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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스피드

[도서] 여름, 스피드

김봉곤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여름으로 흘러가는 밤 2017년 7월에 나온, 지금은 2018년 7월로 일 년이 지난 악스트를 꺼냈다. 2900원이라는 가격 때문에 사 모으기 시작한 악스트, 책장 한 구석을 차지 한 표지가 얇은 그 책 한 권을 꺼내든 여름밤 장마 전선은 물러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날은 폭염을 예고하고 있다. 잠은 올 듯한데 깊게 잘 자신은 없고 그렇게 시작한 독서는 차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도 멎은 채 고요 속으로 들어간다. 


  어떤 이는 단편 소설은 한 번에 읽어야지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고 하던데 나는 어느 때고 책장을 덮을 수 있다. 잠이 오면 덮고 아침에 일어나 다시 읽는다. 무신경하다는 뜻일까. 흐름이 끊어진 소설은 내가 읽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새침한 척 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여름이라는 계절은 시를 소설을 읽어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문장이 남기도 하고. 책을 읽은 장소에 관한 냄새와 흐르는 음악이 몸 안에 맴돌고 있기도 하다. 


  2017년 7월 악스트에 실린 김봉곤의 「여름, 스피드」를 한자리에서 읽었다. 잠은 달아나고 습한 공기는 방 안으로 몰려왔다. 스탠드 불빛 아래 하얀 종이에 작은 글씨를 반복해서 읽느라 눈은 피곤해졌다. 


  여름. 


  나와 당신의 여름. 영우와 봉감의 여름. 세상을 긍정하지도 호의적으로 바라보지도 않는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단 하나일지도 모른다. 알고 싶다. 사람들의 대화 속에 숨겨진 말뜻을 재빨리 알아챌 수도 없고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방법도 모른 채 살아가는 나는 소설을 통해 이해받고 싶다. 일상에서 그게 무슨 말이야라는 물음을 자주 받으며 지내지만 소설 안에서 나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와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오로지 소설이라야 가능한 일이다.


  새벽 강을 헤엄치는 영우와 봉감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여름, 스피드」를 읽으며 페이스북, 아메리칸어패럴, 조크스트랩을 알아간다. 소설이 아니라면 몰랐을 단어, 소설이 아니라면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세계, 세계들. 「여름, 스피드」의 언어는 이상하게도 마음에 남는다. 상대의 무신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말을 담담하게 하는 사람 특유의 툭툭거리는 말투로 소설을 끌어간다. 


  잘난척하지 않는 쉬운 문장으로 독자를 낯선 사랑으로 끌고 들어가는 소설가 김봉곤은 여러 매체에 밝혔듯이 게이다. 그의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 소설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 이유는 없다. 안다고 해서 소설을 이해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김봉곤은 이해받기 위해 아니 그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소설을 쓰는 것 같다. 


나는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단 한 번도 부끄러워한 적이 없었지만,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 종로에 발을 들이는 순간, 비참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2018. 7/8 no.19 Axt, Come out 中에서, 김봉곤)


  그가 「여름, 스피드」를 2017년 7월 호에 발표하고 꼭 일 년 후 7월 첫 소설집을 냈다. 그에 대한 소회를 2018년 7월 악스트에 실었다. 부끄럽지는 않지만 비참해질 거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여름, 스피드」에서 장편 영화 준비를 하는 봉감은 6년 만에 헤어진 연인 영우의 페이스북 친구 신청 메시지를 받는다. 영우와 만나 사랑에 빠진 기간은 3주. 격렬했지만 한 쪽만 열렬한 기억으로 남은 연애였다. 


  오랜만에 만난 영우는 '나'에게 친구가 되어 달라고 말한다. 한때 연인이었던 이에게 친구가 되어 달라고 말하는 심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소설 속 '나'도 현실의 나도 모르겠다. 폭음을 하고 택시를 타려다 실패하고 그러다 손을 잡고 한강으로 걸어간다. 영우가 먼저 옷을 벗고 강 속으로 들어간다. 뒤이어 '나'도 따라 들어간다. 


  이해하려고 두 번 읽은 게 아니다, 「여름, 스피드」를. 불완전한 내면과 설명할 수 없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이 가진 호흡을 따라 간 것이다. 알지 않은가.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허구한 날 오해만을 반복하며 살아온 것을. 사랑 없이 살 수 있는데 사랑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여름의 세계를 '그렇지만 밤의 맥박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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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시골아낙

    작년 여름 악스트에 나온 거예요? 저도 악스트를 빠지지 않고 구매했는데 제대로 읽지를 않으니 몰랐어요 ㅎㅎ 이번에 여름, 스피드란 소설집이 예스 메인에 떠있어서 아 그렇구나 하던 차에 이번호 악스트에 실렸더라구요, 어쨌든 작품이 악스트에 실렸다는 전혀 모르는 사실을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찾아서 읽어봐야겠네요 감사 감사

    2018.07.12 19:2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돼쥐보스

      작년 7, 8월호에 실린 소설이에요...저도 모으기만 했지 안 읽어봤는데 이번에 읽으니 좋네요...애틋해요, 막.

      2018.07.12 21:29
  • 파워블로그 카르페디엠

    리뷰를 아주 담담하고 담백하게 잘쓰신거같아요~그러면서도 내용이 심심하지않아서 책에 대한 궁금증도 생기구요~좋은리뷰 잘읽었습니다~^^

    2018.07.18 21:40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돼쥐보스

      감사해요! 편안한 문장이 매력적인 소설입니다!^^

      2018.07.18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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