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체보기
블로그 전체검색

* 사단칠정논쟁 이후로도 조선 성리학은 인심도심논쟁(人心道心論爭), 인물성동이논쟁(人物性同異論爭)을 통해 체계성과 문제의식의 완성도와 깊이를 더하며 발전되어갔다. 그리고 성리학은 리와 기, 리의 주재성과 내재성 사이의 긴장성 속에 서 있었다. 이 긴장성이 성리학의 특징이었다.

  이런 긴장성은 어디에서 연규하는가. 그것은 주자가 천지 사이에 자연현상과 인간세계, 존재와 규범을 이원적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자연과 도덕을 하나의 일원적 유기적 세계로 보는 세계관 속에서 나타나는 사상적 특성인 것이다. 그렇게 얻어진 덕목을 '중용(中庸)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 유기적 세계는 끊임없이 운동한다. 그러므로 그 중용성의 확보란 과제는 가시적 목표로 설정된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요구되는 긴장으로 나타난다. 인체에 비유하자면 체온을 36˚로 항상 유지하려는 노력과 같다. 중용을 이런 생명 현상과 관련해 설명하면 '생명을 유지하려는 항상적 노력이나 긴장(Homeostasis)'이 될 것이다.

곧 중용은 늘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중용(時中)'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본연(本然)의 성(性)에서 유래하는 사단(심으로는 도심道心)을 확보하고, 칠정(심으로는 인심人心)을 배제해 인욕(人欲)에 떨어지지 않고 천리(天理)를 보존하려는 노력은, 곧 '정일집중(精一執中)'의 수양론, 경(敬)의 사상으로 나타났다. (187~188쪽)

 

* 윤휴가 『중용』과 『대학』을 중심으로 주자와 다른 해석을 낸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이른바 '탈주자학'의 선구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의 사고에서 중시되었던 것은 사회구성원 개개인이 아니라 왕정과 그를 대표하는 군주였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즉 통상 성리학에서 '성학(聖學)'이 군주나 사대부는 물론, 일반 서민들도 달성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던 데 비해, 성학의 주체를 군주에 한정시킨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또한 존비귀천(尊卑貴賤)으로 계서화된 사회구조를 그 이념 속에 담보하고 실현하는 것이 예법이므로, 예법의 실천이 학문의 핵심이 된다는 논리였다.

  송시열은 이런 윤휴의 학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왜 그랬을까? 송시열은 '성학'을 군주의 특수 학문이 아니라, 보편 학문으로 생각했다. 즉 인간 누구나 성취할 수 있는 자질이 있고, 닦을 수 있는 훈련 과정으로 본 것이었다. 이는 주자에서 퇴계와 율곡을 잇는 조선 성리학의 연장이었다. (191~192쪽)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