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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고통에 둔감한 이기적 유전자… 비극은 자비를 훈련시켰다

카타르시스, 배철현의 비극 읽기 <13> 이기심을 넘어 자비로

 

2015년 9월, 터키 해변에서 세살짜리 시리아 난민 알란 쿠르디의 사체가 떠올라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탄원하는 여인들'은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 비극의 줄거리 ‘뮈토스’는

낯선 사람들을 묶어주는 마술끈

우리 속 연민 유전자를 일깨우고

자비라는 행동으로 이어지게 해

세살배기 난민 쿠르디처럼

타향으로 도망쳐 온 이집트 여인들

비극 ‘탄원하는 여인들’을 보며

아테네 시민들은 비로소

여성 그리고 외국인 난민 입장에서

자기 자신을 보기 시작했다

 

2015년 9월 2일, 나는 신문에 게재된 한 사진을 보고 가만히 눈물을 흘렸다. 해변가에 한 어린아이 시신의 모습이다.

 

그 아이는 오른쪽 뺨을 모래사장에 댄 채 잔잔하게 밀려오는 흰 파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를 향해 반듯이 누워있었다. 이 아이는 여느 아이처럼 밝은 붉은색 티셔츠와 남색 반바지를 입었고 고무 밑창이 달린 신발을 신고 있다. 두 팔은 가지런히 몸 옆에 두었다. 그 곳은 보르둠이라는 터키 최고 휴양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이다. 누가 이 아이를 비극적인 죽음으로 몰아넣었는가?

 

이 세 살 난 아이의 이름은 알란 쿠르디다. 그의 가족은 원래 시리아와 터키 경계에 위치한 조그만 마을 코라니 출신이다. 그의 가족의 시련은 시리아 내전이 일어나면서 시작되었다. 특히 시리아 독재정권인 아사드 정권을 와해하기 위해 쳐들어온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IS는 자신들과 종파나 인종이 다른 집단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였다. 쿠르디 가족은 IS 학살의 대표적인 표적이었다.

 

쿠르디 가족의 종교는 이슬람이지만, 원래는 이란-이라크-터키 접경지역인 쿠르디스탄에서 오래전에 시리아로 이민하여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었다. IS는 종교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군사적ㆍ정치적 목적을 위해 극악무도한 일을 일삼는 근본주의 이념집단이다. 쿠르디 가족은 2011년 생존을 위해 시리아를 떠나 터키로 밀입국하여 이스탄불에 거주하기 시작한다. 아버지 압둘라 쿠르디는 시멘트 공장에서 하루에 12시간 동안 노동하여 9달러를 벌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세 살 아이, 알란 쿠르디의 죽음

 

압둘라는 꿈이 있었다. 자신의 자식들은 자유로운 나라에서 사는 바람이었다. 그는 캐나다를, 비교적 이슬람 차별이 없는 파라다이스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2015년 6월, 이민을 신청하였다. 사실 이민신청은 거의 불가능한 시도다. 누군가 이들의 이민을 위해 수만 달러를 내야 했다. 겨우 이 돈을 마련하여 신청하였으나, 캐나다 정부는 거절하였다. 쿠르디 가족은 터키에서 난민 지위가 아닌 방문 거주자 지위였기 때문이다.

 

실의에 찬 압둘라는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건 위험한 모험을 시작한다. 그는 터키 남서부 항구 보르둠에서 그리스로 밀항하는 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내려간다. 그는 일생 동안 모은 돈 미화 5,860달러를 지불하고, 아내 레하나 그리고 두 아들 갈립, 알란과 함께 5m 길이 고무보트에 몸을 실었다. 이 보트는 보르둠을 떠나 4㎞ 정도 떨어진 그리스 섬 코스로 갈 참이다.

 

쿠르디 가족은 어렴풋이 보이는 천국 그리스 코스 섬을 향해 보드룸을 떠났다. 그들은 터키 해안경비대의 감시를 피해 한밤 중에 이 보트 위에 올랐다. 이 고무보트는 정원이 12명이었지만 17명이나 타고 있어, 넘실거리는 파도 위에 목숨을 건 30분간의 여행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이 불안한 고무보트는 뒤집혀 17명 중 13명이 익사하였다. 압둘라의 아내 레하나와 두 아들 갈립과 알란이 모두 익사하였다. 내가 신문에서 본 그 충격적인 사진의 비극적인 주인공은 알란 쿠르디다. 

 

압둘라는 시신으로 돌아온, 아내와 두 아들을 보고 눈물만 흘렸다. 그러나 슬픔도 잠깐, 그는 가족의 시신을 24시간 내에 고향으로 돌아가 매장해야 한다는 이슬람 율법이 생각났다. 그는 그 다음날인 2015년 9월 3일, 이들의 시신을 가지고 고향 코라니로 돌아가 장례를 치렀다. IS가 코라니 포위를 2015년 3월에 중단하였고 8월엔 퇴각하여, 장례가 가능했다. 

          

우리는 왜 연민과 자비를 잃어버렸나

 

나는 상상해 본다. 만일 내가 이 사진의 아버지였다면, 나의 심정이 어땠을까? 현대인들은 미디어를 통해 시시각각으로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끔찍스럽고 비극적인 장면들을 매일 접한다. 우리는 쏟아지는 이미지를 실제 일어나지 않는 가상의 공간에서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치부하면서, 인간문명의 핵심이자 위대한 공동체의 바탕인 연민(憐愍)과 자비(慈悲)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우리는 왜 남들의 고통에 둔감할까?

