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보르헤스 전집 2

[도서] 보르헤스 전집 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저/황병하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이런 게 가장 어렵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지나온 시간과 경험과 사람들과... 그 모든 것들의 축적의 결과다. 독서도 마찬가지여서 지금껏 내가 읽어온 모든 책들이 나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 인생의 책'이라던가 '단 한 권의 책' 같은 타이틀로 평생 읽은 책 중에 오직 한 권의 책만 고르라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게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를 고르라면(한국 사람들은 하나, 유일한 것, 이런 걸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왜일까?) 작품보단 작가를 꼽고 싶은데, 그 사람은 바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이다.

 

나는 90년대 초반 학번인데, 군대를 다녀와 복학해 보니 대학은 완전 다른 곳이 되어 있었다.
이념이니 이데올로기니 이런 건 완전 낡은 것으로 사장되어 버리고, 그 텅 빈 공간을 영화나 소설 같은 소위 '문화'라 명명되는 것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 '상전벽해' 같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동안 많이 힘들어했다.


그 즈음 허탈하고 공허한 마음을 달래고 싶은 마음에 소설이라는 걸 읽기 시작했다.

갓 대학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소설 따위는 부르주아들이나 읽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사실 그 자체도 엄청난 변화였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밀란 쿤데라, 한국 작가라면 윤대녕이 그 즈음 대학생들이 선호하던 작가가 아닌였나 생각한다.

 

그러다가 보르헤스를 만났다. 민음사에서 나왔던 보르헤스 전집을 한 권씩 읽었는데, <픽션들>은 실로 충격이었다. 이렇게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들도 소설이 될 수 있구나!

 

그 즈음 막 형성되기 시작한 '포스트 모더니즘' 담론과 정확히 맞닿아 있는 소설들이기도 했다.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도 모호해지는 그런 소설들!
새 술은 새 부대에. 새로운 소설 작법으로 보르헤스가 창조한 새로운 세계는 실로 경이로웠다.

보르헤스로 인해 나는 전복된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단언컨대 내가 90년대를 잘 건너온 것은 보르헤스 덕분이다.

 

보르헤스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도서관의 모습일 것이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는 편인데, 보르헤스를 읽는 시간, 특히 <픽션들>을 읽었던 시간은 실로 천국이었기 때문이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