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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은 리더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

전주 수병원 원목 오세용 목사
이성숙 (기사입력: 2008/01/14 10:46)
2008년은 정부 수립 60주년이 되는 해이면서 새 정부가 시작되는 해다. 아직 임기가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우리 사회에 희망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새 리더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사람에게 영적 리더십은 없다>(드림북 펴냄)는 책을 낸 오세용(전주 수병원 원목) 목사를 만나 리더십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오 목사는 “목회가 변질되는 이유는 목회자가 하나님의 필요를 채우려 하기보다 청중의 필요를 채우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6월에 <사람에게 영적 리더십은 없다>는 책을 내셨는데, 사람에게 영적 리더십이 없다는 말이 쉬 납득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은 동의한다. 다만, 일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일하는가가 문제다. 예컨대,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자신이 리더라는 마음으로 갔겠는가. 모세는 “나는 입이 둔한 자”라며 선뜻 나서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모세는 이집트로 향한다. 모세가 나는 리더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나를 선택하셨다는 마음으로 가지는 않았을 거라고 보는 것이다. 출애굽 과정에서 모세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생각해볼 점이 있다.
한국 교회 안에서 성경을 리더십의 눈으로 보는 시각들이 많은데 그것은 성경 해석에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극히 목적 지향적인 태도라고 보는 것이다. 성경 인물들은 인간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 주인이신 하나님께 철저히 복종한 인물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영적 리더십을 얘기하면서 목사님은 “리더도 사람이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하다. 목사님이 보는 성경적 인간관은 무엇인가.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이다. 리더를 마치 완전한 존재인 것처럼, 한 점의 오류도 없는 것처럼 몰아가는 데 문제가 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설령 그 사람이 리더로 교육을 받고 그렇게 만들어지고 태어났다고 해도 완전해질 수는 없다. 그런데 리더십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고려하지 않는 듯하다. 소망은 리더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
개인적으로는 교회가 ‘영적 리더십’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리더십은 인간을 활용하는 것이고, ‘영적’이라는 의미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관여된다. 인간이 도구로 활용되는 것은 영적인 것과는 배치된다. 사회에서 리더십을 강조한다고 하여 교회도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국 사회가 IMF를 겪으면서 성공에 대한 갈망이 더 강해진 것 같다. 이로 인해 교회 안에서도 리더십에 대한 담론이 무성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IMF 때 공기업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미국에 있으면서는 리더십 관련 책을 거의 접하지 않았다. 2006년 한국으로 돌아온 후 오히려 리더십 관련 서적을 더 많이 읽게 되었다. 성장주의와 리더십 담론에 대해 미국의 검증되지 않은 이론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있는 한국 교회가 미국보다 더 열심히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윌로우크릭교회는 이 교회의 지난 32년 사역의 중심이 되는 철학과 그것을 구현하는 프로그램에 대해 수년간 연구한 결과를 책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으면서 “잘못됐다. 실수했다.”고 고백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교회에 수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교인들이 영적인 활동을 하도록 이끌었지만, 그것이 영적인 성숙을 가져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빌 하이벨스 목사가 자신의 사역에 대해 반성하는 고백을 했지만 한국 교회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사회에서 리더십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업의 영속성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회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다. 교회 안에서 리더십을 강조하다 보면 목적(교회의 양적 성장)을 위해 교인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예수님의 말씀과는 다른 것이다.

교회에서 리더십이 강조됨으로써 빚어지는 문제점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다고 보는가.
교회를 섬기러 오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으러 오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를 많이 본다. 목사들이 무엇보다 중간 리더들 달래기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목회자들은 그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교회의 평화를 위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미국에서 목회할 때 그랬다. 한국 교회의 문제점이 바로 거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교회를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리더를 세우고 리더십을 강조하다 보니 교회 본연의 사명을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리더십이 강조되면서 교인수로 리더십을 평가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교인수를 불렸다고 훌륭한 목사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중직을 맡은 이들이 섬기는 역할에만 충실할 수 있게 하는 대안은 있는가.
처음에는 일꾼을 키운다는 입장에서 리더를 세우지만 어느 순간 권력화 되면 교회를 어지럽히게 된다. 일꾼은 일을 다 한 다음 주인이 돌아왔을 때 곁에 서서 시종을 드는 것이 바른 태도다. 그게 바로 ‘서번트십’이다. ‘서번트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라는 말은 잘못됐다고 본다. 종으로 섬기는 것과 앞에서 이끌어가는 리더는 서로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둘을 나란히 붙여 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서번트리더십을 얘기하면서 ‘리더십’을 강조하다 보니까 리더가 된 순간부터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하는 것이다. 서번트십은 아무런 대가 없이 그저 봉사하는 것이다.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실행할 따름’이라는 마음으로 봉사에 임해야 한다. 현재로서의 대안은 ‘서번트리더십’ 대신 ‘서번트십’을 교회에서 강조하는 것이다. 용어를 바꿈으로써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오죽하면 논어에서 ‘인부지불온 불역군자호 :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라 할 만하지 않은가’라고 했겠는가. 신자들에게 섬기기만 하라고 할 때 과연 가능할 것인지.
어려운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교회 안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회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교회가 무엇인가. 교회가 무엇이길래 리더를 세워 교회를 유지시켜야 하는가. 지금은 교회를 위한 교회가 되고 있다. 예수님은 들어오실 자리가 없어지고 인간적인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 사람을 훈련시켜 교회를 유지하고 확장시키는 도구로 만들고 있다. 신자들을 진실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 것인가, 목사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한 명이라도 더 불러 모으려는 것인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대면하게 하는 목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목사가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아이들이 다 컸고 먹고사는 문제에 연연하지 않으니까 나도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성도 한 명이 와야 교회가 유지되는 영세한 교회 목사들에게 이런 말을 하기가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목회자가 너무 현실에 얽매여서는 안 되지 않을까.

전주 /이성숙 부장 hyangrim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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