군을 전멸시켰다.

셋 번째는 자신의 사망 날짜를 정확히 예견했다는 점이다. 건강에 이상이 없었을 때인데도 선덕여왕은 자기가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에 죽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예언했다. 이것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자기 예언을 성취시키려고 일부러 자살했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사망 당시의 정황을 고려하면 그렇게 판단하기 힘들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 따르면, 선덕여왕은 비담의 쿠데타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갑작스레 사망했다. 쿠데타군과 싸우기도 바쁜 판국에 지난날의 예언을 성취시키려고 일부러 목숨을 끊었다고는 판단하기 힘들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따르면, 이때 선덕여왕은 자신이 혹시라도 권력을 빼앗길까봐 벌벌 떨었다. 그런 그를 위로하고자 김유신은 "길흉은 미리 정해진 게 아니라 사람이 하기에 달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여왕이 그 와중에 자기 예언을 성취시킬 생각을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삼국유사> '기이' 편의 선덕왕 지기삼사 부분.
ⓒ 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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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지기삼사 이야기를 선덕여왕의 지혜를 반영하는 고사로 이해하고 있다. 학계 논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논문에서는 여왕의 지혜를 과장하고자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꾸몄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첫 번째를 제외한 나머지 둘을 음미해보면, 이것이 단순히 여왕의 지혜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 든다. 왜냐하면, 인간의 지혜만으로 가능한 일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꽃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이 꽃에는 향기가 없겠구나'라고 짐작하는 것은 보통 인간의 머리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명탐정 셜록 홈즈의 이야기에는 유사한 대목이 수도 없이 나온다.  

하지만, 자연현상을 근거로 적군의 침입을 알아맞히거나 건강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사망 날짜를 예견하는 것은 단순히 머리가 좋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선덕여왕에게 '신끼'가 있었다고 해석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여왕이 특수한 영적 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삼국유사>에도 신하들이 "대왕의 신령하고 거룩함을 알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앞에서 '합리적인 선덕여왕'의 이미지에 이의를 제기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에게 '초합리적인' 측면이 있었던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덕여왕을 연기하는 배우는 사극 속의 신녀들처럼 어느 정도는 묘한 분위기를 풍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선덕여왕을 포함해서 신라인들의 이미지를 전하고 있는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의 저자는 각각 유학자와 불교 승려다. 그래서 이 두 책은 유교 혹은 불교의 스펙트럼을 통해 신라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삼국사기>가 유교적 역사관에 입각해서 한국 고대사를 재해석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이 책은 유학자들의 눈에 중요한 사실들을 유학자들의 관점으로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 점에 관한 한, <삼국유사>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목차만 봐도 이 책이 불교적 역사관에 입각한 책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 책은 거의 절반 이상이 불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불탑이나 불상에 얽힌 이야기들이 한국사의 주요 사항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역시 불교 승려의 눈에 중요한 사실들을 승려의 관점으로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단순히 목차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특히 단군왕검에 관한 내용을 보면, 이 책이 한국 고대사를 불교적 색채로 윤색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환인제석의 제석(帝釋), 환웅의 웅(雄), 천부인의 천부(天符) 등은 불경에서 나온 명사들이다. 이는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이 단군 이야기를 불교적 방식으로 해석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교와 불교 색채 강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한계 

유교와 불교는 한민족의 고대 문화가 형성되고 나서 훨씬 뒤에 들어온 문화들이다. 유교와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한민족을 지배한 문화는 샤머니즘적 성격이 농후한 신선도(신선교)였다. 그런데도 유교·불교의 종교적 양심에 구속된 사람들이 신라 역사를 기록했으니, 신라의 원래 모습이 얼마나 많이 지워졌을지 짐작할 수 있다.

만약 종교적 구속을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선덕여왕의 지기삼사를 기록했다면, 오늘날의 독자들은 그가 무당의 특성을 겸비한 인물이었다는 점을 좀더 쉽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신라의 별궁이 있었던 임해전 터.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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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무당의 특성을 겸비했다는 말이 낯설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신라 사회의 특성을 이해하면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삼국사기>에 인용된 김대문(<화랑세기>의 저자)의 말에 따르면, 신라 사람들은 존귀하고 높은 사람을 지칭할 때에 차차웅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그런데 차차웅은 무당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것은 무당의 특성을 겸비한 인물들이 신라 사회의 엘리트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로, 신라 제2대 남해왕은 차차웅이란 공식 칭호를 갖고 있었다.

<삼국사기> '잡지' 편에 따르면, 박혁거세 사당의 초대 사제는 박혁거세의 딸인 아로였다. 고대 왕국에서는 건국 시조가 국가의 신이었기 때문에, 시조를 모신 사당의 사제는 국가 신앙생활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과 달리 고대 사회에서는 영적인 능력이 없으면 일국의 사제가 될 수 없었다. 아로 공주가 그런 역할을 맡았다는 것은 신라 왕족이 정치적 능력뿐만 아니라 종교적 능력도 보유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점은 고대 한국 왕조들이 중국과 달리 오랫동안 장수한 이유를 이해하는 데 힌트를 제공한다. 기원전 3세기 이래 중국 왕조들이 평균적으로 65년도 못 버틴 데 반해, 대부분의 한국 왕조들은 오백년은 기본이고 천년 가까이 존속했다. 왕실이 신령스러운 이미지를 띠었기에, 유사한 능력을 갖춘 대체 세력이 쉽게 등장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영적인 능력이 신라의 모든 왕들에게 전해졌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상당수의 왕들에게는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종교와 정치가 명확히 분리되지 않은 고대 사회에서 신라왕들이 천년 가까이 통치권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만약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종교적 색채가 가미되지 않았다면, 이런 양상이 훨씬 더 분명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그랬다면, 오늘날의 대중은 선덕여왕의 모습에서 무당의 모습도 쉽게 찾아낼 수 있었지도 모른다.

선덕여왕이 여성이었다는 이유로 여성 정치인을 무조건 선덕여왕에 빗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를 일반 여성과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선덕여왕을 닮고자 한다면, 여성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신끼'도 어느 정도는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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