 

현대인들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1859) 발표 이후, 자신들의 생존원칙을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으로 삼았다. 인간은 결국 이기적이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다윈의 충실한 제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1976)란 책을 통해 인간의 행위를 결정하는 주체는 인간이라는 객체가 아니라, 인간의 몸 안에 존재하는 유전자라고 주장한다. 그 유전자는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 쪽으로 진화하였다. 인간은 정신적이거나 영적인 동물이 아니라, 이 유전자를 담는 숙주인 것이다. 인간은 결국 이기적인 유전자를 발휘하는 기계인가?

 

그리스 비극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데 시사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뮈토스’와 ‘에토스’로 여겼다. ‘뮈토스’는 비극 전체 내용을 하나로 묶는 보이지 않는 끈이다. 뮈토스를 번역하자면 ‘이야기’ 혹은 ‘줄거리’ 정도가 될 것이다. ‘에토스’는 비극 주인공의 성격이자, 그가 자아내는 아우라다.

 

우리가 이기적인 자아에서 탈출하여 공동체적인 자아를 형성하기 위해선 ‘스토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한 시리아 난민 아이의 죽음에 슬픔을 느끼는 이유는 이 사진에 담긴 스토리를 공유했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서로 상관없는 인간들을 하나로 묶는 마술 끈이다. 

          

연민과 자비는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

 

쿠르디 이야기가 감동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쿠르디 이야기는 모든 인간 안에 숨겨진 연민이라는 소중한 감성을 깨우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풀고,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연민이라는 ‘유전자’를 일깨웠기 때문이다. 연민은 자신하고 상관없는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의 처지를 헤아리려는 마음이다. 그러나 연민의 마음으로는 위대한 공동체를 구축하기 힘들다. 연민의 마음이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져야 하기 때문이다. 연민이 행동으로 옮겨질 때, 위대한 문화와 문명이 만들어진다. 연민이 행동과 만나면 ‘자비’가 된다.

 

그리스 비극의 뮈토스에는 비극을 보는 사람들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한 후, 그들의 삶을 이기적인 삶에서 공동체적인 삶으로 확장하려는 ‘자비’라는 삶의 원칙을 훈련시킨다.

 

‘자비’의 첫 번째 요소는 ‘자(慈)’로, 흔히 ‘사랑’으로 번역한다. 고대 인도의 힌두교 경전인 우파니샤드에서는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의 첫 번째 특징을 ‘마이트리(maître)’라 설명한다. ‘마이트리’는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나와 타인과의 경계가 허물어져, 타인을 자신처럼 사랑하고, 타인이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마음’이다. 인도의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마이트리’는 한자의 ‘자’로 번역되었다. ‘慈’라는 글자 자체가 나와 상대방의 마음의 경계가 허물어져 ‘가물(玄)가물(玄)한 마음(心)’이다. 사랑은 타인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마음이다.

 

‘자비’의 두 번째 요소는 ‘비(悲)’로 흔히 ‘슬픔’으로 번역한다. 우파니샤드에서 깨달음의 경지 오른 사람들의 두 번째 특징을 ‘카룬나(karuna)’로 설명한다. ‘카룬나’는 단순히 타인의 슬픔을 수동적으로 함께 슬퍼하는 마음에 그치지 않고, 타인이 슬프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그의 삶에 개입하여 그 환경을 만드는 노력이다. 그리스 비극엔 ‘자비’를 훈련시키는 뮈토스, 즉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자비의 훈련장 ‘탄원하는 여인들’

 

아이스킬로스는 ‘탄원하는 여인들’을 통해 이 자비를 훈련시킨다. 다나우스는 압둘라처럼, 딸 50명을 데리고 배를 타고 이집트를 탈출하였다. 이집트의 왕이자 자신의 동생인 아이깁투스가 자신의 아들 50명과 다나우스의 딸 50명을 강제결혼 시키려 하자 고향을 떠났다. 다나우스와 그의 딸들은 이집트의 한 항구에서 배를 타고 정처 없이 떠돌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아그로스라는 도시의 해변에 도착한다.

 

다나우스의 50명 딸들은 합창대가 되어 노래한다. “탄원하는 자들의 신이신 제우스 신이시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우리는 나일강의 하구에서 가는 모래 언덕의 땅으로부터 배를 타고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가 떠나온 그 땅은 제우스 신에게 소중한 곳이며 시리아 초원과 근접해 있는 땅입니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살인을 저질러 도시로부터 쫓겨난 것이 아닙니다. 추방은 우리 스스로의 결정입니다. 우리는 탐욕스런 남자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아이깁투스 아들과 끔찍하고 불경한 결혼으로부터 탈출한 것입니다.” (1-10행)

 

다나우스 딸들은 합창대로 노래를 이어간다. 그리스 비극에서 여성들의 존재는 미미했지만, 아이스킬로스의 ‘탄원하는 여인들’에서는 이 무명의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또한 아테네 극장에 앉아 있는 아테네인들에게, 이집트에서 온 유색인종인 다나우스 딸들이 위대한 도시가 되기 위한 조건인 ‘자비’를 감동적인 이야기로 노래하는 것이다. 인류는 이제 여성의 입장에서, 외국인 난민의 입장에서 자신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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