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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떡이 먹고 싶어요

 

여기 계신 성도들은 한국을 떠난지 작게는 15년 길게는 20년이 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분들의 머리속에 한국은 아직 70년대의 모습들이다. 그래서 여기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고마움이며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약 한국에 있었더라면 이런 음식은 못먹을 것인데, 이런 옷은 못 입어 볼 것인데’, 하는 마음으로 감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것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대한 근거없는 우월감으로 변하기도 한다. 아직도 한국사람들을 보면 안쓰럽기만 한 모양이다. 아직도 한국사람들이 못먹고 헐벗고 사는 줄로 안다. 한국이 발전하여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들을 때에는 잠시 이해하는 듯 하지만 나중에 보면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친척중에 누구가 병에 걸려 죽었다는 소식이라도 한국에서 들려오면 이곳 미국에 오면 살았을 것인데 하는 안타까움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또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그분들이 한국에 살았을 때에 어려운 가정에서 지낸 분들이 많다. 그래서 가난한 시절에 먹었던 음식들이 그분들에게는 혐오의 대상이 되어 있다. 예컨데 보리는 그들에게는 가난의 상징이다. 잡곡도 역시 그렇다. 배고파 물로 배를 채우던 기억때문인지 그냥 맹물은 안드시는 분도 있다. 그래서 지금은 그런 음식들이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느다고 아무리 설명해 줘도 그분들에게는 아니다. 물을 마시지 않고 대신 소다음료를 아주 박스로 가져다 놓고 물 대신 마신다. 먹는 것들도 고기등 기름기 많은 음식들을 선호한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병이 많다. 당뇨병도 많이 걸린다. 또 많이 걸리는 병이 바로 핏줄이 막히는 병이다. 기름기 많은 음식을 먹으니 그런 병에 많이 걸린다.

 

미국에 온지 오래 되었기에 그들이 그리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한국에서의 먹어보던 전통음식이다. 그중에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 떡이다. 다행히도 집사람이 외국에 살면서도, 떡을 만드는 기구가 없어도 다른 방법으로 여러가지 스타일의 떡을 만드는 기술을 습득해 놓았다. 그래서 가끔씩 교회식구들이 그런 음식 맛을 보게 된다 어떤 때에는 바람떡을 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인절미, 또 송편에다가 시루떡도 해주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던가? 교회에 생일잔치가 있던 날, 다른 때에는 케이크를 준비했었는데, 그날은 아내가 백설기를 만들어 거기에 장식을 하고 생일 케이크로 만들어 갔다. 그날 모두다 점심밥 대신 떡들을 먹으려고 하였다. 밥은 제쳐놓고 떡들을 먹었다. 누군가는 20년 만에 떡을 먹어 본다고 하였다. 그리고 남는 떡들을 서로 나눠어 싸가져갔다.

 

그 다음날 수요일에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마친 어느 자매님에게 문병을 갔는데 그 분 첫마디가 떡이야기다. 떡을 먹고 수술을 받아서 그런지 아직도 배가 든든한 것 같다는 말에 우리는 한참이나 웃었다. 그 뒤로 문병을 갈 때마다 이제 회복 단계에 들어섰는지 먹는 것 이야기다.

 

그러더니 어제 주일 예배를 마치고 교회 식구들과 문병을 갔더니 또 떡 이야기다. “목사님, 떡이 먹고 싶어요. 지난 번 사모님이 해 오신 백설기 떡을 먹고 싶어요.” 교회식구들이 모두다 한바탕 웃었다. 이제 먹는 것을 자꾸 이야기 하는 것을 보니 이제 아픈 것은 다 사라지고 많이 나은 것 같다고, 다들 웃었다.

 

그래도 그들이 그렇게 먹고 싶은 것들, 마치 아이들처럼 말해 주는 그 마음들이 고맙다. 그저 아이처럼 순수하게 웃으면서 ‘떡 먹고 싶어요’, 하는 그 심령에 먹는 떡 그리고 생명의 떡으로 채워줄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미국 목회하던 시절에 메모처럼 남겨 놓았던 글, 다시 한번 새겨보니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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