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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나는 꽤나 비판적이었던 모양이다. 부당한(내 주관적인 판단이겠지만 객관적이라고 믿은) 현실에 대해 견디지 못하는 성향을 가졌는지, 대체로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경향이 있었나 보다. 못된 습관인 것은 안다. 나의 에고가 완강한 탓일까, 잘 고쳐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살신성인은 엄두도 못 내었다.

사람들이 때로 그런 나를 보고는 "왜 그리 부정적이야?"라고 했을 때, 나는 그 말을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기에 참으로 긍정적인 세상을 내가 외로 꼬아서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세상을 부정적으로 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부정적인 걸 부정적으로 보는 게 도리어 긍정적인 것 아냐?" 

그렇지만 '부정적으로 본다'는 규정지음은 알게 모르게 부담이 되었는지, 나이가 들어가며 다소 순응적으로 변해간 것을 보면 상당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넌 부정적이야'라는 말은 단순한 언사가 아니라 덜 성숙된 인격을 의미하거나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폄하할 수 있는 개연성을 충분히 가진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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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을 만나고 나서야, 전부터 긍정성의 강조에 대해 내 속 깊은 곳에서 느꼈던 묘한 거부감의 실체를 알아차린 것 같아 참 반가웠다.

긍정은 낙관론, 낙천주의와도 통할 텐데, 이러한 사고가 도리어 현실을 외면하고 현실을 망각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을 때, 나는 도리어 그런 부정적인 지적을 충분히 '긍정'할 수 있었다.

미국인인 바버라는 지극한 낙관주의자 조지 부시 대통령 재임 시절에 끔찍한 9.11 테러가 일어났는데, 이 사건은 사전에 '비관적'으로 예감할 수 있었고, 이라크 침공 역시 '식은 죽 먹기 같은 전쟁'이라는 '부주의한 낙관론'이 배어있었으며, 2002년 뉴올리언스 지역의 허리케인 카트리나도 제방 붕괴의 (비관적인) 경고를 무시한데서 일어났다고 했다. 게다가 2007년 금융 붕괴와 경제 위기는 바로 그러한 긍정과 낙관의 총체적 결과라고 하며 미국 사회에 만연한 긍정적 사고의 실체를 파헤쳤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그러면 당신에게 긍정적인 일들이 찾아올 것이다. 원하는 것에 집중하기만 하면 당신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 무한한 재산이든, 성공이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레스토랑의 앉고 싶은 자리든, 말 그대로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 우주는 당신의 요청에 응하기 위해 존재한다. 당신은 욕구의 힘을 다루는 방법만 배우면 된다. 원하는 것을 눈앞에 그려보라. 그러면 그것이 당신에게 '끌려온다'.

오,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긍정적인 생각으로 나를 가득 채우면 원하는 일들이 다 이루어진다는 다분히 주술적인 이 가르침은 2006년 말, <시크릿>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전 세계적으로 퍼졌고, <오프라 윈프리 쇼>, <래리 킹 라이브> 등 유명 토크쇼를 통해, 동기유발 블로그, 부자 되기 웹사이트 등을 통해 폭발적으로 퍼졌으며 미국을 넘어 중국, 한국, 인도와 같은 성장 국가들로 확산되었다.

재작년이었나? 나는 유명한 동기유발 강연자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강의 내용 역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짐으로써 행운을 잡은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우리도 그러하면 성공하리라, 하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숨 가쁘게 던져주었다. 강연자는 누가 들어도 알만한 거부들과 기업인을 보여주면서 이들이 가진 품성의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청중의 답을 이끌어내어도, 마땅한 정답이 나오지 않자, 강연자는 마침내 보여주었다.

"Positive!(긍정적인, 확신 있는, 적극적인)"

전 세계적으로 퍼진 긍정적인 사고는 마치 종교적 도그마처럼 대형교회와 결탁하였고, 금융자본과 연결되었으며, 기업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제는 긍정적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나에게 온 모든 실패는 내가 긍정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래서 불평할 수 없고, 비판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유포시켰다. 심지어 긍정적으로 살려면 부정적인 사람을 멀리 하라고 가르쳤으니, 조심스럽고 비판적이며 현실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들을 외면하라 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게다가 <시크릿>의 저자 론다 번은 끌어당김의 법칙을 들먹이며, "쓰나미와 같은 재난은 그에 맞는 진동수를 가진 사람에게만 일어난다"고 말하여, 희생자를 비난하는 시각을 드러내며, 신자유주의적 시각과 일치하는 지점을 보여주었다. 이는 곧 대량 정리 해고를 단행한 회사에서 동기유발 강연장으로 해고자들을 내몰아 긍정적 사고를 전파함으로써, 해고가 곧 긍정적이지 못한 개인의 결점에서 온 것일 뿐, 결코 회사의 책임이 아니라는 현실 호도용으로 활용된다고 바버라는 지적하였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이러한 무차별적 긍정적 사고에 대한 대안으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 세상엔 위험과 기회가, 죽음과 행복이 뒤섞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것. 또한 쾌활하게 생활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고 해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는 '방어적 비관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의 깊은 현실주의는 행복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하게 한다. 우리 자신이 처한 실제 환경을 도외시하면서 상황이 개선되기를 바랄 수 있을까? 긍정적 사고는 그런 외부 요인이 우리 내부의 상태, 태도, 기분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부유하고, 성공을 거두고, 충분히 사랑받은 사람이라고 행복이 당연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행복한 환경이 필연적으로 행복이라는 결과를 낳지 않는다고 해서 생각과 감정을 교정하는 내면으로의 여정을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직면한 위협은 현실적이며, 자기몰입에서 벗어나 세상 속에서 행동을 취해야만 없앨 수 있다.

바러라 에런라이크 덕분에 나는 진정한 긍정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였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란, 어쩌면 무작정 긍정적으로 보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 있지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을!

한 해가 지나가는 세밑이다. 우리는 또 다시 다가올 새 해를 꿈꿀 테지만, 미래에 대한 긍정적 자기 최면보다, 근거 없는 낙관론보다, 현실에 깊이 뿌리를 둔, 조심성 있는 실천 한 걸음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나에게도, 벗들에게도 가만히 말해주고 싶다.

"걱정 마, 긍정적이지 않아도 괜찮아."

덧붙이는 글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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