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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목사의 [중용] 읽기 

 

이 글은 사서 삼경중 하나인 [중용]을 읽기 시작한 목사의 독서 노트이다.

사서 삼경을 읽기 시작한 다음에 드디어 [중용]에 이르렀다. 주희의 독서법에 따른 순서를 굳이 따라온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다보니 그 말을 따르게 되었다. 주희는 사서 삼경의 독서를 대학, 논어, 맹자 순으로 읽은 다음에 [중용]을 읽을 것을 권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대학 논어 맹자를 읽긴 했지만, 그 내용을 속속들이 파헤치며 읽은 것은 물론 아니다, 그저 물가에서 발장구를 치면서 , 그것도 몇번 읽어오면서 이제 [중용]에 이르러, 뜻밖에 [중용]의 깊이를 알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중용]을 읽은 다음에 다시 되돌아가 대학, 논어, 맹자를 읽어 다시 [중용]을 읽어볼 심산이다.

 

그런데 [중용]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중용]은 다른 글에 비해서 무척이나 형이상학적인데, 그것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며 읽어볼 수는 없는 것일까?  [중용]에서 주장하는 배경이 되는 것이 분명 어떤 시대 전국시대- 일 터이고, 선인들은 그런 시대적 배경의 도움하에 [중용]의 형이상학적 논리들을 꿰뚫어 보았을 것인데, 지금 전국시대의 시대상을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이 뻔하고, 더군다나 [중용]이 탄생한 고장은 중국이니, 우리나라와도 그 상황이 다른 것은 뻔하니, 더더욱 그 이해의 거리가 멀지 아니한가?

 

나의 그런 생각은 결국 그래서 우리나라의 선조들은 [중용]을 어떻게 활용(?)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귀착이 되었고,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을 뒤져보게 되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중용]을 읽었던 사대부들은 [중용]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했을까? 물론 학자들의 글을 읽어 [중용]의 이해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 하지만, 그런 학문적 소양이 없는 나로서는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그런 학자의 글 대신 조선왕조 실록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과연 조선왕조실록에는 [중용]이 넘실대고 있었다. 넘친다는 표현에는 미달하지만 넘실대는 [중용]을 보면서, 마치 법학을 공부하면서 법률조항을 공부한 다음에는 케이스 스타디를 하듯이, 조선왕조 실록에서 [중용]이 적용되는 케이스 스타디를 한 셈이다.

 

다음은 그런 기록의 일부이다. 

 

 

이하에서 [중용]은 책 편명 이름이고 '중용'은 보통 명사로서의 중용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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