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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기 학자 가운데 김구용(金九容·1338~1384)이란 분이 있다.

이 분의 호가 '척약재(若齋)'다.

'척()'은 젓삽다는 뜻으로서 매사에 조심스럽고 삼가며 살겠다는 마음을 담고 있다.

그가 척약재로 자호하자 스승과 벗들이 한마디씩 해주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열 눈이 보고 있고 열 손이 가리키네. 전전긍긍 자신을 지탱하며 처음처럼 끝까지 삼가시게'(한복·韓復)

 '불경하지 말고 자신도 속이지 마오. 썩은 동아줄 잡은 듯 마른 가지를 잡은 듯 하게나'(이달충·李達衷)

'범의 꼬리 밟은 듯 살얼음을 건너는 듯 오직 정밀하게 살펴라'(이색·李穡)

'마음 혹여 놓으면 실타래처럼 엉키리니 반드시 일삼아서 종일토록 애쓰오'(정도전·鄭道傳)

'저 물도 밤낮을 쉬지 않고 넘실넘실 흐르는데,그대 마음 흔들리면 혈맥은 막히리'(정몽주·鄭夢周)

한결같이 초심을 끝까지 밀고 나가며 항상 조심하라는 당부다.
뜻밖에도 여기엔 이색을 비롯하여 정몽주 등 당대 대표적인 지식인들이 망라되어 있다.

이들은 당시 정치적,경제적 개혁에 온몸을 던졌지만 오히려 외세에 붙어 연명하며 변화를 두려워하던 기득권의 강력한 저항으로 수세로 몰리고 있었다.

말 한마디조차 억압의 빌미가 되었기에 이들은 늘 긴장 속에 살았다.
특히 일상은 더욱 주의해야 했다.
그래서 백문보(白文寶)는 김구용에게

''척()'자는 마음 심(心)과 쉬울 이(易)로 되어있다.
마음은 일상적인 데에서 소홀하기 십상'(척약재설)이라며 일상에서 학업을 닦고 덕성을 수양하라고 충고했다. 일상에 대한 경계다.

나는 '척'자를 볼 때마다 '총욕약경(寵辱若驚)'(노자)이 생각난다.

이것은 '남에게 총애를 받는 것과 모욕을 당하는 것은 모두 사람에게 죽음과 같다'는 뜻이다.
'경'은 말이 깜짝 놀라 아주 위태롭다는 뜻이다.거의 죽음에 가깝다는 말이다.
모욕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존엄을 해치며 죽음으로 몰아 가기도 한다지만 총애는 좋은 것이 아니던가?
뜻밖에도 총애도 모욕처럼 사람의 존엄을 해친다.
이 관계에서 주인은 총애하는 사람이다.
그 총애를 받는 나는,나의 주인에서 '남'으로 변한다.
남이 되어버린 나! 여기에 총애의 비극이 있다.
우리는 총애를 받기 위하여 굽실거린다.
혹시라도 총애를 잃을까 안절부절 하다 끝내는 자존심도 팽개친 채 총애를 구걸하기도 한다.

우리 주위에 총애를 위해 나이도 잊은 채 무릎꿇고 굽실대는 사람들이 그 얼마나 많던가? 이처럼 자존(自尊)을 잃고 주인됨을 잃은 자는 생명력을 소실한 사자(死者)다. 나의 생명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통념의 전도(顚倒)다.

척약재에게 당부하던 말들 또한 이런 사태를 우려한 충고는 아니었을까? 편안한 일상과 의심 없이 수긍하는 통념 속에서 나 자신은 어느새 남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젓사올 뿐인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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