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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서]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질 볼트 테일러 저/장호연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이 분의 강연 영상을 아주 오래 전에 본 적이 있는데 책으로까지 출판돼서 반가웠다. 갑작스런 좌뇌의 뇌졸중으로 인해 뜻밖의 '물아일체(物我一體)'를 체험하고 경이로운 깨달음에 이른 뇌과학자의 놀랍고 흥미로운 경험담이다. 인생이라는 연극 무대에서 일시적으로 무대 밖으로 이탈된 뒤 이것이 모두 연극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은 후 새로운 삶을 되찾은 그녀의 이야기는, 깨달음이라는 것이 더 이상 어떤 모호하고 관념적인 환상이 아닌 명확하고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입증될 수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소위 '에고'와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모든 것를 구분 짓는 좌뇌의 기능이 마비된 후 오직 우뇌의 전체적이고 감성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세상은, 그 무엇도 명확하게 경계를 구분할 수 없는 하나로 부드럽게 연결된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하지만 어떤 목적에 의해 기꺼이 육체라는 껍질을 쓰고 정해진 기간 동안 특정한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는 상황을 계속 거부할 수 없다는 본능적 지각에 의해, 그녀는 오랜 재활을 통해 언어와 사물을 인지하는 방법 등을 새로 배우며 좌뇌적 시각의 현실로 복귀할 수 있었다.

 

포토샵에서 이미지를 확대하면 할수록 커지고 점점 뚜렷해지는 건 인물과 배경을 모호하게 섞으며 연결하는 사각형 픽셀들 뿐이다. 양자역학의 세계를 기이한 방법으로 체험한 그녀는 좌뇌의 기능이 복구된 다음에도 양쪽 뇌를 의지에 따라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여전히 무대 위에 있지만 이것이 연극이라는 걸 몸소 경험했기에…….

 

세포들의 거대한 덩어리인 내 몸은 그저 멋진 임시 거처인 셈이었다. 이 놀라운 뇌는 매 순간 말 그대로 수십, 수백조 개의 엄청난 자료들을 통합해, 매끈하고 사실적이며 안전해 보이는 3차원 지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p.31

좌뇌의 분석적 판단 능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평온과 안락, 축복과 행복, 충만의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그러면서 내 일부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신체의 결박에서 완전히 풀려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이런 끈질긴 유혹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무언가는 도움을 청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p.36 

 나는 여전히 이곳에 있지만 현재까지 내 삶이 누려왔던 풍성한 감정적·인지적 능력이 사라졌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나일까?더 이상 예전에 누린 삶의 경험과 생각과 감정적 애착을 가질 수 없는데, 그래도 여전히 내가 질 볼트 테일러 박사라고 할 수 있을가?

p.56

나는 신경이 파괴되는 재앙에서 살아남지 못한 게 분명했다. 질 볼트 테일러는 이날 아침에 죽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누구일까? 내 좌뇌가 파괴되었다면 오른쪽 나는 누구지? "나는 질 볼트 테일러야. 신경해부학자이고 이 주소에 살며 연락처는 이렇게 되지" 하고 말하는 언어 중추가 침묵하자 더 이상 내가 그녀여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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