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惕若齋척약재

 

두려워하다. 놀라다. 걱정하다. 근심하다

같다. 만약. 너

재계하다. 공경하다. 공손하고 삼가다. 엄숙하다

 

척약재 명 위김경지작(惕若齋銘爲金敬之作)

목은(牧隱) 이색(李穡)

 

上帝之臨 嚴師之劫 상제지임 엄사지겁

상제(上帝)가 강림하신 듯 엄한 스승을 겁내듯 하여,

所存惟明 虎尾之蹈 소존유명 호미지도

어데서나 밝으라. 범의 꼬리를 밟듯,

春氷之涉 所察惟精 춘빙지보 소찰유정

살 어름 위를 건느듯, 살피기를 정(精)하라.

匪明斯昏 匪精斯雜 비명사혼 비정사잡

밝음이 아니면 어둡고 정(精)함이 아니면 혼잡하게 된다.

驕吝之萌 侈然自放 교린지맹 치연자방

교만하고 인색한 것이 생기는 것은 버젓이 스스로 방자함에서다.

殆哉岌岌 乃罔之生 태재급급 내망지생

아슬아슬 위태로운 것은 속이면서 사는 것이다.

惟敬之甫 念玆以惕 爲居室名 유경지보 념자이척 위거실명

오직 경지 씨는 이것을 생각하여 척(惕)자로 거처하는 집 이름을 만들었다.

周爻孔彖 動持息夾 盤水之盈 주효공단 동지식협 반수지영

주공(周公)의 효사(爻辭)요, 공자(孔子)의 단사(彖辭)다. 움직일 때나 휴식할 때에 항상 물이 가득한 쟁반을 받드는 것처럼 하라.

凡學之患 中而或跲 當致厥成 범학지환 중이혹겁 당치궐성

더구나 학문의 걱정은 중도에서 실패하는 것이니 마땅히 성취하려거든

友以輔仁 忠告是急 敢鞠斯銘 우이보인 충고시급 감국사명

벗[友]으로 인(仁)을 도우는 것이다. 충고하기가 급하므로 감히 이 명을 짓노라.



척약재 명(惕若齋銘)

오천(烏川) 정몽주(鄭夢周)


惟天之行 日九萬程 유천지행 일구만정

하늘에 운항하는 것은 하루 구만리라.

須臾有間 物便不生 수유유간 물편부생

잠깐이라도 간단(間斷)이 있다면, 물(物)이 나지 못한다.

逝者如斯 衮衮無已 서자여사 곤곤무이

운행하는 것은 이와 같아서 쉬지 않는다.

一念作病 血脈中否 일념작병 혈맥중부

잠깐 동안이라도 병이 생기면 혈맥(血脈)이 중단되는 것이니,

君子畏之 夕惕乾乾 군자외지 석척건건

군자가 그것을 무서워하여 밤이면 두려워 반성하고

積力之極 對越在天 적력지극 대월재천

공부를 지극히 쌓으면, 하늘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척약재 명(惕若齋銘)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


此心之微 出入無鄕 차심지미 출입무향

이 마음이 은미(隱微)함은 들고남에 고향이 없고

惟敬斯存 孰知其方 유경사존 숙지기방

오직 공경만이 이를 간직하는 것이니, 뉘라서 그 방법을 알리요

操之大蹙 睡昏昏 조지대축 개수혼혼

다루는일 크게 잘못해 정신잃고 졸고 앉아 있다해도,

一念或放 惟絲之棼 일념혹방 유사지분

한번생각 혹시라도 방종하면 실타래처럼 엉켜버리니

必有事焉 終日乾乾 필유사언 종일건건

반드시 일에 있어서 종일 부지런하고 부지런할지어다.

 

 

척약재 잠(惕若齋箴)

제정(霽亭) 이달충(李達衷)


毋不敬 毋自欺 무불경 무자기

불경(不敬)하지 말고, 스스로 속이지 말고,

馭朽索 攀枯枝 어후삭 반고지

썩은 새끼를 타고 마른 가지를 휘여 잡지 말라

進知退 安思危 진지퇴 안사위

나가면 물러날 줄 알고, 편안하면 위험한 것을 생각하라

厲無咎 念在玆 무구 염재자

허물없이 생각이 이에 있기를 힘써라.


척약재 찬(惕若齋贊)

연산(燕山) 한복(韓復)


十目所視 十手所指 십목소시 십수소지

열 눈이 보며 열 손이 손가락질한다.

