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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오늘 아침의 때묻은 혁명을 위해서
어차피 한 마디 할 말이 있다
이것을 나는 나의 일기첩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중용은 여기에는 없다
(나는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숙고한다
계사 건너 신축가옥에서 마치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소비에트에는 있다
(계사 안에서 우는 알 겯는
닭소리를 듣다가 나는 마름침을 삼키고
담배를 피워 물지 않으면 아니된다)

여기에 있는 것은 중용이 아니라
답보(踏步)다 죽은 평화다 나타(懶惰)다 무위(無爲)다
(단 "중용이 아니라"의 다음에 "반동이다"라는
말은 지워져 있다
끝으로 "모두 적당히 가면을 쓰고 있다"라는
한 줄도 빼어놓기로 한다)

담배를 피워 물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하였지만
나는 사실은 담배를 피울 겨를이 없이
여기까지 내리썼고
일기의 원문은 일본어로 쓰여져 있다
글씨가 가다가다 몹시 떨린 한자가 있는데
그것은 물론 현정부가 그만큼 악독하고 반동적이고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1960. 9. 9)

김수영 선생님, <중용에 대하여>를 읽습니다. '중용(中庸)'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이 중립이나 중도를 떠올립니다. 극단적이지 않은 중간적 행동을 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런 답이 온당한지 의문입니다. 이 시를 읽으며 참된 중용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선생님의 평전을 읽던 중 제 눈길을 한참 멈추게 한 일화 한 토막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1960년 4월 19일, 선생님께서는 그날 오후 내내 학생 시위대를 따라 다니시지요. 그러다가 서울 시내에 계엄령이 내려집니다. 곧이어 군인들의 군홧발 소리가 시내 곳곳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4·19를 맞이하는 선생님의 가슴속에는 불안과 초조, 그러면서도 혁명에 대한 일말의 기대 같은 게 있었겠지요. 그런데 계엄군이라니요.

총칼로 무장한 계엄군은 시내 곳곳으로 진주해 들어옵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선생님께서는 자리를 피하듯 노모가 계시던 도봉동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갑니다. 그때 선생님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을까요. 혁명의 실패나 좌절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요, 아니면 '조금 더 지켜 보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었을까요.

저로선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시위 학생들 무리에서 벗어나 도봉동으로 향하는 선생님의 심정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미 그전 1시 40분부터 시작된 총격으로 많은 어린 학생이 원통하게 피를 흘렸습니다. 하지만, 아니 그렇기 때문에 시위는 가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총격은, 그리고 학살은 처음이 힘든 법이지요. '총구'에서 나오는 '권력'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한 나절 안에 경찰의 경비 계엄이 군인들의 비상계엄으로 바뀌었습니다. 학살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순이었겠지요. 

상황이 급박해졌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판단해야 했습니다. '계속 거리에 남을 것인가, 일단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때 십여 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북한 인민군에게 의용군으로 끌려가고, 포로수용소에 잡혀 들어가 겪은 경험들이 어제 일인 듯 그려졌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평전의 저자 최하림은 당시의 선생님 이렇게 그렸습니다.

김수영은 그들의 뒤를 따라 오후 내내 돌아다니다가 계엄령이 내려졌다는 소문을 듣고 부리나케 도봉동으로 돌아갔다. 그의 레드 콤플렉스가, 포로수용소에서의 공포가 살아가 발길을 재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수영 평전> 274쪽)

선생님, 도봉동을 향해 갈 때의 그 발걸음은 어떠하셨는지요. 피를 흘리며 죽어간 학생들의 모습이 선생님을 괴롭혔겠지요. 광기 어린 이념 싸움이 어떻게 사람을 짐승보다 못한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권력을 향한 욕망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절망속에서 떠올리셨겠지요. 혁명은 왜 이토록 많은 '피'를 요구하는지, 그런데도 어찌하여 사람들은 그저 멀뚱히 그 피를 바라보기만 하는지도···.

그래서 저는 이 시를 선생님께서 "오늘 아침의 때묻은 혁명을 위해"(1연 1행) 외친 마지막 절규로 보았습니다. 그 절규는 "소비에트에는 있"(3연 1행)지만 "여기에는 없"(2연 1행)는 '중용'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당시 세상에는 진정한 중용이 없었습니다. 세상은 '반동(反動)'(4연 3행)처럼 "답보(踏步)다 죽은 평화다 나타(懶惰)다, 무위(無爲)다" 하는 것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혁명 이후에 들어선 '현정부' 또한 "악독하고 반동적이고 가면을 쓰고 있"(5연 6, 7행)었습니다. 혁명의 전초 기지여야 할 정부가 그러했으니 오죽했을까요. 그것은 선생님께서 일기장에 쓰는 글자까지 흔들리게 할 정도로 격렬한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혁명을 배반하는 모든 반동적인 것 대신에 진짜 중용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란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사람들은 중용을 대개 절충이나 타협 정도로 생각합니다. 중용이나 중립, 중도 등을, '검정'이나 '하양'이 아니라는 뜻에서 이도 저도 아닌(?) '회색'으로 표현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념적으로 좌파나 우파가 아닌 중간적이거나 중도파적인 위치를 중용으로 포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중용은 그게 아니겠지요. 중용은 결코 이저 저도 아닌 것이 절대 아닙니다. 두 극단의 중간에 있는 것 또한 중용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중용은 시간의 흐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르는 상황의 변화를 면밀하게 관찰한 후, 그때 그때의 정확한 '중(中)'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상황에 맞는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 행동 방안을 찾아 몸소 실천하는 '시중(時中)'의 삶이 진정한 중용의 태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용은 절대적인 양 극단의 어정쩡한 중간이 아닙니다. 현실 속에서 문제가 불거지거나 관계가 틀어지지 않게 행동을 적당히 유연하게 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중용의 삶을 위해서는 변화의 흐름을 읽고, 자신의 처지와 세상 현실을 냉철하고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역동적인 변화 과정 속에서 올바로 판단하고, 그 결과를 삶속에서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중용이야말로 실천의 중요성을 가장 중시하는 개념입니다.

그런 점에서 중용은, 시간 속에서, 그리고 변화의 흐름 속에서 그때 그때 가장 올바른 실천 방략을 찾고자 노력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동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에게 중용은 비겁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그것은 '답보'이고 '죽은 평화'이며 '나타'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므로 '무위'이기도 합니다. 그 모든 태도는, 선생님께서 통렬하게 꼬집은 것처럼, "모두 적당히 가면을 쓰고 있"(4연 5행)는 것들입니다.

"피의 화요일"(4월 19일)과 "승리의 화요일"(4월26일)을 모두 경험하신 선생님께 "오늘 아침의 때묻은 혁명"은 너무나도 치욕스럽고 분통스러웠으라 봅니다. 더군다나 혁명을 더럽힌 그 '때'는, 바로 '죽은 평화'나 태평스러운 '무위'로 치장한 가짜 중용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지 않았습니까.

세상의 어둠을 이야기할 때마다 중용과 중립을 지키라며 사뭇 점잖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꼰대'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소심하고 비겁한 사람들을, 우리는 과연 어찌해야 할까요. 선생님의 시 <중용에 대하여>를 보면서  풀기 어려운 문제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생각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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