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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비 서재에 들다

척약재

항상 걱정하고 두려워하라

[ 惕若齋 ]
요약
척약재는 『주역』에서 '척약'이라는 두 글자를 따와 지은 이름으로, 군자는 학문을 닦지 못하고 덕성을 기르려고 노력하지 않음을 항상 두려워해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
서재주인 김구용

걱정과 두려움

성균관 직강 김백은이 『주역(周易)』 건괘 구삼효의 '척약(惕若, 걱정하고 두려워하다)' 두 글자를 따와 자신의 서재에 이름을 붙이고 내게 그에 관한 설(說)을 지어 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내가 어찌 『주역』의 깊은 뜻을 밝혀 그 이름의 뜻에 알맞도록 할 수 있겠는가? 서재 이름은 놀며 쉬는 뜻을 담거나 좋아하고 즐기는 의미를 담기도 하고, 좋아하는 사물과 색깔의 이름을 빌려 짓기도 한다. 그런데 유독 '척약'으로 경계를 삼았다. 어찌 의의가 없겠는가?

나는 일찍부터 다른 사람의 걱정을 보고 내 걱정처럼 여겼고, 다른 사람의 두려움을 듣고 두려워하는 것처럼 생각했다. 걱정과 두려움의 경계가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지 않고, 기분이 찜찜하니 움츠러든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과 두려움을 모두 잊어버리려고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기운을 가다듬고 나면, 스스로 거침없이 물 흐르듯 활달해져 움츠러든 마음이 씻은 듯 사라졌다.

맹자가 기운을 갈고 닦고 길러서, 어떤 해로움도 자신을 해칠 수 없게 한 것은 부동심(不動心)에 있었다. 이제 척약의 의미를 헤아려 살펴보면,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의 마음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평생 올바름을 얻지 못한다. 사람은 두려워하고 공경하며 오만하고 나태함으로 치우치게 마련인데, 김백은의 마음에는 이러한 것이 없다. 어찌 내 마음이 흔들리겠는가?

마음과 뜻을 다스리는 방법

이미 김백은은 국학(國學, 성균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학생들은 도학(道學)이 있는 학자에게 가르침을 얻어 학문을 닦는 법이다. 세상의 이치와 진리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학문을 닦고 덕성을 기르려고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학문을 닦는데도 발전이 없으면 걱정하고 두려워할 것이고, 덕성을 기르려고 노력하는데도 제대로 향상되지 않으면 걱정하고 두려워할 것이다. 어떤 때는 해가 저물도록 애쓰다가 저녁까지 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처럼 저녁 때까지 걱정하고 두려워하여 위태롭게 여기는 것은, 마음속에 걱정과 두려움을 갖고 올바른 상태를 얻지 못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예전에 흔들리던 마음이 동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두려울 척(惕)'자는 '마음 심(心)'과 '바꿀 역(易)'을 합해 만든 글자이다. 마음은 언제나 소홀하게 다루기 쉽다. 살아가면서 마음을 쉽게 바꾸는 것은 경계하고 삼가며 공경하고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그럼 어떻게 경계하고 삼가며 공경하고 두려워해야 하는가? 학문을 닦지 못하고 덕성을 기르려고 노력하지 않음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널리 학문을 닦을 수 있고, 덕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덕성이 높으면 크게 될 수 있고, 학문이 넓으면 그 명성이 끝없이 펼질 것이다.

처음에는 '척약(惕若)'으로 처할 곳을 알아서 끝없이 크게 되는 경지에까지 이르고, 마지막에는 아무런 허물이 없어서 끝을 알고 처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편안하다. 이렇게 세상과 나라를 다스린다면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항상 걱정하고 두려워하라

『주역』 건괘 구삼(九三)은 이중으로 강해서 어질고 현명한 덕이 이미 드러나 사람들이 그에게 돌아가는 위치이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 처하는 것이 불안하다. 따라서 나아감과 물러남 그리고 움직임과 머무름이 도리에 맞아야 한다.

두려워하고 힘쓰며 다른 사람을 위해 충성스럽지 못한 일은 없었는지, 다른 사람과 교제할 때 믿음을 주지 못한 일은 없었는지를 매일 헤아려야 한다. 충(忠)과 신(信)이 마음속에 있고 단 한 가지 생각이라도 절실하지 않은 것이 없게 되면 학문에 거처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항상 '척약'하는 마음을 갖는 사람은 유종의 미가 있을 것이다. 시작이 있고 마무리가 있는 것은 오로지 군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김백은의 서재인 척약재에 대해 이렇게 설을 지었으니, 그대는 더욱 힘쓰기 바란다.

백문보1), 『담암일집』 '척약재설(惕若齋說)'2)

이 글 '척약재기(惕若齋記)'는 고려 시대 말기의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백문보(白文寶, 1303~1374)가 김구용(金九容, 1338~1384)의 서재에 부친 글이다.

