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체보기
블로그 전체검색

박승찬의 다시 보는 중세
(3)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정의가 없는 국가는 강도떼와 같다

등록 :2016-06-09 20:47

 

 

 

야만인의 로마 약탈, 조제프노엘 실베스트르, 1890, 세트, 폴 발레리 박물관.

야만인의 로마 약탈, 조제프노엘 실베스트르, 1890, 세트, 폴 발레리 박물관.

박승찬의 다시 보는 중세


(3)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국회의 비협조로 노동개혁이 좌초되면 역사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정부 들어서 자주 들어온 비난이다. 이러한 주장을 근거로 대통령은 “(국회 직무유기에) 국민께서 직접 나서주시기 바란다”고까지 요구했다. 그렇지만 올해 4·13 총선의 민심은 청와대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총선 결과는 정부와 여당이 어떠한 실수를 해도 금세 회복되던 설문조사의 지지율과 판이했다. 심지어 설문조사의 정확성까지 의심받는 사태가 벌어졌다.

 

국정 책임자가 국가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엉뚱하게도 제3자에게 전가하려는 기만책은 역사에서 자주 보인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원한 제국’이라 자처하던 로마 제국이 몰락해 갈 때도 이렇게 책임을 면하려는 자들이 나타났다.

 

‘로마 점령’ 그리스도교에 책임전가
비판 반박용 ‘신국론’ 14년 만에 완성

 

1500쪽 도덕·정치·철학적 ‘대작’
“정의란 각자에게 각자 몫 주는 것”

 

진정한 정의가 없다면 공화국 아냐
국가위기 ‘핑계’ 대신 원인규명해야

 

 

수도 로마의 점령에 대한 풍문

 

410년 8월24일 게르만족의 용병대장 알라리쿠스는 반란을 일으켜, 천년 이상 유지된 로마 제국의 수도 로마를 점령했다. 이로 인해 세계의 중심지 로마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꺾여버렸다. 로마인들에게는 글자 그대로 세계의 붕괴를 의미했다.

 

로마 점령 사건은 부패한 로마 제국이 게르만족 용병들의 월급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시작되었다. 아사(餓死) 직전에 몰린 용병들은 굶어 죽느니 한번 싸우기라도 해보고 죽자는 심정으로 로마까지 진격했다. 그러자 이미 강건한 정신을 잃어버린 로마 정규군은 줄행랑치고 말았다. 그 결과 알라리쿠스와 용병대는 큰 어려움 없이 로마를 점령하고 약탈했다.

 

이 사건에 경악한 로마인들 중 일부는 20년 전 일어난 큰 변화, 즉 ‘그리스도교의 국교화’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그들은 로마 제국이 조상 전래의 다신교를 버리고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몰락했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교는 밀라노 칙령(313년)을 통해 신앙의 자유를 얻은 뒤 급속히 성장하여, 392년에는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선포하면서 전통적인 다신교의 신전들을 폐쇄하고 제사를 금하는 일련의 칙령을 반포했다. 그러나 국교화 진행 과정은 순조롭지 못했고, 기존의 다신교 신앙을 유지하려던 이들은 그리스도교를 증오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로마가 점령당하자 그 책임을 그리스도교에 전가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그리스도교인들은 이교도인 전통적 다신교인들이 여전히 많이 있기 때문이라고 응수했다. 점령당한 로마인들 사이에서는 역사를 주관하는 신의 섭리가 무엇인지, 또 ‘과연 그리스도교 때문에 로마 제국이 몰락했는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와중에 로마의 부자들 상당수는 자신들의 영지가 있는 북아프리카로 피신했다. 당시 아프리카 그리스도교의 지도자는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누스였고, 그는 피신해 온 이들의 도전적인 질문에 답변할 필요성을 느꼈다.

 

 

14년 걸쳐 완성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교도들의 비판이 얼마나 부당한지를 반박하기 위해 <신국론>을 저술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50대 후반에 시작한 저술 작업은 무려 14년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그가 죽기 4년 전인 426년에야 22권 분량의 “대작이자 힘든 일”(magnum opus et arduum)이 완성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론>을 집필한 일차적 동기는 신학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신국론>이 도덕, 정치, 철학적인 면에서 거둔 성과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저서는 우선 이교도들을 대상으로 해서 그들의 그리스도교 비판이 근거 없음을 밝히려 했다. 또 한편으로는 구원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인간 역사를 바라보는 안목을 제시하고자 했다. <신국론>은 저자의 해박함과 놀라운 통찰력 때문에 서구 지성사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안에는 인류 역사상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주제가 망라되어 있어서 다루어진 내용을 모두 요약하는 것은 한편의 글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15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중 앞서 언급한 무능한 정부의 기만책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진정한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에 대한 열망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로마 제국을 비롯한 국가를 그토록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를 “정의가 없는 국가란 거대한 강도떼가 아니고 무엇인가”(<신국론> IV, 4)라는 질문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해적 사이의 흥미로운 대화를 소개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잡혀 온 해적에게 “무슨 생각으로 바다에서 남을 괴롭히느냐”고 문초하자, 그 해적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고 한다.

