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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대왕의 꿈>.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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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가 유능하고 탁월한 인물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그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 상당히 널리 퍼져 있다. KBS 드라마 <대왕의 꿈>에서 통일에 대한 김춘추의 열망이 수없이 강조되고 있듯이, 우리 사회에서는 그를 통일 영웅으로 묘사하는 관점이 적지 않은 힘을 갖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가 결코 통일 영웅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춘추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한민족의 영역을 축소시켰다는 이유로 그를 삼국통일의 영웅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나 보다'라고 선입견을 갖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민족의 영역을 축소시켰든 안 시켰든 간에 그는 통일과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통일은 두 개 이상을 하나로 합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컨대, 일정한 범위 안에 A와 B 두 개가 있다면, A와 B를 하나로 합하는 것이 통일이다. 단순히 A와 B 중에서 하나가 없어지는 것은 통일이 아니다. 이런 이치를 염두에 두고, 김춘추 시대의 역사를 검토해보자.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공격한 서기 660년에 의자왕은 나당연합군에 백기를 들었다. 이로써 백제왕조는 공식적으로 '폐업'을 신고했다. 하지만, 이 사실만으로 김춘추가 백제를 통일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백제 멸망 직후에 이 땅의 대부분은 백제부흥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부흥군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는 일부 지역은 당나라 행정구역인 도독부의 관할로 들어갔다. 김춘추는 백제를 멸망시키기는 했지만, 백제 땅을 신라에 합하지는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그는 이듬해인 66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살아생전에 신라가 백제 땅을 지배하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다.

따라서 김춘추가 한 일은 백제를 멸망시킨 것뿐이다. 통일이란 것은 단순히 상대방을 멸망시키는 게 아니라, 평화적으로든 무력적으로든 상대방과 나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김춘추는 신라와 백제를 하나로 만들지 못했다.

문무왕이 즉위한 뒤 백제부흥군이 진압됐지만, 그렇다고 백제 땅이 신라의 지배를 받게 된 것도 아니다. 부흥군의 소멸과 함께 백제 땅을 차지한 것은 신라가 아니라 당나라였다.

김춘추가 죽은 지 7년 뒤인 668년에 신라는 당나라와 다시 한 번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이로써 고구려 땅의 대부분은 당나라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런 상태에서 신라는 백제 땅을 차지하기 위해 670년부터 당나라와 전쟁을 벌였다. 김춘추가 죽은 지 9년 뒤부터, 백제 땅을 통일하기 위한 신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신라는 김춘추가 죽은 뒤, 비로소 통일 전쟁 시작

 멸망 당시 백제 왕궁을 재현한 백제문화단지. 충남 부여군 규암면 소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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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실에서 나타나듯이, 김춘추는 백제를 통일하지도 못했고 고구려를 통일하지도 못했다. 따라서 그는 삼국통일과 아무런 연관도 없었다. 그는 삼국통일은커녕 2국 통일도 이루지 못했다.

"신라가 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 필요한 기본 조건을 만들어놓은 인물이 김춘추이므로, 그를 통일의 영웅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물론 김춘추가 이룩한 나당연합이 백제·고구려 멸망과 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인과관계를 인정하다 보면, 한강 유역을 확보하여 대(對)중국 동맹의 여건을 확보한 신라 진흥왕도 백제·고구려 멸망에 기여했다고 평가해야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진흥왕도 삼국통일의 영웅으로 불려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인과관계를 확장하다 보면, 결과적으로는 단군왕검이 한국 역사의 모든 책임을 떠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처럼 객관적 사실관계를 놓고 보면, 김춘추는 통일과는 무관한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그를 통일 영웅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불편한 진실'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 영웅으로 부각된 김춘추, 왜?

실제로는 통일과 관계없는 김춘추를 통일의 영웅으로 부각한 것은 김춘추의 후손들이 장악한 신라 왕실이었다. 신라 왕실은 '김춘추가 당나라를 끌어들이는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지 못했다면 신라가 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키지 못했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그를 통일의 영웅으로 부각했다.