백문보는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오른 후 중국 송나라의 과거제도인 십과취사(十科取士, 과거시험에 10과를 두어서 선비들을 선발함)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한편 불교를 지나치게 숭상해 일어나는 폐단을 들어 승려의 허가제를 실시하도록 했다. 공민왕 때 학문을 크게 일으킨 공적을 인정받아 우왕(禑王)의 대군(大君) 시절 사부로 임명되었지만 이미 늙었다는 이유를 들어 도은 이숭인을 천거하기도 했다. 또한 익재 이제현 등과 더불어 성리학의 기초를 확립했고, 척불숭유와 성리학의 이념으로 무장한 정몽주, 정도전, 이숭인 등 젊은 신진사대부 세력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김구용은 공민왕 때 16세의 어린 나이로 진사에 합격한 후 문과에 급제해 성균관 직강에 올랐다. 특히 공민왕의 집권 중반기인 1367년 성균관이 중건되자 정몽주, 박상충, 이숭인 등과 더불어 성리학을 크게 일으키면서, 불교를 배척하고 유학을 숭상하는 척불숭유의 선봉장이 되었다. 그는 원나라를 밀어내고 중국을 장악하기 시작한 명나라와 친교하자는 친명파(親明派)였는데, 우왕이 즉위한 다음해 이숭인, 정도전, 권근 등의 신진사대부 세력과 함께 북원(北元, 몽골로 쫓겨 간 원나라의 잔족 세력이 세운 왕조) 사신을 영접하는 일을 극구 반대하다가 죽주(竹州)로 유배를 당하기도 했다. 6년 뒤 유배지에서 풀려나 다시 벼슬길에 나섰는데, 이때에도 임금에 대한 직간(直諫)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정몽주와 더불어 성리학의 이념과 왕도정치에 따라 고려 왕조를 개혁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그러나 기울어가는 고려 왕조의 운명처럼 김구용은 비참하게 삶을 마감했다. 1384년 명나라와 국교를 수립하기 위한 행례사(行禮使)의 임무를 띠고 가던 도중 요동에서 백금 1백 냥과 세모시, 마포 각 50필을 지참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명나라 군사에게 체포되어 남경(南京)으로 압송되었다. 그 후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명으로 대리위(大理衛)로 유배되던 도중 영녕(永寧)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척약재기'는 김구용이 성균관 직강이었을 때 백문보가 써준 글로, 김구용의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쯤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누구든 이 나이 때는 가장 왕성하게 자신의 학문과 뜻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한다. 더욱이 고려 왕조를 개혁해 유학의 왕도정치(王道政治) 사상을 펼치겠다는 야망을 품은 김구용이었기에, 누구보다도 더 강렬하게 자신의 뜻과 욕망을 드러내고 싶어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오히려 김구용은 '척약'이라는 두 글자를 마음에 품었다.

『주역』의 「건괘문언전」 '구삼(九三)' 효에 보면 "구삼(九三)에 이르기를, 군자란 하루 종일 부지런히 힘쓰고 저녁에 두려워하니 위태롭더라도 허물은 없다고 했는데 무슨 뜻입니까?(九三曰君子終日乾乾 夕惕若厲无咎 何謂也)"라는 구절이 나온다. 즉 하루 종일 스스로 온 힘을 다해 힘써 노력하고도 저녁에 '오늘 잘못한 것은 없었는가?' 두려워하고 반성하기 때문에, 위태로운 처지에 놓인다고 하더라도 잘못한 것이 없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척(惕)' 자는 '두려워하다, 근심하다, 삼가다'라는 뜻이다. 백문보는 이 '척(惕)' 자를 '마음 심(心)'과 '바꿀 역(易)'으로 풀어 놓은 다음, 평소 마음을 바꾸는 일은 반드시 경계하고 삼가며 공경하고 두려워할 일이라고 해석했다. 김구용처럼 평소에 두려워하고 삼가는 듯 행동해도 운명의 힘을 피해가기 힘든데, 제멋대로 행동해 스스로 재앙과 환난을 불러들이는 사람이야 말할 필요가 있을까?

각주

  1. 1 백문보는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오른 후 중국 송나라의 과거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했고, 불교를 지나치게 숭상해 일어나는 폐단을 들어 승려의 허가제를 실시하도록 했다. 또한 익재 이제현 등과 더불어 성리학의 기초를 확립하는 한편 척불숭유와 성리학의 이념으로 무장한 정몽주, 정도전, 이숭인 등 젊은 신진사대부 세력의 정신적 스승이었다.
  2. 2 '척약재기'는 고려 시대 말기의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백문보가 김구용의 서재에 부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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