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굉장한 것들의 세계

[도서] 굉장한 것들의 세계

매슈 D. 러플랜트 저/하윤숙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감히 오만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푸른 별 지구는 인간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 맞다.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지질시대인 홀로세를 '인류세'로 불러야 한다는 과학적 의견이 나올 만큼 지구 역사에 거대한 임팩트를 남기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고 지구상의 생물종 30% 이상을 멸종시켰으며 83억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했다. 가히 '지배적인' 생명체가 아닌가. 인류의 지성이 인류를 이토록 위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지성이라는 치명적인 무기를 뺀다면? 인간은 거친 야생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만다.

주위로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지구상엔 놀라울 정도로 강인하고 위대한 생명체들이 많다. 단지 생각을 할 줄 안다는 것 빼고는 별 볼일 없는 인간이, 진지하게 현미경이나 혈액 샘플 체취용 주사기를 들고 관찰하며 본받아야 할 생명체들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굉장한 것들의 세계>는 거대하고, 작고, 빠르고, 오래 살고, 강인하고, 치명적인 생명체들을 통해 생명의 나무가 뿌리내린 놀라운 진화의 힘과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지혜를 둘러보는 책이다. 단순히 크고, 작고, 흥미롭고, 징그러운 동식물들을 다룬 대백과 사전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독자들은 놀라움에 책을 손에 놓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코끼리가 거대해진 이유와 어쩌면 인간보다도 높은 지성을 갖춘듯한 문어, 최강의 생명체 '곰 벌레'의 위엄 등 그 '굉장한' 것들이 거쳐온 진화의 시간을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화의 종말>이라는 놀라운 베스트셀러 과학 도서를 쓴 저자가 단독으로 출간한 이번 도서를 통해 독자들은 다시 한번 생명체의 신비로운 지도 속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생명체는 진화를 거듭할수록 거대해지는 경향이 있다. 공룡이 살던 시대 이전에 살던 포유류들이 그러했다. 공료 이후에도 그러했다. 나무늘보의 조상은 3미터가 넘는 거구였고, 아르마딜로는 가히 전차와 같은 몸집을 지녔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멸종의 시기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졌다. 약육 강식의 세계에서 거대한 몸집은 안전을 보장하는 힘이자 패권을 잡을 수 있는 권력이다. 동시에 그 거대함이라는 힘이 스스로를 살아남기 힘든 종으로 만든다. 지구상 가장 거대한 '육상동물' 코끼리는 이를 극복한 좋은 예이다. 인간이 코끼리와 같은 크기를 지니게 된다면, 현재의 신체 구조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 코끼리다리병이라는 안타까운 병을 지닌 환자들의 피부가 '코끼리'처럼 변하는 것처럼 코끼리는 그토록 뭉툭해진 다리를 지닌 형태가 되었기에 수 톤에 육박하는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몸이 거대해졌기에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그만큼 거대해졌다. 이전의 거대 포유류는 모두 그래서 멸종했다. 코끼리는 놀라운 적응력으로 해당 위기를 잘 넘겼다. 물론 인간이라는 지구상 가장 포악한 재앙을 만나 멸종 위기에 처한 상태이지만 진화적 측면에서는 코끼리의 사례를 잘 연구해야 한다.

코끼리는 거대한 동시에, 튼튼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외적 내구성이 아닌 내적 내구성의 측면에서 말이다. 코끼리의 p53 유전자는 이상 변이된 세포, 즉 암세포의 씨앗을 자살하도록 이끈다. 자가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말살하도록 프로그래밍 한다. 이 때문에 코끼리는 암에 걸리지 않는다. 몸집의 크기와 암의 유병률 간의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던 과학자들의 의견과 달리 최근 코끼리를 통해 거대함이 암과 무척이나 큰 관련성을 지녔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거대하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코끼리가 암과 적응력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의 새로운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