신라 왕실이 김춘추를 통일의 영웅으로 부각했다는 점은 그의 묘호(사당의 명칭)를 태종으로 정한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신라 왕실은 태종이란 묘호를 통해 '김춘추의 업적은 중국 통일을 이룩한 당태종(당나라 태종)의 업적에 비견된다'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신문왕 편에 따르면, 태종무열왕이란 칭호에서 '태종'이란 부분 때문에 신라는 '중국'의 항의를 받았다. 이때가 692년이었다. 갑자기 '당나라' 대신 '중국'이란 표현을 쓴 이유는 잠시 뒤 설명한다. 이때, 김춘추의 손자인 신문왕은 '태종이란 칭호를 쓰지 말라'는 중국의 요구를 받았다. 한마디로, "왜 우리 천자의 칭호를 표절하느냐?"는 항의를 받은 것이다.

 태종무열왕릉비. 경북 경주시 서악동 소재.
ⓒ 문화재 공간정보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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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실은 '김춘추도 삼한을 통일했기 때문에 태종이란 묘호를 붙인 것'이라는 억지 논리와 함께 '황제국에서 바꾸라고 지시하면 바꾸겠다'는 말로 맞섰다. 바꿀 없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결국 중국이 물러섰다. 이렇게 신라 왕실은 이국통일도 못한 김춘추에게 삼국통일의 이미지를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이 신라의 논리를 수용하고 태종이란 칭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 중국 내부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692년이면 무측천(측천무후)이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무주)를 세운 지 2년 뒤였다. 주나라는 690년부터 705년까지 15년간 중국을 통치했다. 이 15년간 당나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당나라는 705년에 가서야 부활했다.

그런데 중국 정부와 역사학계는 무측천이 여성이고 주나라가 15년밖에 유지되지 않았고 15년 만에 당나라가 부활했다는 이유로 무측천의 주나라를 정식 왕조로 인정하지 않는다. 엄연히 존재했던 나라를 '해석'에 의해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 역사서는 물론이고 한국의 <삼국사기>에서도 690~705년에 당나라가 존재했던 것처럼 기록되어 있다.

위에서, 당나라 대신 '중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삼국사기>에는 당나라가 태종이란 칭호를 문제 삼은 것처럼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무측천의 주나라가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의 중국을 통치한 것은 엄연히 주나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기간에도 당나라가 존재했던 것으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논의의 편의를 위해 '중국'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넘어간 것이다. 

위와 같이 무측천이 새로운 나라를 세운 직후라서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김춘추는 삼국통일의 영웅'이라는 신라 왕실의 주장이 중국에 의해 쉽게 수용될 수 있었다. 중국 내부의 정치적 사정 때문에 김춘추의 이미지가 국제적 공인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백제를 멸망시킨 것과 통일한 것은 다른 문제

그런데 김춘추의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굳힌 인물은 고려 때 김부식이다. 사대파 김부식의 라이벌은 북진파 묘청이었다. 묘청은 요동(만주) 땅의 회복을 주장했고, 김부식은 한반도 안에서 살기를 희망했다.

둘의 대결에서 승리한 것은 김부식이다. 김부식은 묘청을 꺾고 정권을 잡은 상태에서 <삼국사기>를 편찬했다. 정치적 승자는 역사를 새로 쓰고 싶은 욕구에 빠진다. 이 때문에 <삼국사기> 속에는 김부식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삼국사기>에 주입한 메시지 중 하나는 '한민족은 한반도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자면, 한민족 영토를 한반도로 축소한 인물을 영웅으로 부각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필요 때문에 김부식은 김춘추를 한층 더 부각했다. 김부식을 비롯한 사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할 목적으로 김춘추를 이용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김춘추는 삼국통일의 영웅'이라는 이미지가 고려시대에 한층 더 굳어지게 되었다.

이처럼 김춘추의 이미지는 신라 왕실과 <삼국사기> 편찬팀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그는 삼국통일은커녕 이국통일도 이루지 못했다. 그가 이룩한 일은 백제를 멸망시킨 것뿐이다. 백제를 멸망시킨 것과 백제를 통일한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앞으로의 TV 사극에서는 이런 점을 고려해서, 김춘추의 이미지를 보다 더 객관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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