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체보기
블로그 전체검색

처용 [ ]

 

요약
신라시대의 설화()에 나오는 기인().
 

신라 헌강왕() 때 처용()에 관한 설화로, 《삼국유사()》 권2 처용랑 망해사()에 실려 전해지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라가 태평을 누리자 왕이 879년(헌강왕 5)에 개운포(:지금의 울산) 바닷가로 놀이를 나갔는데, 돌아오는 길에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덮이면서 갑자기 천지가 어두워졌다. 갑작스런 변괴에 왕이 놀라 좌중에 물어보니 일관()이 말하되 “이것은 동해 용의 짓이므로 좋은 일을 행하여 풀어야 합니다”고 하였다. 왕이 용을 위하여 절을 짓도록 명한 즉, 바로 어두운 구름은 걷히고(이로부터 이 곳을 라 하였다), 동해 용이 일곱 아들을 데리고 나와 춤을 추었으며 그 중 하나가 왕을 따라오니, 곧 그가 처용이었다. 왕을 따라온 처용은 달밤이면 거리에 나와 가무()를 하였다 하며 왕은 그를 미녀와 짝지어주고 급간() 벼슬을 주었다. 이 아름다운 처용의 아내를 역신()이 사랑하여 범하려 하므로 처용이 노래를 지어 부르며 춤을 추었더니 역신이 모습을 나타내어 무릎꿇고 빌었다. 그 후부터 백성들은 처용의 형상을 그려 문간에 붙여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가 나게 하였다. 그리고 헌강왕이 세운 절 이름을 망해사(), 혹은 신방사()라고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이 때 처용이 춘 춤이 악부()에 처용무()라 전해지고 이 춤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정재() 때와 구나의() 뒤에 추는 향악()의 춤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를 처용희()라고도 한다.

참조항목
부적, 처용가, 처용무
역참조항목
북이면, 제웅, 처용단장, 처용암, 처용문화제, 처용가무

[네이버 지식백과] 처용 [處容] (두산백과)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