戰兢自持 愼終如始 전긍자지 신종여시

두려워하며 공경하여 스스로 지켜서 끝까지 조심하여 시작할 때와 같이 하라

對越上帝 肅焉嚴只 대월상제 숙언엄지

언제나 하늘을 대하고 있는 듯 정숙하며 엄격하라

爲聖爲賢之功 止乎此而已矣 위성위현지공 지호차이기의

현인(賢人)이 되며 성인이 되는 공부가 이것뿐이니라.


척약재 설 (惕若齋說)

담암(淡庵) 백문보(白文寶)


성균관(成均館)의 직강인 김백은(金伯誾)군이 《주역》건괘(乾卦)의 구삼(九三) 효의 척약(惕若) 두 글자를 따서 그 서재의 이름을 붙이고 나에게 설(說)을 지어 주기를 부탁하였다. 내가 어찌 《주역》의 깊은 뜻을 발명하여 군이 서재의 이름을 붙인 취지에 들어맞게 할 수 있겠는가. 서재에 대하여는 놀고 휴식하는 의미를 붙이기도 하며, 좋아하며 즐기는 의미를 붙이기도 하며, 물색(物色)의 좋아하는 명칭을 붙이기도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인데, 군은 홀로 척약(惕若)으로 경계를 삼았으니 어찌 의의가 없겠는가.

나는 일찍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남의 걱정을 보고 자기의 걱정으로 생각하며, 남이 두려워하는 것을 듣고 자기가 두려워하는 것처럼 생각하여, 걱정하며 두려워 하는 경계가 있으면 마음이 태연스럽지 못하고, 이러한 생각이 조금만 나타나도 나의 기운은 불만스럽게 움츠러든다.

내가 통틀어 이를 잊어버리려하고 마음을 안정하며 기운을 자연스럽게 가지면, 그런 뒤에 나의 기운은 쾌활하여지고 조금도 움츠려든 곳이 없게 된다. 맹자(孟子)가 기운을 길러서 저해함이 없게 한 방법은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제 걱정하며 두려워한다는 뜻을 보면 또한 그 마음을 벌써 움직이지 않게 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치우쳐 있으면 언제나 그 정상적인 것을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거나 공경하거나 거만하거나 태만함에 따라서 언제나 치우쳐지는 것인데, 군의 마음에는 이러한 상태가 없는 줄로 나는 안다. 내가 어찌 마음이 동요하겠는가. 군이 이미 국학(國學)에서 강의를 맡고 있고, 여러 학생은 반드시 도학이 있는 학자에게 나아가서 학문을 닦는다. 도학이 있기를 희망하는 자는 학문을 반드시 닦으며 덕을 반드시 향상시킬 것이다. 닦아서 발전되지 못하면 반드시 걱정하며 두려워할 것이고, 향상시키는 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반드시 걱정하며 두려워할 것이다. 종일토록 노력하다가 저녁에까지 이르며, 저녁에 걱정하며 두려워하여 위태롭게 여기는데까지 이르게 되는 것은, 마음에 두려움을 가지어 정상적인 상태를 갖지 못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과거에 동요되던 나의 마음이 도리어 동요되지 않을 것이다.

두려울 척(惕)자는 마음 심(心)과 바꿀 역(易)을 합하여 만든 글자다. 마음은 언제나 평소에 소홀해지기 쉬운 법이니, 평소에 마음을 반드시 바꾸어 가지는 것은, 경계하고 삼가며 공경하고 두려워할 일이다. 경계하고 삼가며,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오히려 학문을 닦지 못하고 덕이 향상되지 못함을 두려워할 것이니, 그리하면 닦기를 반드시 널리하며, 향상하기를 반드시 높이는데 이르게 될 것이다. 높으면 크게 될 수 있으며, 넓으면 장구하게 될 것이다. 처음은 두려워하며 이를 곳을 알아 장구하며 크게 되는 경지에까지 이르르고, 끝에 이르러서는 아무런 허물이 없게 되며 끝을 알아 처하는 바가 태연해질 것이니, 이것을 가지고 천하와 국가를 다스린다면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건괘의 구삼은 이중으로 강한 것이어서 훌륭한 덕이 벌써 나타나고 사람들이 그에게로 돌아가게 되는 위치이므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불안스럽다. 그러므로 진퇴(進退)와 동식(動息)에 있어서 반드시 그 도리에 정확하게 하며, 날마다 주의하며 두려워하며 남을 위하여 충성스럽지 않은 일이 없었는가, 사람과 사귀면서 미덥지 않게 한 일이 없는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충성과 믿음이란 덕을 향상시키는 것이며, 충성과 믿음이 마음에 자리를 잡고 한 가지 생각이라도 절실하지 않은 것이 없음은 학문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렇듯 걱정하며 두려워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끝이 있을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은 오직 군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척약재(惕若齋)에 대하여 이렇게 설(說)을 지었으니 그대는 노력하기를 바란다.