 

“그것은 폐하께서 전세계를 괴롭히는 생각과 똑같습니다. 단지 저는 작은 배 한 척으로 그 일을 하는 까닭에 해적이라 불리고, 폐하는 대함대를 거느리고 다니면서 그 일을 하는 까닭에 황제라고 불리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신국론> IV, 4)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강도떼와 국가가 외형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강도떼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두목 한 명이 다스린다. 또한 강도떼도 결합체의 규약을 지니고, 약탈물을 일정한 원칙에 따라 분배한다. 심지어 강도떼도 서로 갈라져 싸우면 약탈도 하기 어려우므로 자기들 안에서는 일정한 정의와 평화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국론>(De civitate Dei), 뉴욕시립도서관, 스펜서 컬렉션 MS 30, 1470.
<신국론>(De civitate Dei), 뉴욕시립도서관, 스펜서 컬렉션 MS 30, 1470.

아우구스티누스는 오랜 전통에 따라 “정의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것”(<신국론> XIX, 12)이라고 규정한다. 또한 이런 정의를 저버리고 불법을 저지른 자는 남에게 해악을 끼치지 못하도록 징벌로 교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때로는 강도떼가 나름대로의 세력 때문에 그 탐욕이 징벌당하지 않으므로 정정당당한 집단처럼 행세하게 된다. 전세계를 지배하고 정복한 로마 제국도 진정한 정의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면 진정한 ‘공화국’(res publica)이 아니라 강도떼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초기 로마가 정의로운 국가였을 때 얼마나 번성했는지도 상세하게 기술했다. 자신의 조국을 비판하는 것 자체가 주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로마 제국이 초기의 정의로움을 잃어버려서 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이를 극복할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또한 선한 정부와 법은 물리적 힘이 아니라 도덕적 근본에 의해 유지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론>에서 추구한 정의를 파괴하는 각종 위협 속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0년 동안 이어진 정책 실패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나 4대강 개발, 개성공단 폐쇄, 최고의 실업률 등 정책 실패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정부는 준엄한 총선의 심판을 받은 지금부터라도 실행할 정책을 통해 진정한 정의를 실현하기 원하는지 철저하게 성찰해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정의로움이 아니라 소수 기득권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국가란 ‘강도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진정한 정의와 거짓 정의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지식인과 언론인의 책임이 지대하다. 우리는 이미 ‘정의 사회 구현’을 외치면서도 사리사욕만 취하고 자신들의 만행을 감추기에 급급했던 강도떼를 만난 쓰라린 경험이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리라”는 외침과 함께 억압받는 이의 눈물을 닦아준 종교의 역할도 체험했다. 이제 사회 지도층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론>에서 제시한 것처럼, 국가 위기에 대한 공허한 핑계를 식별하고 진정한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박승찬 가톨릭대 철학전공 교수
박승찬 가톨릭대 철학전공 교수

아우구스티누스는 지금도 우리에게 <신국론>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우리 각자는 과연 ‘정의가 실현되는 참다운 국가’와 ‘정의가 없는 강도떼 같은 국가’ 중 어디에 속하는가?” 아우구스티누스는 답을 찾는 방법에 대해서도 충고한다. “각자는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라. 그러면 자기 자신이 어느 나라에 속하는 국민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박승찬 가톨릭대 철학전공 교수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아그네스

    정의가 없는 강도떼 같은 국가에 다가가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라고 느낀다면
    제가 너무 비관적인 걸까요?
    특히 우리 사회가 변화하고 개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언론인과 지성인의 양심적인 목소리가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6.07.22 11:00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seyoh

      이글 필자와 아그네스 님의 의견에 전폭적으로 찬성합니다,
      하루빨리 정의가 구현되는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그 게 얼만나 어려운지, 현실은 그것만 더욱 느끼게 해주기만 합니다~

      2016.07.22 16:46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