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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을 개정하기 위한 한·미 협상이 미국 시각으로 2일 오전 워싱턴에서 시작됐다. 지난 5년간 한국은 연간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40~45%인 8000억 원 정도를 매년 부담했다. 이 비율을 내년부터 50% 이상으로 올리라는 것이 미국의 요구다. 이 요구가 관철될 경우, 한국의 연평균 부담 액수는 최소 1조 원을 넘게 된다.

자국의 세계전략을 수행하기 위해 파견된 주한미군의 주둔비용을 한국이 분담하는 것은 누가 듣더라도 어불성설이다. 원칙상 1%의 분담도 불합리한데, 50% 이상을 부담하라는 것은 상식을 한참 벗어난 요구다. 

한국이 주둔비용의 50% 이상을 분담한다면, 한국은 주한미군의 '최대주주'가 되어 미군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의결권'이 보장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50% 이상이나 분담한다면, 우리 후손들은 나당동맹(신라-당나라 동맹) 못지않게 한미동맹을 비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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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지난 5월 22일 '불법부당한 방위비분담금(미군주둔경비)를 위해 미군에게 국민혈세 갖다 바치는 한국 정부당국을 풍자'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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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의 '방위비'까지 부담한 신라

나당동맹은 말이 동맹이지, 사실상 당나라를 위한 무대였다. 당나라는 백제 땅을 신라에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660년에 백제를 멸망시키자마자 백제 땅을 독식했다. 이런 상태에서 668년에 신라는 당나라와 함께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고구려 땅 대부분은 당나라의 수중에 들어갔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인 670년부터 신라는 당나라와 전쟁을 벌여 간신히 백제 땅을 찾아왔다.

신라가 그나마 백제 땅을 차지한 것은 나당동맹이 해체된 뒤였다. 동맹이 작동하는 동안에 신라는 백제를 멸망시킨 뒤 백제 땅을 고스란히 당나라에 바쳤고,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고구려 땅의 대부분을 당나라에 바쳤다. 동맹을 통해 백제·고구려의 위협을 제거했다는 점에서는 신라도 얻은 게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당나라가 얻은 것에 비하면 그것은 떡고물에 불과했다. 

백제·고구려 침공은 당나라의 국익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이것을 위한 비용은 원칙상 당나라의 국고에서 나왔어야 했다. 그런데 신라인들은 당나라가 책임져야 할 '방위비'를 과도하게 분담하는 이해 못할 일을 저질렀다. 백제가 멸망한 직후에 두 나라 사이에서 벌어진 황당한 해프닝 하나가 <삼국사기> '신라 본기' 문무왕 편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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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무왕은 터무니없는 방위비를 분담하면서까지 나당동맹을 유지했다.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문무왕릉의 모습. 문무왕릉은 경북 경주시 앞바다에 수중릉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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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를 멸망시킨 이듬해인 태종무열왕 8년 6월(음력)에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사망했다. 양력으로 하면 661년 7월 3일에서 7월 31일 사이의 일이었다. 신라인들이 국상의 슬픔에 잠긴 이때, 당나라 황제 고종(당고종)이 신라에 사신을 파견했다. 당고종은 사신을 통해 "우리가 고구려를 칠 터이니 신라도 고구려를 공격하라"고 주문했다. 신라가 국상 중이라는 것을 무시한 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신라 군대를 동원하고자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신라 문무왕이 고구려 공격에 착수한 음력 7월(양력 8월 1일~30일)에 당나라 황제는 유덕민이란 특사를 파견해서 또 다른 명령을 전달했다. 신라가 당나라 군대를 위한 군량미를 부담하라는 요구였다. 자기네 군인들의 식비를 부담하라고 했으니, 요즘으로 치면 '방위비 분담'을 요구한 셈이다.

백제는 당나라와 육지로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당나라군이 백제를 칠 때 신라가 군량미를 부담하는 것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고구려는 당나라와 육지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당나라가 고구려를 칠 때 신라가 당나라의 군량미를 부담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당나라는 그것을 요구했고, 신라는 그것을 수용했다.

쌀만 챙기고 돌아간 당나라 군대

이듬해 음력 1월 즉 662년 2월 5일에서 3월 5일 사이에, 신라군은 대장군 김유신 등의 지휘 하에 쌀 8000가마니를 포함한 5만2000가마니의 군량미를 20대의 수레에 싣고 평양을 향해 북진했다. 당나라 군대를 위한 '쌀 배달'에 나선 것이다.

그 해 음력 1월에 평양으로 가는 여정은 험난했다. 길도 험한테 얼음까지 얼어서 수레가 잘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신라군은 수레에 실었던 군량미를 소와 말의 등에 옮겨 실었다. 추운 겨울의 얼음길에서 군량미까지 등에 지게 됐으니, 신라군의 소와 말들도 나당동맹의 모순을 탓했을지 모른다.

진짜 황당한 일은 '쌀 배달 부대'가 당나라 진영에 도착한 뒤에 일어났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 문무왕 편에서는 "(당나라 사령관) 소정방은 군량미를 받자마자 전쟁을 파하고 돌아갔다"고 했다. 당나라 군대가 쌀만 챙기고 돌아간 것이다. 신라군은 쌀 배달하고 택배비도 못 받은 셈이 되고 말았다.

당나라 군대가 돌아가자, 김유신도 철군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신라군이 돌아가는 길에 신라군과 고구려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고, 이 전투에서 신라군이 대승을 거두었다. 당나라 군대가 떠나버린 뒤에 신라군이 단독으로 승리를 거두었으니, 신라가 당나라에 쌀을 바친 일은 그야말로 무의미한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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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의 군대.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에 있는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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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가 신라를 농락할 수 있었던 것은 신라가 우습게 보였기 때문이다. 당나라는 그런 신라를 활용해서 백제 땅에 이어 고구려 땅까지 차지하고 동아시아에서 유일 슈퍼파워의 지위에 올라섰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뒤늦게 후회한 신라는 고구려가 망한 지 2년 뒤인 670년부터 당나라와 전쟁을 벌여 간신히 백제 땅을 찾아왔다.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는 부득이한 경우 외에는 자기보다 강한 자와 손을 잡고 제3자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면서 "이런 경우, 승리를 거둔다 해도 동맹국의 먹이가 되기 마련이다"라고 경고했다.

마키아벨리의 말처럼, 약한 신라와 강한 당나라의 동맹은 처음부터 당나라의 이익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도 신라는 동맹에 참여하여 당나라 군대의 급식비까지 부담했다. 그래 놓고 아무 이익도 거두지 못한 채 신라는 동맹을 깨야만 했다. 나당동맹은 신라에 대한 고구려·백제의 위협을 제거하는 측면은 있었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이것은 신라에 손해를 주는 동맹이었다. 

당나라가 신라를 도운 것이 당나라 자신을 위한 것이었듯이, 미군이 한국에 와 있는 것은 미국 자신을 위한 것이다. 미군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주둔하는 것 자체도 부끄러운 일인데, 그 주둔 비용까지 대한민국이 분담한다는 것은 더욱 더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것은 대한민국을 미국의 '쌀 배달 부대'로 만드는 일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내년부터 주둔 비용의 50% 이상을 부담하게 된다면, 우리 후손들은 나당동맹보다 한미동맹을 훨씬 더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을 미군의 '최대주주'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면, 미군 주둔 비용의 절반 이상을 부담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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