成均直講金君伯誾 取易乾九三爻惕若二字 扁其齋而屬予說 何足發易之微意 合乎君之名齋者也 凡居齋 或以遊息 或以嗜樂 以至乎物色之尙 皆是也 君獨以惕若爲戒者 豈無謂歟 予嘗居乎世也 見人之憂如己之憂 聞人之懼如己之懼 憂懼之戒 心焉未安 此念纔發 吾之氣便慊然餒矣 吾欲擧而忘此 平其心易其氣 然後吾之氣浩然無是餒矣 孟子之所以養而無害者 不動心也 今觀惕若之意 又不旣動其心焉 夫人心之偏 常不得其正 之其所畏敬傲惰而僻焉 吾知夫君之心無是也 吾何動焉 君旣官直講國學 而諸生必就正於有道 欲有道者 業必修德必進 修之未至必惕若 進之未至必惕若 終日乾乾以至夕 夕惕若以至厲 此與恐懼乎心 而不得其正者 異矣 之向者動吾心者 反不動矣 夫惕者 從心從易 蓋心常忽於常 居常而心必易 戒謹敬畏之事也 戒謹敬畏者如何 猶恐業之不修 德之不進 以至乎修之必廣 進之必崇 崇則可大 廣則可久 始焉惕若 知至而至于久大 終焉無咎 知終而處之泰然 以此措之天下國家 則無難矣 以乾之九三爲重剛 賢德已著而人歸之 此處之未安 進退動息 必以其道 日以惕厲曰 爲人謀而不忠乎 與人交而不信乎 忠信所以進德也 忠信主於心而無一念之不實 所以居業也 此未始不爲惕若者有終也 有始有終其惟君子乎 予於惕若齋 爲說如此 君其勉旃


김구용(金九容) 1338(충숙왕 복위7)∼1384(우왕10).

고려말 학자. 본관 안동, 초명은 제민(濟閔), 자는 경지(敬之),백은(白誾) 호는 척약재(惕若齋), 상락군(上洛君) 묘(昴)의 아들. 공민왕 때 16세로 진사(進士)가 되고, 그 후 문과(文科)에 급제, 덕령부 주부(德寧府注簿)를 거쳐 민부의랑(民部議郞)겸 성균 직강(成均直講)이 되었다. 1367년(공민왕 16) 성균관(成均館)이 중영(重營)되자 정몽주(鄭夢周)·박상충(朴尙衷)·이숭인(李崇仁) 등과, 함께 정주학(程朱學)을 일으키고 척불양유(斥佛揚儒)의 선봉이 되었다.

친명파(親明派)로서 1375년(우왕1) 삼사좌윤(三司左尹)으로 있을 때, 이숭인·정도전(鄭 道傳)·권근(權近)등과 북원(北元)에서 온 사신의 영접을 반대하다가 죽주(竹州)에 유배되었다.

1381년(우왕7) 다시 풀려나와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가 되고, 이듬해 대사성, 이어 판 전교시사(判典校侍事)가 되었다. 고려와 명나라와의 국교(國交)가 난관에 부딪치자 1382년 행례사(行禮使)로 명나라에 가던 중, 요동(遼東)에서 붙잡혀 남경(南京)으로 압송된 뒤 대리(大理)로 유배되어 가다가 노주 영녕현(濾州永寧縣)에서 병사했다.

유고 시문집인 <척약재 학음집(惕若齋 學吟集)>이 전하고 있으며, 공의 시문집을 연구한 논문 서적인 <척약재 김구용 문학세계>(성범중저. 울산대 출판부. 1997)이 나왔다. 그 외에 <선수집(選粹集)>, <주관육익(周官六翼)>을 집필한 바도 있다.

경북 예천의 <물계서원>(조선 현종 신축년)에 충렬공(휘 방경)과 함께 배향되었으나 지금은 훼철되고 남원에 <용장서원>에만 배향되었다. 경기도 포천군 창수면 오가리 金水亭옆에 壇墓를 세워 음력 10월 1일에 享祀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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