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의 ‘나’ - 너무 논리가 비약한다.
‘나’의 생각의 기본은?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의식있는 정치인, 행동하는 종교인, 울부짖는 노동자.....가 있는데
‘나’는 그들을 이렇게 바꿔 생각한다.
기회주의 정치인, 몽상하는 종교인, 이용당하는 노동자, 로. (33쪽)
일반화가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인문학과 철학에 대한 저자의 견해
<한국에서도 인문 분야의 많은 학자들이 사회와 사회 제도에 대해 불만을 품을 확률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요.>(42쪽)
<“그러니까 한국의 인문 분야 학자들이 미국이나 서구 그리고 일본과 같은 선진국에서 유학을 하면서 이 점을 잘 못 이해했다는 거군요. 전공분야와는 상관없이 교육방법이 좋은 것이고 그 내용도 진실한 것이라 착각을 했고요.”
“그렇지요. 좌경화해야 양심적인 학자이고, 마르크스 주의가 학자가 추구해야 할 진실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믿는 경향이 유학을 한 한국 학자들 사이에 일반화되었지요.”>(69쪽)
“유학을 한 한국 학자들 사이에 일반화되었지요.”
‘나’는 말 그대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실 철학자들이란. 인류에게 끼칠 영향에는 상관없이, 자신의 독창성이 부각되는 이론이면 무엇이든 들고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인류의 복지는 안중에 없는 사람들이지요.> (58쪽)
철학자들은 바빠서 이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지? 읽고난 다음에 그들은 뭐라고 할지?
역지사지 질문하기
<대학생을 가르치는 지식인은 현실주의자 입장에서 그렇게 목가적이고 훌륭하다는 사회주의가 왜 저 모양 저 꼴이 되었느냐? 하는 질문을 했어야지요.>. (65쪽)
나는 이 문장을 그대로 단어 몇 자만 바꿔 놓고 싶다.
‘그렇게 목가적이고 훌륭하다는 사회주의’ 대신 그저 이 말, ‘이 현실’로 바꿔보면 어떨까?
<대학생을 가르치는 지식인은 현실주의자 입장에서 ‘이 현실’이 왜 저 모양 저 꼴이 되었느냐? 하는 질문을 했어야지요.>
또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지식인인 저자가 현실주의자 입장에서 ‘이 현실’이 왜 저 모양 저 꼴이 되었느냐? 하는 질문을 했어야지요.>
마음에 드는 구절, 소설 속의 ‘나’에게 바친다.
이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지식인의 나쁜 점은 무엇이든 정당화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42쪽)
나는 이 문장을 소설 속의 ‘나’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