거대한 것을 봤으니 미세한 것을 볼 차례이다. 우라늄이 뿜어져 나오는 광산, 흐르는 지하수에는 우라늄이 잔뜩 녹아내린다. 미국 정부는 수십 년 동안 이 핵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지만 도저히 뾰족한 방법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방사능을 우걱우걱 먹는 미생물은 없을까 고민하기에 이른다. 놀랍게도 우라늄을 먹어 방출되는 방사능의 양을 대폭 줄이는 미생물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생명체는 치명적인 핵 폐기물을 먹고도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자칫 돌연변이를 일으키지는 않는 것일까?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물질이 어떤 생물에게는 그저 일용할 양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인간과 유전 구조상 별다른 차이도 보이지 않는 그들은 이제 핵 폐기물 처리의 획기적인 방안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빠른 것은 뭇 인간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F-1 경주는 귀가 찢어질 듯한 소음에도 불구하고 수만 명의 인파를 경기장으로 유혹한다. 인간의 몸으로는 도저히 이를 수 없는 경이로운 속도의 세계가 스릴과 희열의 본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가장 빠른 인간조차도 시속 40km를 넘기지 못한다. 의외로 귀여운 울음소리를 지닌 치타는 120km의 속도로 임팔라를 좇는다. 제로백이 2~3초밖에 되지 않는다. 치타를 설명하는 장은 앞선 장과 달리 무척이나 기술적인 영역이었다. 마치 치타를 전투기에 비유하듯 재미나게 풀었다. 더 많은 공기를 흡입해야 엔진이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듯, 치타는 여타 고양잇과 동물과 다르게 상대적으로 큰 콧구멍을 지녔다. 유연한 척추를 이용하여 1m 남짓한 몸길이로 6m에 달하는 거대한 도약을 이끄는 과정은, 다큐멘터리에서 여러 번 접했지만 여전히 흥미로웠다. 그러나 치타도 사실 속도의 달인은 아니다. 치타가 최대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시간은 1분이 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는 최고 속도의 절반으로도 운행을 하지 않는다. 그것도 몇 초 정도만. 오히려 진드기는 축지법을 쓰는 도사처럼 놀라운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자기 몸의 30배를 점프하는 벼룩처럼, 진드기 또한 그 미세한 몸집으로 굉장한 거리를 움직일 수 있다. 치타가 최고!라며 외치고 있을 우리 초등학생들에게 진드기는 새로운 영웅이 될 수 있을까?

곰 벌레라 불리는 완보동물은 최근 1~2년 사이 스타가 되었다. SNS에서 가끔 등장하는 곰 벌레에 대한 컨텐츠가 곰 벌레의 무지막지한 생명력과 내구성을 전 세계에 홍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1000여 종이 넘는 다양성을 지닌 완보동물은 무지막지한 생명체이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강인한 것은 아니다. 완보동물이 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 중 몇몇 개체는 남극의 혹독한 추위에 강하고, 몇몇은 아타카마 사막의 땡볕 아래가 제 집이다. 그들을 서로의 쉼터에 바꿔 옮겨 놓으면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 부분 발생할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이목을 끌었던 '그' 완보동물은 사실 특정한 종이다. '라마조티우스 바리에오르나투스'가 바로 우주의 절대영도, 핵폭발의 현장, 깊고 깊은 심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그 녀석이다. 이들에게는 특별한 보호막 같은 피부가 존재한다. 해당 완보동물의 피부 유전자를 인간 세포에 합성했더니 방사능에 의해 파괴되는 비율이 40%나 감소했다. 이들은, 인간이 햇볕에 나가기만 해도 스트레스를 받아 세포가 파괴되는 것에 반해, 거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오래 살기 위해,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완보동물의 유전체를 몸에 이식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들의 강인한 생명력은 끝없는 욕망을 지닌 인간이 언젠가 완벽히 정복해야 할 궁극의 비기가 아닌가 문득 생각이 든다.


흥미로움을 유발하는 생명체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를 기대하고 읽었기에 책의 도입부부터 느껴지는 희열을 감출 수 없었다. 진화의 나무가 이끌어가는 생명의 신비에 대한 놀라운 관찰이었고, 경이로운 세계의 연속이었다. 생명은 한번 시작되면 사라지기가 어렵다는 한 과학자의 이야기처럼 생명은 끈질기게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을 지속한다. 생존에 대한 욕구가 지구의 생명을 거대하고, 똑똑하고, 또 굉장하게 만들었다. 우리 인류는 우리보다 '굉장한' 자연 속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겸손해져야 할 것이다. 하잘것없는 존재라 무시하며 그들 위에 군림하려는 인류가 이제 그들의 모든 것을 배우며 '굉장해지려'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진정으로 굉장한 것은 인류가 아니라 진화의 끝에서 살아남은 지구상 모든 생명체일지도 모른다.

크고, 작고, 빠르고, 치명적인 생명체를 통해 알아보는 진화의 신비,<굉장한 것들의 세계>였습니다.

 

 

* 본 리뷰는 북트리거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2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옥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고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2021.01.20 23:27 댓글쓰기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